UPDATED. 2024-04-25 11:29 (목)
엄마의 마음
엄마의 마음
  • 의사신문
  • 승인 2007.04.19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 가진 엄마는 무조건 봐야 한다는 친구의 호들갑에 찾아간 영화관은 썰렁할 정도로 한산하였다. 친구에 의하면 `올봄에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 1위에 오른 영화'라고 꼭 보라던 영화가 아닌가.

제목도 외우기 힘들어 매표소에서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를 말하자 상영시간이 15분 지났다고 보시려면 빨리 들어가란다. 또 오기는 힘들테니 그래 빵 한쪽과 음료수 한잔으로 때우자. 어렵사리 저녁도 굶고 제목도 헷갈리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이런 영화를 보는게 옳은지 망설여졌다.

제목처럼 내용도 천방지축으로 개그식 코미디가 이런 것인지. 엄마 대프니(다이앤 키튼)는 자식 사랑이면 지구상의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강한 모성애의 소유자다. 남편을 여윈 후 홀로 세 명의 딸을 키워 두 언니들은 괜찮은 남자를 만나 시집갔지만 막내딸 밀리(맨디 무어)는 결혼은 커녕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본다. 밀리는 매번 남자한테 차이고 칠칠맞아서 길거리나 파티장에서 실수연발이다.

밀리를 그대로 놔두다가는 사랑에 있어서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로, 대프니는 밀리에게 가장 적합한 남자를 찾아주기로 결심한다. 밀리가 모르는 사이 인터넷에 이런 남자를 찾는다는 광고를 내고 엄마가 대신 선을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 나이도 환갑이 넘은 다이앤 키튼은 망가져도 끝없이 망가지는데 철저한 배우로서 말이다. 최근 작품 `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Give)'에서는 중년의 희곡작가로 중년의 바람둥이 독신남과 사랑을 하는 연기를 보여 노익장을 과시한 키튼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여러 부류의 남자를 장모될 사람이 직접 인터뷰를 하는데 이러이러한 이유로 결혼 못한 총각들도 많다. 얼굴도 가지가지다. 이런 노력 끝에 장모 마음에 드는 100% 만족한 사윗감을 구하게 되고 딸 몰래 007작전처럼 이사람 쪽으로 몰아붙이면서 연예코치를 하는 과정에 모녀 사이의 충돌이 일어난다. 또 한 친구는 다 좋은데 직업이 시원치 않아 퇴짜 놓고….

아이러니 하게도 엄마 대프니의 계획을 모르는 딸은 자신 앞에 나타난 멋진 두 남자의 구애에 벅차오르고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 이중 플레이를 하게 된다.

원래 밀리 역의 맨디 무어는 만능엔터테이너로 알려져 있다. 싱어롱라이터(직접 작사·작곡·노래)로서 두 장의 앨범을 발매하여 플래티넘을 기록했으며 MTV의 프로그램 사회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연기도 잘하고, 소위 우리나라 엄마들이 생각하는 복스럽고, 귀여운 전형적인 맏며느리감이다. 더구나 능력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런 황금배역으로 좌충우돌 왈가닥 연기를 소화시키니 볼거리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사사건건 엄마의 취향대로 딸이 해주기를 요구하고 엄마 마음에 드는 남자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니 딸은 엄마의 의견에 완강히 저항하며 연락을 끊는다.

자식과 엄마 사이에 전쟁은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사랑한다는 전화 메시지에 딸이 전화를 받으면서 끝이 나지만, 영화는 다시 엉뚱하게도 엄마의 사랑을 그려낸다. 딸의 시아버지될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니 말이다. 딸을 걱정하던 많은 관객은 엄마를 걱정하게 되고 세 딸들은 그동안 고생한 엄마를 위해 결혼식을 준비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엄마의 마음은 같은가 보다. 연로한 어머님을 모시며 결혼을 앞둔 딸과 같이 사는 엄마로서 이 영화를 보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에도 있었던 `땡땡이칼라'의 옷을 젊은 딸에게 입으라고 강요하는 영화 속의 엄마 대프니 - 그녀의 마음을 그 누가 알겠는가. 오직 딸을 좋은 배필과 결혼시키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은 에미의 마음을…. 내가 딸이었을 때 그리고 또 지금 내 딸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아마 십중팔구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입장이 바뀌지 않으면 생각도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충청도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후 서울로 유학(?)온 나는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워 서울에서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냥 곁에만 있어도 푸근했던 엄마. 그렇지만 요즈음 건강이 안 좋으신 어머니께서 가끔은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나도 데려가 달라고 조르신다. 이러시는 엄마에게 `나는 누구일까?' 라고 반문한다. 내가 아직도 엄마의 사랑스러운 딸일까?

나 또한 엄마로서, 힘든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딸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매일 일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돌아오는 딸과 마주치면 잔소리가 많아진다. 오늘은 어땠니? 저녁은 먹었니? 누구를 만났니? 더 예쁜 옷은 없니? 이러면 딸은 “또 잔소리!” 하면서 눈을 흘긴다. 너도 엄마가 되어 봐라, 그땐 엄마 마음을 알겠지.

사랑은 아무리 과해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저녁도 굶으며 정신없이 본 영화에 이런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5월이면 가정의 달 -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착한 딸, 좋은 엄마가 되어 보자.




 

 

강미자 <동작구의사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