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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주제제기 - 의료 공공성과 시장성의 균형
'한국의료와 시장경제' 새 길을 열자
주제제기 - 의료 공공성과 시장성의 균형
  • 승인 2007.01.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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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화된 의료현장의 요구 적극 수용을
지난 수년간 이루어진 `의료시장개방' `의료영리법인 허용' `사보험' 등의 논의에서, 의료의 공공성과 시장성은 타협할 수 없는 두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의료에 대한 시장경제적 접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하기 위한 불순한 음모처럼 공격을 받았고, 관련 행정당국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고 수시로 대책을 발표했지만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만을 야기해왔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을 수출해서 어렵게 번 외화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다 낭비하고 있다고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역 수지를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는 대표적 요인이 관광, 교육, 의료 같은 서비스 산업 분야의 취약점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진 국민들은 생활의 전반적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의 다양하고 질 높은 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통제, 특히 교육과 의료시스템을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획일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하나의 산업으로서 고용을 창출하고, 국부에 보탬이 되어야 할 서비스산업을 오히려 나라 살림에 짐을 지우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

싱가포르, 태국,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는 의료가 외화를 벌어 들이는 서비스산업의 축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데 반해, 보다 나은 의료시설과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금 왜 이런 상태에 빠진 것인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함께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첫째, 의료환경의 변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매년 다국적 기업에서 신약과 신의료기술을 의료시장에 내놓고 있는 현 시점의 의료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돈이 없는 사람에게 TV를 판매하지 않았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병원에서 의사가 충수돌기염(맹장염) 환자에게 수술비가 없다고 수술을 거부했다면 이는 진료거부로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다. 가전제품과 같은 일반재화와는 달리, 의료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충수돌기염 환자에 대한 수술과 같은 `필수의료'의 혜택은 누구에게나 보장 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진료 현장에서 쓰이는 `신약' `신의료기술' 을 적용시킨 의료행위의 상당수는 혁신적 치료효과의 개선보다, 부작용을 감소시키거나 생존기간을 조금 증가시키는 등 서비스 측면을 개선시킨 것으로 `선택의료'에 속하는 것들이지만 가격은 10배내지 100배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TV로 비교하자면, 브라운관 TV까지가 필수의료의 형태라면, 지금 의료현장에 도입되는 `신의료기술' 들은 대형 LCD-TV에 해당한다.

모든 국민에게 의료이기 때문에 대형 LCD-TV와 같은 `선택적 의료'까지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보장해야 한다면, 그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 것인지? 이 같은 진료환경의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는 의료의 공공성과 시장성의 개념적 충돌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둘째, 세계화 (globalization)속에서 한국 의료계의 좌표설정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의 FTA협상과정의 큰 이슈는 의약품 시장에 대한 문제다. 한국이 미국에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공산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의약품시장의 개방은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제표준(global standards)을 지키지 않고는 국가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이 같은 논의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은 한국의료제도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분석이다.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의약품시장의 개방이고, 반대로 한국은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의료인력이 미국에 진출하여 쉽게 활동할 수 있게 자격제도에 대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면, 제약산업은 국제경쟁력이 떨어져 있는 반면, 우수한 인적 자원이 모여있는 의료서비스산업 자체는 세계를 무대로 경쟁을 해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장점을 잘 이용한 전략수립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셋째, 국가 경쟁력에 대한 성찰이다. 현재 한국의 경제력을 유지하는 동력은 제조업과 정보기술(IT) 등이다. 그런데, 이 같은 분야는 규모가 확대됨에도 불구하고 생산시설의 자동화와 대량생산으로 고용창출의 효과는 미미하다. 또,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들의 참여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세대에 한국의 경제를 이끌 분야로 BT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이 꿈을 실현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암 환자들이 엄청난 돈을 쓰고도 최고의 치료를 받았다고 만족해하는 대표적인 병원인 미국대형병원의 환자 1인당 고용인원은 우리나라의 10배에 달한다. 의료는 제조업과 달리, 자동화나 대량 생산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분야로, 개개 환자의 특수성을 고려한 서비스의 창출을 전제로 발전된다. 따라서, 많은 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의료서비스가 산업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의료 산업의 발전은 국민들의 의료에 대한 요구도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면에서는 엄청난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일조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국대형병원과 같은 의료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료기술이나 인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저수가 의료제도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 방식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의료는 공공성의 논리로 압도되어 왔으나, 이 같은 단면적인 접근은 한계에 부딪혀 있다. 전국민이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고 `필수의료'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선택의료'에 속하는 부분을 시장경제에 맡겨 건강보험재정을 안정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의료서비스 산업을 활성화시켜 국가 경제를 살리고 실업률을 줄일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우리에게는 있다. 공공성과 시장성을 상충된 개념으로 이원화시키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다원화된 의료현장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의료의 공공적 측면과 산업적 측면의 발전에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의 모색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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