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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한국의사들, 어디로 가나
'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한국의사들, 어디로 가나
  • 승인 2007.01.0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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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변화의 물결에 빠르게 대응해야
인류의 역사에서 불의 발견, 전기의 발명, 비행기, 우주선 그리고 인터넷의 발명은 인류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꾼 사건들이다. 한국의료의 역사에서 전국민의료보험의 시행, 건강보험 통합, 의약분업의 시행 또한 한국의료시스템을 크게 바꾼 혁명적 사건(혁명의 성공여부를 떠나)들이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의사들은 조만간 다가 올 또 다른 혁명적 사건을 예측이라도 하듯이 불안을 넘어 변화에 대한 공포까지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의사들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과연 의사들의 이런 불안감의 실체는 무엇이고 한국의사들을 둘러싼 미래는 어떻게 될까?

1. 의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사유하는 인간은 사회를 통해서만 자아실현을 할 수 있고 그럴 때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의사도 인간이며 의사라는 직업이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라고 할 때 의사들은 사회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중고등학교때 배운 내용이다. 의사들은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또한 인술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사들도 있다. 의사들은 자신이 가진 전문지식이 죽음을 넘나드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심지어 하늘이 준 권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누가 의사를 전문가라고 부르는가? 왜 의사를 전문가라고 부르는가? 의사의 전문가적 권위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사회 혹은 환자들이 일정한 배타적 권리와 권위를 인정해 준 것이다. 이것의 전제는 의사가 환자는 알지 못하는 전문지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의사의 권리와 권위는 의사들이 그들의 전문지식으로 사회와 환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때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를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한번쯤 의사에게 신세질 가능성이 있는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다. 그들이 의사를 전문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자신들이 잘 모르는 의사가 가진 전문지식이 자신들을 만족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전문가로서 위기를 맡고 있는 것은 이런 환자들이 고전적인 기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환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환자들의 기대수준은 치료의 영역에서 기적을 바라는 수준까지 높아져 있다. 의사들이 사회에서 전문가로서 권리와 권위를 유지하려면 사회와 환자가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은 고전의 전문가에 대한 새로운 탐구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2. 의학은 변한다 미국 국립과학기금(National Science Foundation)은 과학이 IT, BT, NT, CS(Cognitive Science)로 재편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2005년에 발표했다. 개미 연구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지식의 대통합(The Unity of Knowledge)에서 자연과학의 통합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의 통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식과 지식체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나 학자들의 주장이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이미 변화는 의학영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상당수 의과대학의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교실이 BT 연구를 수행하고 있고, 의학-생물학-공학 또는 의학-법학-철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연구가 계획되고 추진되고 있으며, 의학교육 분야에서 인문사회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그리고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 등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심화 등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일부 의과대학과 세계화와 미래에 눈을 뜬 일부 교수들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반면 정작 그 지식을 사용해야할 일선의 의사들은 이런 변화의 물결에 둔감하고 아직도 금새 변해버릴 치료기술을 배우는데 고정되어 연연해하고 있다. 치료기술의 변화 속도는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빠르다. 의사들이 치료기술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달라진 치료기술을 학습하는 것과 함께 의학의 변화방향과 기술 변화의 속도에 민감해야만 한다. 기술은 달라지지만 방향과 속도는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을 담당해야할 의과대학과 교수들이 게으르다는 것은 한국의학과 한국의사 모두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다.

3. 국민 건강수준을 높여라 비스마르크시절부터 건강권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여겨져 왔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 유지, 증진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건강권은 헌법적 권리로 명시되어 있다. 만약, 의료서비스 이용이 증가할수록 그 국민의 건강수준(사망률, 평균수명, 건강수명, 질보전 수명 등으로 측정)이 향상된다면 국가는 의료비지출을 늘리려 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는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의료서비스 이용 증가가 특정 연령이나 조건에서 건강수준 향상의 효과가 있지만 절대적으로 국민 건강수준향상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건강수준을 높이기 위한 환경개선, 영양개선, 보건교육 등에 더 큰 예산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반면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서비스시스템은 형평, 효율, 보장성 등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원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은 몇 가지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  첫째, 국가는 건강수준향상을 위한 환경개선, 영양개선, 보건교육 사업의 주체로서 민간의료공급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 의료서비스시스템 개선의 목표를 형평에서 효율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야 한다. 셋째, 의사들은 의료서비스 제공만으로 국민건강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환경개선, 영양개선, 보건교육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정부는 공공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민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민간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건강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은 고통이 없는 상태나 질병이 없는 상태를 건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의사들은 고통과 질병의 해결사로서보다 더 큰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료기관이 공공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남이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고객인 환자들이 요구가 그렇게 달라진 것이다. 위에서 필자는 의사를 둘러싼 사회학적, 과학적, 경제적 문제들에 대해 역사와 변화를 간략하게 얘기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변화를 현실화 시키는 정책결정이 비합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념에 기반한 정치권력의 영향일 것이다. 한국에서 의사들의 미래는 당분간 정치적인 단합과 노력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변할 것이며 그 기다림은 길지 않을 것이다.

미래학자인 앨빈토플러는 최근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시간, 공간, 지식이 부의 혁명을 촉발하는 핵심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변화의 속도에 따라 지식이 무용화 되고 축적되고 확산되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고, 경제의 공간적 범위가 점점 확장되고 있으며, 지식은 재조직화되고 개념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정부의 변화속도가 가장 느리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의료도 의학도 변하고 있다. 한국의 보건의료정책도 변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의사들도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의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권용진 <서울의대 의료정책실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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