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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의료의 공공성
'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의료의 공공성
  • 승인 2007.01.0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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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영합보다 철저한 효율성 연구 절실
아무리 시장경제원리를 중요시하는 나라라 하더라도 의료에 관한 한 완전히 시장기구에 맡기는 예는 찾을 수 없다. 시장기구만에 의해 공공의 선을 달성하기 어렵기에 공공의 역할이 요구되며, 이는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지칭된다.

추상적인 개념이 언제나 그렇듯이 개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기 어려우며, 사실상 공공성이 풍기는 뉘앙스나 이를 위한 정책방향은 공동체에 따라 다양하다. 취약계층의 의료를 정부가 책임지는 것에 한정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료부문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목표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본다면 첫째, 의료서비스로부터 취약계층이 배제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둘째, 질병이라는 위험에 직면했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셋째, 국민 모두가 질좋은 의료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의료전반의 수준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사회보험이나 조세 등 투입된 공공재원이 최대한 효과를 발휘하여 전체 경제에 부담을 덜 줄 수 있도록 있도록 효율적인 지출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제약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들은 모두 의료 공공성의 강화방안이다.

문제는 이러한 목표들이 종종 대립된다는 점이다.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목표를 온전히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것은 어렵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이 건강상태가 나쁘거나 경제력이 취약한 사람들을 포괄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퍼센트의 보장성을 갖는 공보험 역시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날로 치솟는 의료비, 특히 미세하게 나은 효과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고급첨단의료 비용을 공보험으로 충당하기 위해서는 공적재원의 소요가 클 것이고, 이는 곧장 보험료를 부담하는 개인이나, 고용주, 조세를 부담하는 국민에게 돌아가 경제전체의 효율성을 크게 해치게 된다. 또한 공보험의 지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단되는 각종 규제 역시 의료서비스 전반의 질을 제고하는 데 장애가 된다. 어떤 산업을 불문하고,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도록 자유롭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보험으로 국민 모두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공공성 항목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민이 동일한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한 재원은 공적으로 부담되어야 한다'는 것은 실현될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또는 받아들이기 싫더라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공보험의 역할 범위가 책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필수적인 의료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이들 진료항목의 비용대비효과가 어떤 수준인지 연구결과를 축적한 후 이에 대해서는 공보험이 철저하게 보장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 나머지 영역까지 보장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민간보험을 선택해야 한다. 그 결과로 부유한 사람만이 큰 보험료를 부담하면서 걱정 없이 최고급의 첨단의료를 받게 되는 것은 하는 수 없다.

의료의 공공성을 효율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이를 위한 연구이다. 무작정 비급여항목을 급여항목으로 돌리는 것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상급병실료를 공보험이 부담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어떤 비급여항목이 필수적으로 보장돼야 하는지를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이 월등히 중요하다. 현재 국민들이 어느 만큼의 비용으로 어떤 비급여항목을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초 데이터조차 없는 실정에서 보장성 강화를 구호처럼 반복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미 보장되고 있는 급여 항목도 끊임없이 효과를 검증하여 삭제여부를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과제다. 공적재원의 책임성 있는 지출을 위해서는 주먹구구식인 대안이나 인기영합적인 처방보다 냉정한 계산이 따라야 한다.

여기에 더해 크게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여 공공병상의 비중을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이 추진 중인 점이다. 이미 선진국들의 인구대비 병상수를 크게 초과하는 상황에서 공공병상을 확충하여 얻을 수 있는 득은 거의 없다. 국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필요한 공중보건의 영역은 기존의 공공병원과 보건소와 보건지소, 진료소 등의 네트워크를 정상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일반적인 의료의 영역에서 공공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보다 더 나은 질의 서비스나 지출대비효과성을 갖는다는 실증적인 증거는 우리나라에서나 외국에서나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공공성의 추구와 공공병상의 확충은 별 연관을 찾기 어렵다.

네덜란드에서는 공적보험의 운영을 민간보험회사가 맡게 됐으며, 30여 국가에서는 교도소마저 민간이 운영하는 예들이 빈번하다. 즉 공공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무조건 정부가 직접 공급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공공성을 추구하기 위해 정부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설정하고, 필요한 서비스가 적절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판을 짜주고, 규칙을 지키면서 경쟁이 이루어지는지 감독하고, 공급되는 서비스의 질을 점검하여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체들을 제어하는 것이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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