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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처럼 번지는 의학전문대학원의 허상
최면처럼 번지는 의학전문대학원의 허상
  • 의사신문
  • 승인 2006.12.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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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규창 <서울의대 학장> 제20차 의학교육합동학술대회 토론을 듣고

▲ 왕규창 학장
2006년 11월 17일 유성에서 한국의과대학학장협의회, 한국의학교육학회, 대한의학회가 공동 주최한 의학교육합동학술대회는 여러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

먼저, 참석자의 규모와 열정이다. 400∼500명의 청중들이 모여 저녁 6시에 일정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발표와 토론에 적극 참여하였다. 의학교육을 논하는 자리에 자주 참석하는 인사들은 물론이고 각 대학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접하는 교수들도 많이 참석하였다.
 
10여 명의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도 초청되었다. 이날 학회장에 열기가 가득하였던 것은 축복보다는 논란과 갈등 속에서 시작된 의학전문대학원의 운영에 대한 관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높아가는 의학교육에 대한 관심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런데 필자는 발표 내용을 듣다가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몇 가지 놀라운 것들을 접하였다.

2005년 의학교육계가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라 함)와 상호 공격과 비난에 가까운 논란과 갈등을 겪으면서 2010년 우리나라 전체 의학교육의 틀을 새로이 그리기로 하고 주요 대학들이 의학전문대학원 시범 운영에 참여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단순히 `BK 지원을 받기 위하여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였다'는 해석이 있었다.

2005년 후반 뒤늦게나마 교육부가 파악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문제점, 세계 의학교육 틀에 대한 왜곡 사실 인식, 이미 여러 혜택을 받으며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한 대학들의 입장, 고액 등록금에 대한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의 반발과 우수 고교 졸업생들이 비전환 의과대학으로 유입되는 데에 따른 기전환 대학들의 조바심, 교육부의 정책 후퇴에 대한 부담감, 만신창이가 된 의학교육 틀, 억지로 연계되었던 법학전문대학원 인가와 BK 지원 여부 등, 숱하게 얽힌 문제들을 큰 무리없이 풀고자 낸 고육지책이 공공연히 폄하되고 있었다.

당시 `BK는 BK이고, 전문대학원은 전문대학원이다'는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얼마 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의사를 육성하고자 BK 예산 220여억원을 책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하여 전액 삭감하고자 했던 것도 알고 보면 취지에 맞지 않는 일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이를 억지로 진행한 탓일 것이다. 의학교육계의 분열로 인하여 더욱 복잡해진 사안을 수습하고자 하는 노력이, 그 과정을 잘 아시는 분에 의하여 폄하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의학전문대학원 논의에 있어서 학생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는 인상이다. 현재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전형은 복수 지원이 불가능하다. 초기에 전환 대학이 몇 안 될 때는 그럴 수 있다고 하나, 전환 대학이 늘어나면 복수 지원을 허용하여야 한다. 대학 서열화를 막기 위하여 복수 지원을 의도적으로 막는다는 설명은 다분히 대학 중심 사고다. 능력 있는 학생이 선택의 문제로 낙방하는 것은 고려되지 않았다. 현재의 학부 입시에서 복수 지원을 허용하는 취지는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의학전문대학원 운영에 있어서 교육 철학보다는 대학 수익이 우선되어 있었다. 등록금은 교육 원가에 의거하여 책정하는 것이 순리다. 등록금을 먼저 책정하고 이에 맞게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당일 학술대회에서는 우선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고 여기에 맞게 교육과정을 개발한다는 설명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면서 입학부터 석사학위 취득까지의 학생 수업 연한이 과거 8년이었던 것이 4년으로 짧아지는 것을 이유로 등록금이 대폭 인상되었다.

과거 의과대학과 근본적으로 의학교육이 같으므로 새로이 달라져야 하는 교육과정은 별로 없지만 학생들을 무마하기 위하여 교육과정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공감한다. 그러나 그렇게 교육의 순리를 저버리며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추진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나라 의학교육 비용 중 학생부담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있어 이에 대한 수정이 요구된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 문제는 의학전문대학원이 아닌 그 문제 자체로 풀어야 한다.

의학전문대학원에 학부 졸업생이 입학하여 의학교육이 진일보 되었다는 허상이 최면처럼 번지고 있었다. 최근 시행된 의학전문대학원의 교과과정 개선은 대부분 의과대학 시절에 이미 진행되었어야 하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미 많은 의과대학이 예과 경유 진입생을 대상으로 그러한 개선을 수행하였다. 학술대회 당일 마치 의학전문대학원 전환 후 `성숙한 성인'인 학부 졸업생이 입학하였기에 교과과정 개선이 가능하였던 것 같은 분위기(누구도 딱 잘라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에 어이가 없었다.

나이가 든 학생들은 당연히 더 성숙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숙이라는 단어에는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을 수 있다. 더욱이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 과정이 학생들이 성숙해지는 마지막 단계는 아니다. 전공의, 전임의, 군의관, 그리고 초기의 사회생활 등등, 당연히 이어지는 성숙의 기회는 길게 남아 있는 상태다. 가령,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른 공부나 운동을 하다 늦어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성숙한 행동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느냐는 다른 이야기다. 물론 나이가 들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뒤쳐진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그들의 경력이 달라서 학교 다닐 당시의 상황이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학술대회 당일 성인 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하여 수용하기 어려운 추론까지 이어지는 분위기에 놀랐다. 예과 경유 진입생도 어엿한 성인이다. 자기주장이 의학전문대학원생보다 적다고 하여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귀한 인재들이다. 몇몇 의학전문대학원이 학제 전환과 함께 교육과정을 바꾼 주된 이유는 성숙한 학생들에 대한 배려 보다는 오히려 등록금을 인상하면서 자기주장이 강한 학생들에 대한 명분을 찾고자 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 또한 모자람이 많고 무심히 하는 실수들이 많겠지만, 학술대회를 마치면서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함께 참석한 학생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오늘의 토론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왕규창 <서울의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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