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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환경 최고인 나라
의료환경 최고인 나라
  • 의사신문
  • 승인 2007.01.31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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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어느 날, 진료실에 4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가 들어온다. 근처 내과에서 항문출혈로 인해 나에게 의뢰했다는 거다. 항문진찰을 하니 심하지는 않지만 치질과 치열이 동반되어 있는 경우다. 설명해준 후에 대장검사를 받아보도록 권유했더니 흔쾌히 응한다. 검사 날짜를 정하고 준비과정을 알려준 후에 돌려보냈다.

장면 2. 대장내시경 검사 중에 상행결장과 구불결장에서 커다란 용종을 발견하여 환자와 보호자에게 보여주면서 용종과 용종절제술 후에 올 수 있는 합병증에 대해 설명한 후에 동의를 얻어 용종절제술을 시행하였다.

장면 3. 일주일 후에 조직검사를 확인한 바, adenocarcinoma in situ가 용종의 tip에서 발견된 `관상형 선종'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환자의 형제들도 모두 검사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켰으며, 이후 수차례에 걸쳐 다른 형제들의 대장검사 여부를 확인하였으나 어느 형제도 검사를 받지 않았다.

장면 4.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지난번에 용종절제술을 시행하던 날 보호자로 와있던 바로 위의 누나가 항문에서 피가 난다고 진료실을 찾아왔다. 진찰 후에 대장내시경검사를 시행해보니 말기에 가까운 대장암이 발견되어 대학병원으로 전원시켜 수술을 받도록 했다.

장면 5. 환자의 남은 형제들이 이에 놀라 모두가 다 대장검사를 받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야말로 전혀 내켜하지 않는 표정으로 막내가 내원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 커다란 용종이 발견되어 제거했다. 형과 같은 adenocarcinoma in situ가 용종의 tip에서 발견된 관상형 선종'이었다.

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 심봤다.” 그는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지급받아 자기 형에게 한턱 쐈단다(내가 시켰다. 당신 형 덕분에 당신이 살게 되었으니 한턱 쏘라고….).

이상에서 서술한 상황을 곰곰이 씹어보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환자의 입장에서만 보면 무지무지 복 받은 나라다.

왜냐고? 무슨 헛소리냐고? 자, 한번 생각해 보자.

첫째, 이렇게 병의원이 많은 나라를 본 적이 있는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렇게 병원이 많은 나라는 없다. 물론 모든 선택권은 환자에게 있다. 둘째, 전국 어느 곳을 가도 환자가 원하기만 하면 아무 병원에서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모든 선택권이 환자에게 있는 것이다. 내가 제주도에 가서 아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셋째, 병원에 들어가 의사만 자리에 있다면 언제든지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대학병원은 약간 다르다. 영국은 독감에 걸려 병원을 찾아도 진료가 안 된다. 보통은 세 달 뒤에 예약날짜를 잡아준다. 그래서 한국정부가 말하듯이 감기 따위 가지고는 병원에 안 간다. 그냥 죽지.

넷째, 나도 의사지만 대한민국 의사들 내시경, 수술, 정말 잘한다. 세계적인 대가라고 하는 미국이나 영국의 의사들이 수술하고 내시경 하는 거 보았지만 대한민국 의사들 정말 잘한다. 그네들이 평생 하는 수술, 내시경 건수를 우리는 1년이면 다한다. 우리의 무지막지하게 저렴한 보험수가로 병원을 유지하려면 수없이 많은 환자를 봐야하거든. 그러니까 당연 내시경이나 수술 건수가 많을 수밖에. 수술, 내시경 많이 하는 의사가 잘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다섯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수가는 너무너무 싸다. 미국에서 500만원(싼 곳은 300만원)하는 대장내시경 검사가 대한민국에서는 5만원도 안 된다. 더욱 대단한 것은 용종을 6개나 제거해도 2개 값만 내면 된다. 7개부터는 돈도 안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렇듯 모든 여건이 잘 갖춰진(국민 입장에서 볼 때) 대한민국에서 어찌하여 `암 치료율'이 올라가지 않는 걸까. 이는 아직도 병원을 멀게만 생각하는 국민들에게만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우리 의사들이 좀 더 국민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좀 쉽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진료실에서 작은 캠페인을 벌여보자. “부부간에 생일선물 합시다!” “부모님께 생신 선물합시다!” 물론 그 선물은 4대 암 검사다. 배우자가 아프면 누가 고생할까. 부모님이 아프면 누가 고생할까. 나라에서 해주는 것이 있나. 우리나라는 모두 딸들의 몫(물론 며느리도 포함)이다. 실제 나도 아들이지만 식구들이 아플 때에 남자들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 나라의 모든 딸, 며느리, 부인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여보자.

“생일 선물합시다!” “없던 암이 1년 만에 말기암이 되지는 않습니다. 매년 생일날 생일 선물합시다.”

그러면서 알려주자. 당신네들이 정말로 좋은 의료 환경에서 살고 있음을. 그러면 그들의 머릿속에 우리 의사들이 얼마나 가까이 있고, 필요하고 아껴줘야 할 존재인지를 알아주지 않을까.







연재성 <서울시의사회 대외협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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