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20:52 (토)
보완의학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자 <20>
보완의학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자 <20>
  • 의사신문
  • 승인 2007.02.27 15: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과대학에서 왜 한의학을 가르치는가?

최근 2∼3년 사이에 한의학 및 보완의학(complimentary medicine: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한의학이 제도의학이므로 `한의학 및 보완의학'이라는 표현을 한의학계에서는 무척 언짢아하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란다)을 교육과정에 도입하는 의과대학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2006년도 말 기준으로 대략 20개(41개 의과대학의 절반) 의과대학에서 한의학 또는 보완의학을 교육하고 있다. 2002년 5월 기준으로 10개 대학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던 데에 비하면 비교적 빠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보완의학교육, 정치적인 해석 위험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서양의학 혹은 현대의학과 전혀 다른 체계와 패러다임을 갖고 있는 한의학 및 보완의학을 의과대학에서 가르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언뜻 `밥그릇 싸움(영 마땅치 않은 표현이지만… 도대체 국민이 밥그릇이란 말인가?)으로 표현되는 의-한의-약업계의 관계에서 한의학 및 보완의학의 비과학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한의학개론, 침구경혈학개론, 보완대체의학의 과학적 근거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교육내용을 볼 때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한의학을 가르치는 것인가? 의과대학에서 한의학과 보완의학을 가르침으로써 기대하는 결과(outcome)는 무엇인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진맥도 하고 침도 놓을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황당무계한 소리로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작년 초가을 서울의대는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환자-의사-사회 6'이라는 교과목 안에서 `한의학과 보완의학'이라는 주제의 수업을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총 8시간에 불과한 수업이지만 한의학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의과대학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수년간 매우 조심스럽게 준비해온 성과였다. 필자는 복수(의사와 한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는 본교 졸업생 윤영주 박사와 더불어 `한의학과 보완의학' 교육의 기획을 맡았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한다는 사실을 알린 일이 없는데 교육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간지 기자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했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상당히 철학적이고 교육학적인 이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성의껏 답변을 하다가 아차 싶어 상황을 돌이켜보니 이들의 관심은 당시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던 국립대 한의대 설치에 쏠려 있었다.

요컨대 `서울대학교에 한의대를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서울의대가 한의학 교육을 하는 것은 소위 의료일원화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8시간 정도의 수업에 대해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할 정도로 무지한 사람들은 아닌데 놀라운 일이었다. 필자는 모처럼 준비한 교육에 피해가 올 것이 두려워 오도된 기사가 나가지 않도록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처럼 의과대학에서 한의학 및 보완의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지극히 정치적일 수 있는 이슈이다.

#통합의학·효율성등 학교마다 목적달라

사실 서울의대가 이 주제를 교육하기로 한 이유는 졸업생들이 (1) 우리 사회에서 한의학 및 보완의학의 이용실태는 어떻고 그 사회적 영향은 무엇인지, (2) 국민들은 왜 한의학 및 보완의학을 추구하는지, (3) 임상현장에서 한의학 및 보완의학을 이용하는 환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지, (4) 한의학 및 보완의학의 효용성과 안정성, 문제점, (5) 한의학 및 보완의학의 연구자원으로서의 효용성 등을 알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치료하는 환자들이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도 더 많이 의존하는 대상을 전혀 모르고 무방비 상태로 임상현장에 나가서는 환자에게나 우리 자신에게나 이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지적되듯이 한의학 또는 보완의학을 교육하는 목적은 대학마다 제각기 큰 편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단계에서 의과대학에서 한의학 및 보완의학을 가르치려는 목적은 3개 수준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소위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이다. 즉, 한의학 및 보완의학의 내용 중 효과와 안정성이 검증된 것만을 선택하여 현대 정통의학 안에 통합함으로써 의료일원화를 지향하는 목적을 가진 교육이다. 이 같은 교육과정의 배경에는 미국식 통합의학을 받아들이려는 생각이 깔려 있는데, 한의학이 보완대체의학(CAM: Compli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에 속하는 미국과 제도의학의 하나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전혀 다르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교육을 하고 있는 대학은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다. 이런 목적을 이루려면 상당히 많은 교육시간을 투여해야 하는데 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교육을 담당할 전문 인력도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소위 협진 모델로서 현대의학과 한의학 및 보완의학의 장점만을 살려 치료효과, 비용 측면에서 효율성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교육과정의 배경에는 한의학을 독자적 학문체계로 인정하고 상호 장점을 결합하여 국민건강에 이득이 되도록 하자는 생각이 깔려 있다. 따라서 당연히 서양의학 일변도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인정할 수 없는 그러나, 한의학계에서는 상당히 호응이 높은 사고방식이다.

셋째는 서로를 바로 알고 환자에게 최선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갖추자는 수준이다. 서울의대의 교육과정이 의도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진료를 받으면서 한약을 복용하는 환자를 무조건 나무라거나 혼내는 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한의학과 보완의학을 추구하는 이유를 알고 각 요법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올바르게 안내할 수 있는 정도의 소양을 갖추자는 것이다. 이번 교육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받은 설문에서 `이런 교육은 교수나 전공의, 개원의에게 더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 것은 현재 임상에 종사하는 의사들의 상당수가 이 교육이 추구하는 바의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는 소위 근거(evidence)가 부족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소중한 인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한의학 및 보완의학을 무조건 경원시하고 배척하는 부정적 시각을 방지하자는 의도도 있다.

현재의 의과대학 교육체계는 공식, 비공식, 이면(裏面)의 교육과정을 통해 한의학 및 보완의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입하고 있다. 이번 교육을 전후해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의과대학생들이 한의학 및 보완의학에 대해 갖는 태도는 의과대학 입학 후 점차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긍정을 5점 만점으로 했을 때, 한의학에 대한 태도는 3.4에서 2.6으로, 보완의학에 대한 태도는 3.3에서 2,9로). 게다가 71.4%의 학생이 이후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부정적 태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정확한 정보제공자 양성 교육부터

위 3가지 수준 중 어느 것이 현 단계에 적합한가에 대해서 합의된 결론은 없다. 필자는 우선 세 번째 수준의 교육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무방비 상태로 현장에 내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일원화를 주장하는 의사단체들은 첫 번째 수준 즉, 통합의학을 지향하는 교육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 한의학은 이미 제도의학이라는 점과 교육시간 및 전문 교수인력의 부족이라는 문제가 있다. 몇몇 대학에서 운영되고 있는 통합의학연구소나 보완대체의학연구소 등의 성과가 이 같은 상황의 타개에 부분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한의과대학의 영향력이 큰 재단의 의과대학의 경우에는 두 번째 수준의 교육을 추구할 수 있다.

따라서 당분간은 세 번째 수준의 교육이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대학의 철학과 미션, 비전에 따라 첫 번째와 두 번째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맥도 하고 침도 놓는 의사가 한의대가 아닌 의과대학에서 배출되기까지는 상당히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신좌섭 <서울의대 의학교육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