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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건강보험의 반 시장적 문제
'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건강보험의 반 시장적 문제
  • 승인 2007.01.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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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정부개입탓 수요 · 공급자 불만
최근 KBS는 `백혈병 고액진료비의 비밀, 환자들은 왜 3억3000만원을 돌려받았나?'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하는 약물이 현행 보험급여 범위를 초과하고, 진료비용을 임의 비급여라는 불법 형태로 환자에게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백혈병환우회에서는 이 방송 이후 기자회견을 갖고 `A병원이 백혈병 환자의 치료비를 부당 청구하였으므로 환자에게 진료비를 환급하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사회보험의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시장의 논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하지만 사회보험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기형적 형태의 시스템이다.

시장(市場, market)이란 재화 서비스(용역)가 거래되어 가격이 결정되는 장소 또는 기구를 의미한다. 시장의 기능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겠으나 시장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한다.

그러나 의료에 있어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의료에 관한한 정부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하는 보건학자들은 도덕적, 경제적 용어로 정부개입을 옹호하곤 한다.

도덕적 측면에서의 주장은 “모든 사람들은 사회에 참여하는 구성원이므로 최소한도의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주장은 “의료시장은 보통의 경쟁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특수한 독점, 정보부족, 변동성, 불확실성, 예기치 못한 사건, 보험적용 여부, 협상 주체간의 불평등 등의 문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광범위한 시장실패와 의료보건자원의 잘못된 분배라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위의 백혈병 환자의 예에서 드러난 문제의 핵심은 의료 자원의 배분에 있어 무원칙한 정부개입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백혈병 환자들은 희귀질환으로 분류되어 전체 진료비의 10%만 본인이 부담하면 되기 때문에 겉으로는 정부개입에 의해 환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심사기준이라고 하는 준 법률적 잣대에 의해 약제의 사용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에 심사기준을 넘어서 약제의 사용이 꼭 필요한 경우 의료기관으로서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환자에 대한 자선 시혜를 베풀거나 아니면 경우에 따라서는 비급여라는 명목으로 환자에게 비용을 부과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잘못된 정부개입으로 인해 의료기관에게는 환자에 대한 도덕적 의무만을 부과할 따름이지 의무의 이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적 동인(動因)도 주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는 보편적인 시장원리에 비추어 볼 때 치명적인 문제점을 지닌 명백한 행정적 실패의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지금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모든 정책들의 기본 시각은 정부개입을 당연시하는 일부 보건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정부는 보건의료 정책의 모든 결정과 집행 단계에서 시장의 왜곡을 유발하는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의료에 대한 포퓰리즘적 접근법에 의해 숫적으로 열세인 공급자의 희생을 더 많이 강요하고 있으며, 건강 보험료 약가 및 수가 결정에서 일방적인 합의를 종용하고 있고, 심사 평가 과정에서 의학적인 기준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심사기준이라고 하는 비합리적인 잣대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정부개입으로 공급자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의해 시장 선택권이 제한되었으며, 수요자는 사회보험제도인 건강보험제도와 민간보험제도인 사보험 사이에 선택권이 박탈되고 있다. 그 결과 건강보험공단의 비대화, 재정집행의 비효율화, 관료조직의 절대 권력화를 초래하고, 공급자와 수요자들은 국가중심의 건강보험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갖는 등 건강보험체계의 붕괴를 염려해야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오래 전 대영제국 시대에 영국의 죄수들을 호주의 감옥으로 호송하는 배가 있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출발할 당시의 죄수 1인당 일정금액의 호송비를 지급했더니 호주까지 무사히 호송된 죄수는 10%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호주에 도착하여 생존한 죄수 1인당 일정금액의 호송비를 지급하게 되자 죄수들 대부분이 살아서 호송되었다고 한다. 과연 처음에 죄수를 호송한 배의 선원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나중에 호송한 배의 선원들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들이라 그런 결과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는가?

의료분야의 문제라 해서 인간의 행동양식과 관료조직이 지닌 기본적 원칙이 갑자기 마술처럼 사라진다고 믿을 수는 없다. 또한 어떠한 최고의 사회관리 시스템도 훌륭하고 가치 있는 목적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으며, 만족시킬 수 있다는 착각 하에 그럴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

“시장은 앞 못 보며 무계획적이며 조화롭지 못하지만, 잘 연구되고 합리적이며 조직적이고 조화로우며 과학적인 기초를 갖고 미래를 내다보며, 통계적인 근거를 갖는 정부의 계획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하는 Joseph(1976)의 주장이 지금 이 시점에 자꾸 뇌리를 맴도는 것은 이 시대 한국의 병든 건강보험제도를 바라보는 나만이 동떨어진 생각일까?

우봉식 <노원구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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