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발의자의 한계…3인 삼각제 도입해야 <23>
세발의자의 한계…3인 삼각제 도입해야 <23>
  • 의사신문
  • 승인 2007.03.1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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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교수의 역활균형론에 대하여

전통적으로 의과대학 교수의 역할은 `등받이 없는 세발의자(three-legged stool)'에 비유되어 왔다. 세발의자는 네발 달린 의자에 비해 불안정하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그런대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stool'에는 등받이도 없으므로(영한사전에 보면 chair에는 등받이가 있다) 졸거나, 쓸데없는 동작을 하면 곧바로 넘어지기 마련이다.

이 세발의자의 세 다리는 교육, 연구, 봉사(진료)를 상징한다. 의과대학 교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교육, 연구, 봉사(진료)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넘어져 `코가 깨진다.'는 상당히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이 비유는 전통적으로도 의대교수의 역할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역할균형론이다.

그러나 이제 이 비유를 기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대신에 `3'이라는 숫자를 이어받은 다른 비유로 바뀌어 한때는 삼중고(三重苦, tripple threat), 요즘은 앞바퀴가 지나치게 큰 세발자전거(tricycle with oversized front)라는 비유가 쓰이고 있다.

삼중고는 교육, 연구, 봉사(진료)라는 3개의 역할에 찌들대로 찌든 의과대학 교수의 모습을 상징한다. 삼중고의 결과는 시간 경과에 따라 `창의력 손상' → `치밀함과 조정력 상실' → `삶의 의욕 상실'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세상에 삼중고를 버틸 장사가 어디 있으랴!

그런가 하면 앞바퀴가 비대한 세발자전거는 굴러가기는 하지만 구르는 추진력은 오로지 앞바퀴에만 의존한다. 때문에 앞만 보고 페달을 밟는 사람은 바퀴가 클수록 제법 잘 굴러간다고 착각하게 된다(잘 달리고 있다고 느끼시는지요?). 그러나 앞바퀴가 비대한 데 따른 결과는 2가지이다.


#교육,연구,진료의 삼중고와 불균형

첫째, 너무 작은 두 개의 뒷바퀴 때문에 앞바퀴도 잘 나가지 못하는(달리는 거리는 바퀴의 원주에 비례한다) 일이 생길 수 있다. 기초교수의 경우 작은 2개의 뒷바퀴(교육, 봉사) 때문에 연구(비대한 앞바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거나, 임상교수의 경우 작은 2개의 뒷바퀴(교육, 연구) 때문에 진료(비대한 앞바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뭔 소리냐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바퀴 하나가 비대해진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므로 아직 `세발의자' 비유에 담긴 역할균형론의 심오함이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조금만 지나면 그 결과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바퀴 하나가 보다 앞서 비대해진 미국의 경우 이미 그 부작용을 겪을 대로 겪고 있다).

둘째, 앞바퀴의 추진력이 워낙 강하여 뒷바퀴가 제동역할을 하지 못하고 너덜너덜 헤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앞바퀴 입장에서는 귀찮은 존재가 없어져 홀가분해질지도 모르겠으나 자전거를 탄 사람은 이때부터 외발자전거로 곡예를 해야 한다. 각자 하나의 바퀴만을 가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곡예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그런 곡예를 하는 분들이 주변에 흔하다(재미있으신가요?).

앞바퀴가 비대한 세발자전거로 비유되는 이 같은 현상 때문에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교육'이다. `교육'은 일부 몇몇 교수를 제외하고는 기초교수에게도 임상교수에게도 앞바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의과대학에서 이미 바퀴 구실도 못하고 굴러가는 앞바퀴에 대한 제동역할도 못하고 너덜너덜해진, 왜소한 `교육이라는 이름의 바퀴'를 관찰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앞바퀴 말고 나머지 다른 바퀴를 돌아보라. 아니 혹시 이미 외바퀴는 아닌가?

까짓 각자 외바퀴만으로 곡예를 하면 어떠랴? 의대교수라면 그 정도 곡예는 늘 해오던 일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바퀴자전거 곡예가 오래갈 수 없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다.

더구나 기초교수는 연구라는 외바퀴자전거, 임상교수는 진료라는 외바퀴자전거를 타고 저마다 질주하면 교육은 누가 하라는 말인가? 대학이든 병원이든 기관 차원의 역할균형은 이미 깨진지 오래이다. 사실 세발자전거의 바퀴 하나가 비대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대세이다.

`세발의자에 앉은 의대교수'의 전통적 이미지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화가이자, 과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발명가이기도 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21세기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외발자전거 곡예론 의료발전 한계

첨단 의생명과학의 발전과 학문세분화 때문에 이제는 제아무리 뛰어난 의대교수라도 연구 한 분야를 감당하기가 벅차다. 의료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기대 향상, 병원재정의 악화로 제아무리 뛰어난 의대교수라도 진료 한 분야를 감당하기도 벅차다.

`세발의자에 앉은 의대교수'는 이제 난센스 혹은 노스탤지어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료 혹은 연구에는 적지 않은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데 비해 교육에는 전혀 인센티브를 보장하지 않는 병원과 의과대학 제도도 여기에 부채질을 한다. 하기야 세태를 따라가기도 급급한 것이 우리의 제도니까….

외발자전거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마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학문과 테크놀로지는 더욱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연구-진료의 `세발의자'라는 비유에 나타나는 `3자의 유기적 관계를 통한 의학의 발전'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연구·실천·후속세대 양성이라는 3개의 관계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곧 학문 혹은 전문분야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이 같은 사정 때문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역시 `3'의 숫자를 이어받아 비유하자면 큰 바퀴 자전거 3개를 결합하여 달려가는 `3인 삼각' 경기이다.

비슷한 상황을 오래전부터 겪어온 미국에서는 소위 트랙 시스템(track system)이라는 것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각자 바퀴 하나가 비대한 자전거를 타는 교수 3인을 잘 묶어 온전한 세발자전거를 만드는 것으로, 연구중심 교수와 진료중심 교수, 교육중심 교수 트랙을 만들고 이들 간에 적절한 공조와 협력을 통해 교육-연구-진료의 균형발전을 도모하자는 제도이다.

실제로 이런 제도를 채택한 반더빌트 의과대학은 `3인 삼각'제도 도입 후 이전에 비해 연구, 진료, 교육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모두 상승했다는 연구결과를 과시하고 있다.


#연구중심,진료중심,교육중심 교수로

사실을 직시하자면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인 `등받이 없는 세발의자(three-legged stool)'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이다. 사라진 것을 눈앞에 보는 듯이 느끼는 것은 착각 혹은 자기기만이다. 전통적 관념이 아직 작용하고 있는 듯 착각하면서 질주하는 동안 망가지는 것은 2개의 뒷바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뒤에서 고무 타는 냄새가 나지 않나요?).

우리도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3인 삼각' 제도를 저마다 모색해야할 시기가 되었다. 앞으로 의과대학이나 병원의 경쟁력은 이 `3인 삼각'을 어떻게 절묘하게(세 바퀴의 크기가 같아야 한다) 구현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 연구, 봉사(진료) 3자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의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일 `3인 삼각'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 수백, 수천 개의 외발자전거가 여기저기서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조만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신좌섭 <서울의대 의학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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