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56 (금)
통합교육과 오케스트라의 동질성을 읽어라
통합교육과 오케스트라의 동질성을 읽어라
  • 의사신문
  • 승인 2006.11.06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용일<을지의대 명예총장>

▲ 김용일 총장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어느 심포니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트럼펫 등 수 많은 관현악기과 타악기 연주자들이 제각기 자신의 고운 음색을 만들어 내면서 베토벤 심포니를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혹자는 그중에서도 누가 가장 잘했는가 하고 물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심포니에서는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가 잘 하느냐 못하느냐가 더 소중하지 개인 연주자의 장기는 숨어버린다.

전체 하모니위한 드러냄·절제 필요

같은 주제를 향하여 자신을 드러낼 때와 옆의 악기를 지원할 때를 구분하면서 하모니를 이루어 가고 있는데서 앙상블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지휘자가 흔드는 지휘봉에 맞추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8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신들린 것처럼 자신을 잊고 힘든 곳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드러냄과 옆의 악기를 위한 절제가 보인다.

둘째로 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각 부문의 최고 연주자들이건만 전체의 하모니를 위하여 자신의 소리를 높이고 또 줄인다. 1시간이 넘는 연주를 듣고 있으면 악장의 끝까지 주제의 기본 리듬이 숨어 있어서 몇 번씩 변주되는 것을 본다. 때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협주하면서 하나의 음악으로 승화되어 가고 있는가 하면, 대북이 요란하게 실내를 흔들고 콘트라바이스가 저음을 내면서 그리고 트롬본이 단조로움에 흥을 돋구어주며 제 역할을 감당할 때 그 음악의 클라이맥스는 가히 장관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긴 심포니 속에 가닥이 숨겨져 있다. 의학교육도 마찬가지로 전국의 의과대학이 편성하고 운영하고 있는 통합교육이라는 것도 오케스트라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쩌면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절차도 심포니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의과대학의 통합교육에 참여하는 해부학, 생화학, 병리학, 내과학, 외과학 등 여러 학과 소속의 교수들이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드러내지 않고 전문분야 내용을 강의하고 실습을 담당하면서도 전후의 다른 교수 내용과 보조를 맞추어 가면서 심장학, 소화기학 등의 통합된 학문의 진수를 향하여 초점을 맞추어가고 있다. 때로는 자신의 강의 속에서 진실이 강조되는 가하면 다른 교수의 강의를 뒷받침해주는 조화와 순서가 있듯이 말이다.

궁극적으로 대학의 교육목표 아래서 대학의 설립정신이 교육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며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휘자인 학장의 역할과 교수들의 참여, 그리고 이들의 협조를 비교해본다. 통합교육의 진수는 유사내용을 같은 시기에 모아 논리적으로 배열한 후 집중적으로 가르치되 해당분야 전문교수들이 집단 지도하는 교육과정이다. 여기에는 진정한 협동 없이는 아무런 교육적 의미를 찾지 못한다.

국내 의과대학의 대부분이 형식적으로 통합교육과정이라는 이름을 빌려 이 과정을 채택하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 아니고 단순한 연합을 하고 있는 셈이어서 중복과 틈새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학생들에게 혼선만 가져다 주고 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리더십 아쉬워

의과대학 교육이 요구하는 음악은 바로 오케스트라의 균형이나 조율과 같은 것이며, 통합교육 정신이야말로 교육과정 편성의 극치라고 할 의료의 대 서사시 같이 느껴진다.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건만 자신의 것만 생각한 나머지 전체를 잊어버리는 오늘의 교육을 보면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대학당국의 리더십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김용일<을지의대 명예총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