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인정평가로 충분한가? <22>
의과대학 인정평가로 충분한가? <22>
  • 의사신문
  • 승인 2007.03.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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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의생명과학 견인장치 역활 부족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과대학 인정평가로 충분하지 않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평가하는 쪽이나 평가받는 쪽 모두에게 너무 도발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충분하지 않다는 말인가? 인정평가로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발전을 견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을 펴기에 앞서서, 독자 중에 인정평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이 더 많을 것 같아 우선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는 41개의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이 있는데 이 `대학(원)들이 의사를 양성할 자격과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심사'하기 위해 1998년 7월 한국의과대학인정평가위원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졌고, 2005년 1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설립되면서 의평원 산하의 의과대학인정평가단(평가단)으로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1999년 신설의대에 대한 예비평가를 거쳐 2000년부터 시작된 제1주기 인정평가를 2004년도에 완결했으며 금년부터 제2주기 평가를 시행하기로 되어 있다.

#2주기 평가 시작, 대학선 '떨떠름'

평가단은 “인정평가는 의과대학의 의학교육 프로그램이 일정한 질적 수준을 갖고 있으며,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환자진료에 충분한 지식과 기술, 태도 및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국제간 의학 교류 및 의사 교류를 위한 전제조건인 대한민국 의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담보한다.”고 인정평가의 사명과 역할을 정의하고 있다.

2006년 말에 확정된 새 기준에 의하면 인정평가는 `의학교육데이터베이스 입력, 대학자체평가, 현지방문조사'의 3단계로 이루어지고 결과는 `인정, 인정유예, 인정불가, 임시인정'의 4유형으로 나뉜다. 아직까지는 민간차원의 평가이기 때문에 인정유예를 받더라도 실질적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곧 일정수준의 구속력을 획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년부터 시작되는 2주기 평가기준에 의하면, 평가는 대학운영체계, 교육목표와 교육과정, 학생, 교수, 시설, 설비, 졸업 후 교육의 6개 영역에 걸쳐 21개 분야, 75개 항목을 대상으로 한다.

이 같은 평가를 시행하는 목적은 첫째, 역량 있는 의사를 양성해서 사회에 공급해야 하는 의과대학의 책무를 감시하는 것이다. 둘째, 이렇게 의과대학의 책무이행 수준을 의료계가 자체적으로 감정하고 인증함으로써 의료계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도 목적의 하나이다. 의사는 전문직(professional)으로서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자기 자신을 감시하고 통제할 권한과 의무를 사회로부터 `조건부로' 부여받았다. 의료계는 좋은 의사를 양성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의과대학이 출현하여 의료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방지해야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셋째, 의과대학의 난립을 막아 의료 인력의 공급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부인할 수는 없다.

#교육시간, 시설등 양적평가 치중

그러나 2주기 인정평가에 대해 일선 대학은 그리 환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아니,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평원과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 간에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협의를 거쳐 만들어진 상당히 현실적인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학이 앞으로 4년에 걸쳐 시행되는 2주기 평가를 되도록 늦게 받으려고 한다. 물론 대학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뭔가 떠밀려가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현실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물론 평가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현재의 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인정평가 기준은 의평원 산하 평가단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지만, 특정한 규정의 존재여부, 특정한 교육의 시간 수, 특정 영역의 교수 수, 특정한 시설의 면적 등 양적 평가 중심이며, 평가기준이 필수기준, 권장기준, 우수기준으로 나뉘어 있지만 역시 정량적 구분이다.

#기준충족때 '이젠 안심' 안일함 조성

일련의 연속적인, 질적 발전을 추구해온 대학이 있다고 해도 그 노력은 정량적 기준 속에 묻혀버릴 위험을 갖고 있는 구조이다. 정성적 측면과 역사성이 감안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수기준을 많이 충족해도 특별히 대학에 돌아올 것이 없는 점도 문제가 된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인정평가는 의과대학의 최소기준 충족여부를 판가름하려는 것이지,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21세기 의생명과학을 `선도하도록 견인'하는 장치로는 미흡하다.

본 칼럼에서도 누차 언급되었듯이 세계화로 대변되는 21세기의 경쟁적 의료 및 교육 환경에 대응하려면 우리나라 의과대학은 빠른 속도의 혁신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인정평가제도는 일정 수준의 정량적 기준을 충족하면 그것으로 안심이라는 안일한 태도를 일선 대학에 조장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이 21세기 선도적 교육기관으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학 스스로 혁신을 지향하고 기관차원의 수행(performance)과 질(quality)의 수월성(excellence)을 추구하도록 조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정평가기준과 같이 `떠미는 최소기준'만이 아니라 `끌어당기는 최고기준'이 함께 존재할 필요가 있다.

끌어당기는 기준의 한 예로 1987년 미 의회가 경쟁적 환경에서의 수행과 질의 수월성 지표로 제시한 말콤 발드리지 상의 교육기관용 준거(1999년)를 소개해두고자 한다. 이 준거는 ① 리더십, ② 전략기획, ③ 학생/이해관계자/시장 중시, ④ 측정과 분석, 지식관리, ⑤ 교수와 직원 중시, ⑥ 프로세스 관리, ⑦ 조직의 수행결과 등 7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끌어당기는 최고기준' 마련을

요컨대 이 지표는 조직이 강력한 혁신적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지, 참여와 동의에 근거한 전략기획(조직의 방향성 정립)을 정례적으로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대학이 봉사해야할 대상인 학생/이해관계자/교육시장의 요구를 진정으로 수렴하고 이들의 만족도를 부단히 관리하고 있는지(즉,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사고방식[inside-out mind set]'으로부터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사고방식[outside-in mind set]'으로 전환했는지), 대학의 수행에 관련된 모든 주요지표를 모니터하며 대학과 구성원이 생산하는 지식을 소중하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교수와 직원을 중시하고 체계적 인재육성체제(human resource management system)를 구축하고 있는지, 학습과정과 학습 환경, 학습문화의 핵심적인 프로세스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위 6개 영역의 핵심수행지표들을 잘 기록하고 관리, 평가하고 있는지 등을 평가하고 있다.

이 준거는 대학을 경쟁력 중심의 기업가적 마인드로 바라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다소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있겠으나 이 같은 방향의 혁신추구는 이미 21세기 대학의 가장 중차대한 사회적 책무가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서울의대가 `비전 2017'을 공표하고 2007년부터 2012년에 이르는 향후 5년간 추구할 전략과 집중 관리할 핵심수행지표를 제시한 것은 이 같은 질적 수월성을 추구하기위한 노력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좌섭 <서울의대 의학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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