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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학교육의 발전을 기대한다
한국의학교육의 발전을 기대한다
  • 승인 2007.01.0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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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1) 우리 의과대학의 태평성대는 의로운 것인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호구지책을 마련하고, 때로는 `야심'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자기발전을 도모하며 살아간다. 더 나아가서는 `꿈' `이상' `사랑' `봉사'라는 말들로 표현되는 자아실현을 이루고자 살아간다. 천만금을 모으고 최고위직에 이르러도 윤리성과 이타심을 바탕으로 하는 자아실현의 요소가 없으면 허전함을 느낀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2007년에도 의학교육계의 당면문제는 많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것처럼 의학교육계는 빠르고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우리 의학교육계는 느리고 수동적이었다. 한 목소리를 이루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모은 한 목소리에도 행동은 제 각각이었다. 적지 않은 행동들의 기본 배경이 재정적, 행정적 이익이었다. 정부에서도 이 점을 이용하여 의학교육계를 쉽게 분열시키며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하였다. 과거 학장협의회에서 의학전문대학원을 반대하였지만, `어차피 갈 것 일찍 가서 많은 지원을 받자'고 하며 제도가 시작되었다. 국립대 한의과대학을 한 목소리로 반대하였지만 `누가 먹어도 먹을 떡이라면 내가 먹자'고 하여 국립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은 순항을 하고 있다. 오히려 확대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우리 의학교육계의 변화 수준으로 미루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의학교육기관의 첫 번째 철학은 자금이다. 교육내용과 교육철학에 우선한다. 당연히 자금은 기관의 생존을 좌우하는 첫째 요인이다. 혹자는 호구지책이 해결되지 않는데 자기발전은 무엇이며 자아실현은 무엇인가를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 먹고 숨을 쉬는 것이라 하여 우리의 첫 번째 철학이 먹고 숨 쉬는 것이 될 수는 없다.

기업은 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한다. 병원은 환자의 건강증진을 통하여 환자와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감을 높이겠다고 한다. 대학은 학생을 우수한 인재로 양성하겠다고 한다. 이들 모두 속으로는 재원을 확보하여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며 고객으로부터 외면 받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 그래야 그들의 사명 완수가 가능하다. 최근의 사회에서 기업, 정치인, 병원, 비의학계 대학에 대한 고객의 보복은 냉혹하다. 고객의 상대평가에서 낙오하는 것은 퇴출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중 고객이 외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독과점, 담합, 시장의 규칙 부재 등이다. 오늘 의과대학(이하 의학전문대학원을 포함함)들은 퇴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늘의 의과대학들이 누리는 `태평성대'는 의로운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의과대학은 의료의 배타성, 즉, 의과대학을 나와야 의사면허 취득이 가능하고, 의사면허가 있어야 의료행위가 가능하다는 사실로, 그리고 의사들의 안정적인 사회 지위 때문에 다른 대학들보다도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다. 학생들은 의과대학 교육과정이 불만족스러워도 의사면허를 받을 수 있는 한, 전공의 과정 입문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한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의사의 교육과정은 매우 길고 그 과정 중에서 의과대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고 그들에게 의료인이 되는 과정으로서 오히려 전공의, 전임의 과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밟는 석·박사 과정도 유사한 경우가 많다.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만 있다면 교육과정에서 무엇을 가르치던, 수강료를 얼마를 받던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 셈이다. 실제 운전은 면허를 취득한 후에 더 많이 배우기 때문이다. 더욱이 운전면허가 있으면 웬만큼 생활이 보장된다면 더 그럴 것이다. 의료 직업의 확실한 진입장벽, 아직은 의사의 안정적 미래에 힘입어 의학교육에 있어 시장의 논리가 무력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단상 2) 일부 우리 대학원의 자화상 : 수요자와 공급자의 담합 몇 달 전 의학전문지에서 한 전공의가 쓴 의과대학 학술대학원 교육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의 글을 읽었다.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30∼40년 전에도 그랬다. 의학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도 다 안다.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집안에 의사가 1∼2명은 대개 있고 그들이 어떻게 박사학위를 취득했는지 다 안다. 다행히 기초의학 분야는 물론 임상의학분야에서도 과거 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교육기관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의학계 학술대학원들이 많다. 학사관리가 부실하고 그렇다 보니 교육과정을 감당할 수 없는 여건의 학생들도 거뜬히 학위를 취득한다. 밤 새워 환자를 보고, 환자 진료에 일정이 바쁜 전공의와 개원의들이 학위 과정을 별 문제없이 밟고 있다.

원인들도 알고 있다. 우선 수요자 입장에서 가수요가 많다. 전술한 전공의의 표현대로 `남이 가니 나도 간다.' 아직도 개원가에서 박사 학위의 간판 효과가 있다. 임상 계열의 경우 이미 전문의 과정,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우수 논문 업적을 가져 객관적으로 능력이 인정되어도 임상의학 계열의 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현행법에 의해서도 박사 학위 없이 교수직도 가능하고 대학원생 지도도 가능하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가수요가 많다. `학생의 수업이 부실해도 우리에게는 등록금이 필요하다' `1년에 몇 번 출석하더라도 대학원 과정을 안 밟는 것보다는 학생을 위하여 좋다' `임상의학 계열의 교수는 박사 학위가 없어도 된다고 하면 다른 분야 교수들이 우습게 본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일을 시키느냐?'는 의견이 공식회의에서 제시된다. 이렇게 수요자와 공급자의 담합에 힘입어 시장을 우롱하는 독특한 현상이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의학계 학술대학원에 대한 2007년도 BK 사업비를 전액 삭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의학전문대학원 지원사업에 포함되어 있어 오해를 산 것도 있지만 의학계 학술대학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행히 상당한 개선이 있어 대부분의 기초의학 학술대학원과 일부의 임상의학 학술대학원의 운영은 모범적이다. 제대로 수업하고 제대로 평가하며 엄한 기준의 학위 논문을 요구한다. 국제 유명학술지에 논문 게재 능력이 없으면 박사학위를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전공단위를 평가하여 성적에 따라 대학원생 정원을 차등 배정한다.

언제까지 이상한 담합에 눈을 감고 있을 것인가. 다소의 아픔이 있더라도 고쳐야 할 우리의 치부다. 가수요를 없애자. 박사학위에 못지않은 전문의 자격의 긍지를 높이자. 능력을 갖춘 전문의에게 별도의 박사 학위를 요구하지 말자. 남이 우리를 우습게 볼까 두려워 후배들에게 악습을 강요하지 말자. 정말 학문적 이유 때문에 원하는 사람들에게 대학원 교육의 기회를 주고 대신 이들에게 성의껏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자. 대학원 교육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학위를 지도한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 교수의 업적을 인정하는 것은 가수요를 창출한다. 교육의 질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 교육할, 교육 받을 동기가 없는 사람은 참여하기 어렵고 참여할 필요도 없어야 한다. 불필요한 대학원의 매력은 불행을 초래한다. 올바른 길을 위하여 비울 것은 비우자. 왜곡된 자기발전을 위하여, 자아실현이 없는 허탈한 교육에 대한 집착은 이제 버리자.







왕규창 <서울의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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