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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와 손문
히포크라테스와 손문
  • 의사신문
  • 승인 2007.02.2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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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시위현장에서 의대생이 의사선배들에게 읽어준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여하를 초월해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들으며, 내게 떠오른 것은 중국의 국부로 추앙 받는 손문이었다.

영국과 미국의 선진기술을 보고 배운 손문은 홍콩의 외과의사로 성공과 부를 갖추었지만, 그의 환자들이 처해있던 현실은 그를 의사로만 머물게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민족·민생 그리고 민권의 삼민주의는 서방의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그 나름의 철학이었을 것이었다. 그가 민생과 민권을 강조한 것은 민생의 어려움에 대한 해결이 소극적인 질환의 치유보다 더 많은 국민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동네의사 대부분의 삶은 바로 그런 민생에 허덕이는 서민들과 부대끼는 하루가 아닐까 싶다. 질환이 없고 환자가 없다면, 의사의 삶이 무너지는 그런 모순은 중생이 있어 부처가 있고, 죄가 있어 구원이 있다는 삶의 양면성이 아닐까 싶다. 질환 없는 그날을 위해 의사의 삶은 바쳐질 것이나, 그날이 올 수 있을까.

개원의, 히포크라테스 그리고 손문의 가치들은 의료법사태에 대해 어떤 내면의 대화를 할까. 혁명가란 세상을 치유하고자 자신의 삶을 투신하는 것이 아닐까. 손문이 혁명가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일 것이다.

국민의 민생을 의사가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사들이 환자 진료라는 협의의 역할에만 머물게 되면, 21세기에는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국가보건정책의 부품으로만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광의의 진료, 국민의 건강권 향상을 위해 의사들도 예방의학과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그 정책에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할 시점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의 왕이 되기 위해 왔다는 예수님께 제자가 그 옆의 한자리를 부탁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섬기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다는 귀절은 늘 내게 감동을 준다. 섬길 때, 귀를 열어 가장 낮은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세상의 왕이 된다는 그 역설. 그것이 성경의 기적일 것이다. 우리의 싸움 역시 국민을 섬기기 위한 제도의 완비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의 승리가 보장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높아지기 위해 낮아져야 할 때가 아닐까.







정인주 <영등포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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