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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의 진료 실적 <10>
제중원의 진료 실적 <10>
  • 의사신문
  • 승인 2006.11.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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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의 미국인 의사들
제중원의 진료는 전적으로 미국인 의료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선 1885년 4월 개원 당시부터 1887년 7월까지는 북장로교 소속의 알렌(Horace N. Allen)이 진료 책임자였다. 1885년 5월 북감리교 소속의 스크랜튼(William B. Scranton)이 제중원 진료에 동참했으나 한 달 만에 물러났다. 1885년 6월부터 북장로교 소속의 헤론(John W. Heron)이 부임해 알렌과 함께 진료를 담당했다. 1887년 알렌이 외교관으로 변신하면서 헤론이 진료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헤론은 1890년 7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890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캐나다 토론토대학 YMCA 소속의 하디(Robeert A. Hardie)가 진료를 담당했다. 1891년 5월부터 1893년 11월까지는 북장로교 소속의 빈튼(C. C. Vinton)이 진료 책임자가 되었다. 이어서 1893년 11월 캐나다 출신의 미국북장로교 소속 의료선교사 에비슨(Oliver R. Avison)이 진료 책임자로 부임했다.

초창기 제중원의 진료 실적
제중원 진료실적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아직 없다. 다만 알렌의 일기, 알렌이 1886년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 제중원 개원 이후 1년 동안의 성과를 보고한 문건, `한성주보(漢城週報)' 등의 기록을 통해 초창기 제중원의 진료 실적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알렌의 기록에 따르면, 제중원은 개원 초 성황을 이루어 하루에 50∼7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했다. 날이 갈수록 외래환자 수가 증가해 하루 100여 명을 진료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1년 동안 1만 명 이상을 치료했다. 그런데 이 수치는 약간 과장된 듯하다. 같은 시기의 `한성주보' 기사에 의하면 “매일 와서 문병하고 가는 사람이 혹 20여 인 혹 30여 인도 되고, 원중(院中)에 항류(恒留)해 치료하는 사람이 혹 10여 인 혹 20여 인” 정도였다. 이 기록을 근거로 1년 동안 진료실적을 추산해보면, 3500∼7000명 선이 된다. 초창기 환자들을 보면, 조선 사람의 각 계층을 망라해 아래로는 걸인, 나병환자로부터 위로는 궁중의 귀인까지 다양한 편이었다.

1885~1886년 당시 조선인들의 주요 질환
알렌이 작성한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는 대단히 귀중한 자료다. 약간의 과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제중원 개원 후 1년 동안 진료한 환자에 대한 상세한 통계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 문건은 당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앓고 있던 질병의 종류와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초창기 제중원에서 치료했던 주요 질병을 살펴보면 말라리아가 가장 흔했다. 매독은 말라리아 다음으로 많았는데, 그 증상이 매우 다양했다. 그밖에도 소화불량, 각종 피부병, 결핵, 나병, 기생충병 등이 많았다. 특히 제중원의 특징은 외과술에 있었다. 초창기 1년 동안 400여 명이 외과 치료를 받았으며 130여 명은 수술까지 받았다. 이중에는 괴사병 환자의 대퇴골 절제수술이나 척추골 수술 및 백내장 수술처럼 규모가 큰 경우도 있었다.







김상태 <서울대병원 병원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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