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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과 한의학전문대학원
로스쿨과 한의학전문대학원
  • 의사신문
  • 승인 2006.12.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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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숙 <울산의대 교수>

▲ 박인숙 교수
40여개 대학들이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수많은 수험생들이 학수고대하였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설립이 계속 난항을 겪는 것에 대한 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의대학장협의회 등 의료인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당근과 채찍을 이용한 강압에 못 이겨 많은 의대들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 하였으며 더 심한 것은 최근 한의학전문대학원 설립도 막지 못한 의료계의 일원으로써 로스쿨 설립저지를 바라보는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상황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의사와 변호사는 두 가지 공통점과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최고 성적의 학생 만이 법대와 의대에 입학한다는 점이요, 또 하나는 언론에서 탈세·병역비리·부정입학·부동산 투기 등 각종 비리에 연루된 `사회의 지도층'을 질타할 때에 의사와 변호사는 빠지지 않고 단골로 언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이 있는 반면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도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업무의 대가로써 변호사 수임료는 많게는 억대에 이르지만 의사의 진찰료는 적게는 수 천원으로 대단히 모욕적인 수준이다(요즈음에는 수 십 억 원 대의 수입을 올리는 의사도 있고 반대로 도산직전의 변호사도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인 경우로 치자).

둘째로 극명하게 다른 점은 자신들의 고유 업무와 관련된 제도와 정책은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국가와 사회도 바꿀 수 있는 `칼자루'를 가졌는지 못 가졌는지의 차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력과 로비 파워의 차이다.

언론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로스쿨설립 저지에는 변호사들의 영향이 매우 크다. 현재 국회의원 294명 중 51명, 특히 법사위원 16명 중 11명이 변호사다. 이에 반해 의사 국회의원은 단 4명이며 그나마 교육위원회에는 아무도 없고 보건복지위원회에 단 한사람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의료계의 정치세력화'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이를 공개 선언할 정도로 의사들은 순진하기까지 하며 더 심각한 것은 한 목소리를 낼 강력한 구심점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정부에서 의료계에 부당한 요구를 해도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매사 정부의 강요대로 끌려가는 상황이 되었다.

국내 의대 41개 중 27개가 이미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한 시점에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이 늦었으나 그래도 이에 따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정부가 의학전문대학원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던 이유는 사교육비 절감, 인성교육 강화, 그리고 연구력 강화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 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바람과는 반대로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은 훨씬 더 많아졌으며 또한 다른 목적들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미루어보아 부정적으로 생각된다. 나아가서 의학전문대학원으로의 전환으로 말미암아 이공계의 쇠락도 매우 염려되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부친 한의학전문대학원 신설도 결국 정부 안 대로 결정되었고 이로 인하여 의과대학과 지역사회에 깊은 갈등의 골만 남겼다. 한의학전문대학원의 설립으로 인하여 의학 발전은 또다시 반대방향으로 퇴행하는 꼴로, 엄청난 폐단을 안고 있는 의료이원화는 이제 한층 더 굳어지는 양상이다.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양심 있는 지식인과 교육자, 정치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로스쿨 설립저지에서 변호사들의 일사 분란한 행동을 보면서 그 반대 상황에 처한 의료계와 나아가서는 국민 모두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변호사는 남을 설득시키고 주장을 관철시키는 일이 본업이지만 의사들은 매사를 사실과 증거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 이외에 정부와 언론, 국민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태생적으로 변호사와 비교하여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도 정부와 국민들을 설득시켜 의사들의 주장이 의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주장임을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까지, 특히 근래에 와서 의사들은 참으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가 아닌 사람들은 이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다.

일반 국민들은 그 내막을 모르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지금의 의료정책 중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며 이로 인하여 환자와 의사 모두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잘못된 정부 정책으로 인한 의사들의 억울함이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국민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나 정작 피해의 당사자인 국민들은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사들을 나무라고 있다. 의사들의 설득력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가 부족한 탓이다.

우리 모두 눈앞의 작은 이익은 다소 희생하더라도 사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의사들만으로 어려우면 변호사를 비롯한 타 직종 및 시민단체로부터의 적극적인 도움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의사단체의 수장의 `섬김의 리더십' `통합의 리더십'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오로지 봉사와 희생에서만 나올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솔선수범하는, 그래서 의사들 모두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는 수장이 의료계의 앞날을 그리는 마스터플랜을 구상하고 이를 성취하기위한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도 살고 국민들도 행복해질 것이다.

박인숙 <울산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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