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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병원의 미래를 말한다<동북아 허브로 성장 가능성은>
어린이병원의 미래를 말한다<동북아 허브로 성장 가능성은>
  • 승인 2006.11.3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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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어린이병원의 미래를 말한다

동북아 허브로 성장 가능성은

김현우<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진료연계 프로그램 개발등 잠재력 무궁

 얼마 전 너밍이라는 10살짜리 몽고 여자 아이가 고관절 무혈성 괴사로 입원하여 수술적 치료를 받고 돌아갔다. 몽고에서 사전에 e메일로 문의를 했고, 주말을 이용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바로 병원으로 와서 입원수속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MRI를 포함한 검사와 수술 전 준비를 최대한 단기간 내에 진행하여 입원 4일째 되는 날 수술을 진행했고, 수술 후 10일 정도의 충분한 회복 및 재활 기간을 거친 후 퇴원했다.

 물론 아이와 나는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입원기간 내내 따뜻한 눈빛만 보냈고, 치료 후 몽고로 돌아가는 그 아이와 부모의 환한 얼굴에서 우리나라 어린이를 치료할 때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만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그들이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생활에 크게 만족해 했다는 데에 나 스스로도 뿌듯했다.

 너밍은 어린이병원이 개원한 후 처음 맞은 진정한 의미의 `외국인 환자'여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외국인 환자'란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 환자나 자선사업 성격을 띠고 우리가 데리고 와서 치료하는 외국인 환자가 아닌, 100% 본인부담으로 오로지 양질의 진료를 찾아 한국에 와서 치료를 받고 다시 귀국하는 환자를 뜻한다. 나는 그런 너밍을 통해 세브란스어린이병원의 글로벌한 성장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100일 전 `동북아지역 어린이병원 허브'라는 슬로건을 걸고 세브란스어린이병원이 태어났다. 간질, 뇌성마비, 발달장애, 배뇨장애 및 이분척추, 소아암이라는 5대 전문 클리닉을 필두로 하여 아시아 허브 어린이병원으로 발돋움 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의료진의 수준이나 새로 상큼하게 단장한 병원 건물과 시설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환자 중심의 진료 체계와 친절 서비스 또한 선진국 수준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나름대로 내실을 다지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에 대한 내국인 환자의 만족도는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아직 외국 손님을 맞을 준비는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잠시 눈을 돌려 이미 아시아 의료시장의 허브가 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살펴보자. 인도는 선진국의 10%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연간 약 15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의료 투어 진흥팀'을 구성하여 외국인 환자 및 보호자용 비자까지 발급하고 있다.

태국은 관광과 저렴한 치료비를 무기로 이미 연간 약 110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의료비가 비싼 싱가포르는 `높은 의료 수준'을 중심으로 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2012년까지 외국에서 찾아오는 환자 수를 연 100만명으로 늘린다는 `싱가폴 메디신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1만3000명의 고용 효과와 약 16억달러의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일부 병원은 국제환자센터를 개설하여 입국, 관광, 쇼핑 등을 연계한 일괄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뜨겁게 열을 올리고 있다. 아시아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의료 투어'는 이들 동남아 국가들에게는 차세대 유망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국가들의 사정은 어떤가. 어린이병원만 따져도 일본에는 총 26개의 어린이병원이 있고 이들의 병상 수를 더하면 4000개가 넘는다. 중국은 의료에서도 이미 `무서운 잠재력을 지닌' 상태를 넘어 하루가 다르게 대형화, 고급화를 지향하는 병원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어 정확히 그 개수를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이러한 경쟁 상대들을 두고 이제 겨우 우리 나라에서 두 번째로 개원한 어린이병원이 `동북아 허브병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건다는 것은 자칫 의욕만 앞세운 허구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최근 `동북아 허브'라는 말이 사회 각 분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동북아 허브'는 말 그대로 동북아시아의 중심지를 말하는 것으로 교통, 경제, 금융, 의료 등 사회 제반 요소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구체적인 전략이 없는 구호는 허공 속의 외침일 뿐이다. 동남아시아 병원들의 의료 허브를 향한 질주를 바라보며 우리는 지금이라도 일어나 뛰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없는, 우리만의 무기를 개발하여 그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비근한 예로, 수년 전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성형수술 실력과 저렴한 의료비용을 한류 문화, 쇼핑 등과 연계시킨 `성형 관광'이 붐을 일으켜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성들이 끊임 없이 한국을 찾고 있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와 같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한류 스타들의 영화나 콘서트 등과 세브란스어린이병원에서의 수준 높은 진료를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면 눈을 찾아 한국을 찾는 동남아인들을 겨냥하여 `치료 + 스키, 스노우보드' 등의 패키지 상품도 생각할 수 있다.

싱가포르도 했고, 태국도 했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지정학적 위치도 좋고 사회 제반 인프라도 풍부하게 구축되어 있다. 위용을 자랑하는 병원 건물이 믿음을 주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인테리어가 편안함을 준다. 환자 중심의 서비스가 휴식을 주고, 최고의 의료진이 완치를 준다.

 세브란스어린이병원은 준비된 병원으로서 동북아 어린이병원 허브의 맹주를 자처하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꿈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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