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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하는 의료정책
역주행하는 의료정책
  • 의사신문
  • 승인 2006.12.1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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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자 <서대문 나산부인과의원장>

▲ 남소자 원장
참으로 대단한 변화 속에 살고 있다. 해외병원으로 몰려간 돈이 올해 1억 달러에 육박한다는 정부통계가 발표되었다.

40여년전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캐치프레이즈아래 우리 국민이 총력 수출한 돈이 1964년 12월, 1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수출의 날'까지 제정, 자축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질병치료를 해외에서 쓴 돈이 지난 9월 현재 7120만 달러라니….

해외원정 진료비 1억달러 넘을듯

연말까지는 1억 달러를 넘을 추세라니 우리가 부자 된 것을 기뻐해야 할지, 우리 의료계가 받고 있는 현실을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지금 이런 현실이 수없이 많이 탄생한 각종 의료 법령이 의료인들의 발에 채워진 족쇄로 작용한 탓인지 우리 의료인들이 나태하고 현실에 안주, 발전을 못한 책임인지 따지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발상이다.

다만 우리의 의학이 세계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이 매스컴의 보도나 의학자들의 논문 발표수가 괄목할만한 수준에 올랐다는 사실이 우리 의료계가 정체, 또는 후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제국에서 성형수술이나 피부치료를 겸한 관광러시를 이루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1949년 윤일선 교수의 논문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SCI 논문집에 처음 게재된 이래 2003년 전 세계 의학논문 총 발표논문의 1.97%에 달했다(한국 의학한림원 의학수준 평가위원회 임정기 위원장 발표)는 발표를 볼 때 우리나라 의료계가 잠만 자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세계적인 의학연구결과가 우리나라 의학자가 처음으로 인정받았다는 매스컴의 보도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인사가 외국에 가서 우리나라 의료기술수준의 치료를 받고 왔다는 기사가 나오고 어떤 경우 국내 매스컴에 시달리기 싫다는 듯 외국 병원에 도피성 입원 후 귀국 했다는 보도가 버젓이 나와 돈이 없어 외국에 못나가는 진짜 환자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기술의 불신 때문인지 정부의 홍보정책 미흡 때문인지 의료선진국인 미국 환자들이 우리나라는 돌아보지도 않고 인도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로 간다는 기사를 보고는 새삼 우리 주변을 둘러보게 하고 있다.

일방적이건 강제로 실시되고 있는 숱한 정책과 이들 정책을 오기로 유지하려는 법령이나 시행령이 수없이 많아 의사들이 진료나 연구에만 몰두할 수 없게 만들고 심한 경우 의사들을 항상 감시 감독하고 예비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 의료계로 하여금 의료의 국위선양을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나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때다.

여태까지 의료정책이나 법령은 의료계 발전을 위해 그 행위당사자인 의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완벽한 사회주의적인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감시와 처벌을 극단적으로 행하면 그것에 맞게 인간이 순치된다는 식의 정책은 의료계 주변 곳곳에 보인다.

병·의원을 과다하게 이용하는 일부 건보가입자를 색출한답시고 가입자 700만명에게 `실제 병원에 갔느냐?'는 조사에 의사가 시달리고 소득공제 증빙자료 제출건은 의사나 환자를 온통 발가벗겨 진열장에 세워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용기 북돋워줄 위정자 기대

의료소비자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분은 의사 자신뿐 아니라 환자정보를 고스란히 알아서 악용될 소지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갖가지 열악한 제약 속에 외국인들을 향해 “우리나라 의료수준이 외국에 못지않으니 이곳에 와서 치료하고 관광도 하고 가시오”라고 광고할 수 있겠는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미워도 밖으로 향해서는 우리 의료계를 자랑하고 의사들 용기를 북돋워줄 정책을 펴줄 위정자는 없는가. 

남소자 <서대문 나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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