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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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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07.02.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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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경 <고려의대 교수>

▲ 선 경 교수
잘 알려진 동화 같은 얘기가 있다. 기억이 맞다면 탈무드에서 읽은 것 같은데, 아무려면 어떠냐.

신기한 물건을 하나씩 가진 세 형제가 살고 있었다. 첫째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을, 둘째는 아무리 먼 거리도 순식간에 갈 수 있는 양탄자를, 막내는 어떤 병이라도 고칠 수 있는 마술사과를 가지고 있었다.

한정된 자원 놓고 뺏기싸움 말아야

하루는 첫째가 망원경으로 세상을 살피다가 머나먼 한 왕국의 임금님이 내린 포고문을 읽게 되었다. 불치의 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공주를 고쳐주는 사람은 사위를 삼아 왕국을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형제들은 양탄자에 몸을 싣고 늦기 전에 왕국에 도착했다. 마술사과를 먹은 공주는 씻은 듯이 나았다. 임금님은 너무 기뻐서 연회를 열고 새로운 왕위계승자를 발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만… 누구랑 결혼을 시키지?

교훈적인 동화에서는 막내가 결혼을 한다. 왜냐하면 첫째와 둘째에게는 망원경과 양탄자가 남아있지만, 셋째는 가진 것을 모두 주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말한다. 남에게 무엇을 해줄 때는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런데 말이지, 현대사회의 지적소유권(intellectual property ; IP) 개념에 따르면 이런 결론은 문제가 있다. 우선 첫째는 주장할 것이다. 지금 세상은 정보(information)가 힘이라고.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다른 물건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느냐, 바로 know-where가 중요하다고. 둘째도 우길 것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고.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으면 다들 허탕을 쳤을 뿐, 바로 time-to-market이 결론이라고. 셋째는 큰소리 칠 것이다. 누가 뭐래도 공주를 직접 살린 것은 내 사과였다고. 아무리 디지털 정보사회라고 해도 결국 제품의 know-how가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게다가 더욱 재미있는 것은 세 아들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당당히 요구할 것이다. 공주와 결혼할 사람은 바로 나라고. 왜냐하면 너희들 모두 내가 낳아 기르고 가르쳤기 때문에, 너희들이 가진 것은 모두 다 내 것이라고.

언제부터인가 산의 정상을 넘어 내려가는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항상 앞서서 올라가기만 하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이제는 내려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저 산 밑에서 처음 오르기 시작했을 때도 분명히 내려가던 분들이 있었을 텐데. 전에는 안보이던 것이 지금 보인다는 말은 나도 산꼭대기에 거의 다 도착한 모양이다. 그러기에 건너편 내려가는 길이 보이는 게지.

의사로서,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혹은 행정가로서 열심히 걸어와서 인생의 정점을 지나 하산 길에 접어든 선배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아쉽게도 보기 싫은 뒷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눈에 띈다. 바로 세 아들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이다. 아무 것도 없는 맨땅에서, 혼자 고생해서 만들었고, 여기까지 흰머리 나면서 끌고 왔고, 사람들도 뽑아서 키웠고… 의국도 내 것, 연구소도 내 것, 책임교신저자도 내 것, 특허도 내 것, 모두 모두 다 내 것 같다.

판을 키워 해결하는 것이 선배의 도리

수십 명의 연구진이 상주하는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세 아들의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뿐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공주와 결혼하겠다고 덤비는 순간, 아들들은 실망해서 흩어지고 가족관계는 판이 깨지게 된다. 아버지는 마음을 비우고 아들들의 이해관계를 교통정리해 주어야만 한다. 더구나 조직과 인적 인프라를 유지해야만 다음 프로젝트를 열 수 있다. 다른 나라 공주가 또 아프지 말란 법 있나? 그때까지 마법사과를 길러서 첫째와 둘째를 장가보내면 된다. 혹시 아나? 그러다 보면 아버지에게도 기회가 올지.

한정된 자원을 누가 더 가질 것인가로 싸우지 말고, 판을 키워서 해결하자. 그것이 선배가 할 일이다.

선 경 <고려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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