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20:52 (토)
지하철에서의 단상
지하철에서의 단상
  • 의사신문
  • 승인 2006.11.01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병진<대한약사회 홍보이사>

▲ 김병진 이사
“그거 모으면 얼마나 벌어요?” “한달 꼬박하면 8만원 정도 벌어요.” 며칠 전 지하철을 이용해서 출근하던 중이었다. 경로석에 세로로 달린 손잡이에 무가지 신문을 가슴높이만큼 모아서 출입문 옆에 서 계시는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님이 눈에 띄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곱게 차려입고 경로석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하게 드신 할머님 두 분의 대화가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출근시간이 지나서인지 지하철 안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내릴 때가 다 되어 출구 앞으로 자리를 옮겨 바빠서 읽지 못한 조간신문을 뒤적이고 있던 나는 새로운 상황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따뜻한 대화, 끼어든 사람으로 왜곡

여러 곳의 사무실에서 일을 보기 위해서는 이동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에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사람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경영자 입장에서 세상을 읽는 기회를 얻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아휴, 한 달 꼬박해서 그거 벌거면 차라리 다른 걸 하지 그래요. 뭘 해도 그 벌이보다 못하겠어?” 그러는 가운데 평범한 차림의 비슷한 또래정도의 할머님께서 끼어 드셨다. 이 할머니가 끼어 들어 앞의 두 할머니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수준에서 진행된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주변 승객들이 무슨 이야긴가 주목하고 있음을 느끼신 그 남루한 차림의 할머님은 “가만히 있으면 뭐해요? 그리고 요즘 못 먹고 사는 사람이 있나요? 소일거리 삼아 용돈벌이나 하는 거지…”라며 자존심이 상하신 듯 조금 불쾌한 표정과 말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물어보던 할머님 옆에서 지금까지 잠자코 듣고 계시던 다른 할머님께서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에게 핀잔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먹고 살만하면 못사는 사람들이 가져다 팔게 양보해야지 왜 거둬가요?” 순식간에 전개된 상황으로 처음 말을 꺼낸 할머니는 “이게 아닌데”하는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신문을 수거한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편치 않은 마음으로 서 계시고…. 잠시 정적이 이어지면서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내렸다.

개찰구를 빠져 나오면서 그 할머님들은 “어떻게 정리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어렵게 보였지만 당당하게 자신을 생각하신 그 할머니께서 보여주셨던 모습에서 별 것 아닌 그 상황도 잘 끝내셨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다른 한가지. `만약에 처음 두 할머님의 대화로 상황이 끝났다면'하는 의문을 잠시 가져봤다. 과거에 대한 가정이 무의미하다고는 하지만 지하철에서의 상황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자신만이 최고·지선'착각 반성해야

곱게 차려입으신 할머님은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주변에 대해 관심과 배려하는 마음에서 물어 본 것으로 보였고, 남루한 모습의 할머님은 외모가 다소 남루한 모습일지라도 지금까지 자신 있게 당신의 삶을 개척해 오신 당당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런 두 분이 만나서 잠시나마 서로에게 힘이 되고 마음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나름의 생각으로 8만원 수입보다 더 많은 수입 꺼리가 있을 거라며 친절하게(?) 정보를 알려준 할머니나, 필요 이상의 박애주의(?)를 설파한 할머니로 인해 보기 좋게 끝날 수 있었던 모습이 망가져 엉뚱한 상황으로 벌어진 모양새를 보면서 잠시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분위기를 망가뜨린 두 할머님처럼 자신만이 최고이고, 자신만이 지선으로 착각하는 모습이 혹시 나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한 해를 마무리할 시기를 얼마 안 두고 잠시 스스로를 돌아다본다. 

김병진<대한약사회 홍보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