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2:50 (목)
본지 김동희 기자, 태국 · 미얀마 접경
난민 의료봉사 동행 취재기 <하>
본지 김동희 기자, 태국 · 미얀마 접경
난민 의료봉사 동행 취재기 <하>
  • 김동희 기자
  • 승인 2006.12.11 1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의 찬가' 부르기엔 현실 참상 가혹

넷째날 아침이 밝았다. 운무가 서린 새벽 강가는 황홀하도록 아름다웠다. 밤새 벌레와 빗소리에 잠을 설친 봉사자들도 학교 베란다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다. 새벽부터 냇가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물을 깃는 아이들, 빨래하는 아낙네들…. 너무도 평화로운 풍경이다. 잠시 저들이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는 착각을 했다.

주일날이라 장중하고 엄숙한 아침 예배를 드렸다. 정도연 목사는 설교를 통해 80년대 초 가수 하덕규가 발표한 가시나무새라는 노래를 빗대 카렌난민들의 아픔을 표현했다. “내속엔 내가 너무 많아, 당신이 쉴 곳이 없네, 내속에 있는 이길 수 없는 슬픔은 가시나무새 같네∼” 음악봉사자의 섹서폰 연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들으면서 우리의 작은 의약품이, 잠시지만 그들을 육체의 고통에서나마 벗어나게 해주기를 기도했다.

오전 9시 진료가 시작됐다. 여기서도 언어가 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2∼3중의 통역과 영어 구사가 가능한 사람들의 중간 통역으로 진료를 펼쳤다.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엄마들이 3∼4명의 자녀를 데리고 와서 진료를 받는 바람에 소아과 선생님이 제일 정신이 없다. 눈망울이 똘망똘망한 귀여운 아이들은 언제 보아도 천사 같다.

현지인 통역자는 이곳은 저녁 6시 이후로 통금이 시작되므로 우리의 밤은 매우 길다며 아이들이 많은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조금 후에는 전쟁 후유증으로 장님이 된 사람, 팔다리가 절단된 사람 등이 진료를 받으러 진료소에 들렀다. 안내하는 봉사자들의 손을 놓칠세라 어린아이들처럼 꼭 붙든다. 간호사나 의료기사 선생들이 밀려오는 환자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서 안내하고 검사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밀려드는 환자 최선 다해 진료
이날 진료를 받은 32세 청년 글레디는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라가 없어서 결혼하지 못한다며 기자에게 자기 나라의 독립을 응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소아과 한미영 교수의 딸 전영주양(여의도초등학교 2년)도 의료봉사단을 돕겠다고 고사리 손으로 약봉지를 싸고 있다. 약속 처방으로 미리 조제해온 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국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보통 한 가족당 3∼4명이 진료를 받았으며 대부분이 아이들이라 떠드는 소리가 공명으로 울려 퍼진다.

정도연 목사는 이들은 정해진 곳에서만 머물러야 하고, 운동도 정해진 시간에만 해야 하는 등 구속된 생활을 하고 있다며 UN도 물질적인 원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기술과 언어 등을 가르켜 의식을 깨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오후에는 현지 안내자를 따라 난민촌 내에 있는 시장과 병원을 둘러보았다. 카렌족 난민촌병원은 현지인 의사 1∼2명에 수백명의 환자들이 침대도 없이 그냥 맨바닥에 수액제만을 달랑 꽂고 누워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의사 1∼2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환자였으며 약품 부족으로 별다른 조치는 할 수 없어 보였다. 또 난민촌 내에 자체적으로 생긴 시장은 6만명이라는 인구 수에 맞게 제법 규모가 컸다. 대부분 잡화와 음식물, 전통의상 등을 팔고 있었다. 우리의 옛모습 같이 정겨웠다. 1∼2바트의 돈으로 음료수와 야자수를 사먹으며 시장을 돌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우리가 큰 구경거리 같다. 어느 동네에나 있듯이 이 곳에도 머리에 꽃을 꽂은 광녀가 우리를 따라다닌다. 헬로! 헬로! 하면서 악수를 건네는데 할 수 없이 손을 맞잡았더니 피부병이 심해보였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벌써 내가 의연해졌나? 이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아이들이나 강아지들이 각종 피부병을 달고 살고 있었다. 동네 어귀에서는 아이들이 축구를 즐긴다. 아이들의 꿈이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지도 받지 않아서인지 그저 공만 열심히 쫓는 수준이다. 그래도 밝은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어느덧 오후 6시 진료가 마무리 됐다. 오늘 하루만 대략 1200여명의 환자를 보살폈다. 의료봉사팀을 위해 진료소에서 50분쯤 떨어진 여관에 숙소가 마련됐다. 샤워라도 편하게 하라는 배려에서다.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조중생 단장을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이 모여 맥주 한잔에 피로를 달랬다. 아침 6시 난민촌으로 출발이라 긴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지만 맥주 한잔으로 다들 난민촌과 이번 의료봉사의 교감을 깊이 나누며 앞으로도 더 나은 봉사를 펼치기를 다짐했다.

난민촌에서의 둘째날 진료가 시작됐다. 예정된 오전 진료지만 점점 더 많은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알약 한 알을 받으려는 욕심보다는 타국에서 그들을 도우려고 온 한마음봉사단의 따듯한 마음을 잡고 싶은 듯 손을 내밀었다. 특별한 병이 없는 이들에게는 비타민과 칫솔을 쥐어서 보냈다. 우리의 순수한 봉사가 저들에게 싸구려 동정심으로 비춰져서는 안되는데…. 낮 12시 준비한 약들이 떨어졌다. 현지 사정에 의해 충분한 양을 준비했고 환자는 남았는데도 진료를 더 할 수 없다. 일부 남은 약들을 전달하고는 이번 한마음봉사단의 진료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행정지원팀 최승완 간사는 “이번 의료봉사팀에 한미영 교수의 딸 영주양과 이양순 간호조무사의 아들 종현군, 고현아 작가 등이 봉사활동 중 많은 부분을 담당해 주어서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또 “이번 의료봉사를 토대로 앞으로 더 나은 지원을 위해 NGO단체로 등록하는 등 한마음봉사단 활성화에 더욱 노력하겠다”며 이번에 후원해준 밝은사회클럽 및 일동제약을 비롯한 제약사에 감사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경희의료원 한마음봉사단은 오전 예정된 모든 진료를 끝마치고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퍼지는 교회 학교를 뒤로 한 채 난민촌을 떠나 치앙마이로 향했다.

#'희망의 씨앗' 싹트길 기원
떠나는 길에는 모두들 말을 잃었다. 마치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을 두고 멀리 떨어져야 하는 것 같은 애절함 같은 심정이 기자의 마음을 스쳤다.

이후의 시간은 음악, 태권도, 영어 등 자원봉사자들의 집인 메짠공동체 방문 및 간단한 관광이 있었다. 관광 중에도 조중생 단장의 여권분실 사건 등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봉사단을 위한 시간이 없었던 예년과는 달리 피로를 풀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함께 준비되어 있어서 봉사 후에도 관광을 즐기는 한마음봉사단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번 태국봉사활동에는 내과, 이비인후과, 소아과, 안과, 흉부외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6개 진료과 등 6명의 스태프를 비롯한 21명의 간호사 및 행정 지원단이 참여했다. 이번 진료에는 초음파기기, 자동혈액분석기 등 주요장비를 동원하여 의료혜택의 경험이 없는 고산족 및 국경 난민 6만여명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실시했다. 태국 치앙마이 메짠공동체 선교사들의 자원봉사자의 통역으로 진행된 이번 의료시혜에는 고산족 및 난민 5000여명을 진료했다. 특히 심장 이상 소견이 보이는 어린이 2명을 경희의료원으로 초청,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으며 앞으로도 이 지역에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한편 경희의료원 한마음봉사단은 지난 2005년 서울시의사회가 수여하는 `한미참의료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경희의료원 한마음봉사 참여자 명단

조중생(이비인후과) · 김수철(흉부외과) · 신옥영(마취과) · 한미영(소아과) 교수 김경엽(내과 전공의), 김응수(안과 군의관), 황경미 · 최수미(약사), 조용현(의료기사), 허숙희 · 정수정 · 김병은 · 김정희 · 이경란 · 이정희 · 정태숙 · 정명숙(간호사), 이양순 · 진복자 · 김봉순 · 송복여(간호조무사), 최승완 · 강희두(행정지원), 고현아 · 김동희 · 이종현 · 전영주(외부인력) 이상 27명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