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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전문진료' 어디까지 왔나<어린이전문병원의 새모델 창조>
`어린이 전문진료' 어디까지 왔나<어린이전문병원의 새모델 창조>
  • 승인 2006.11.3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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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주<연세대 건축공학과>
어린이전문병원의 새모델 창조

민선주<연세대 건축공학과>



놀이공원 같은 신나고 친근한 장소 연출

 인간의 피부를 경계로 하여 의학은 그 내부를 담당하고 건축은 그 외부를 담당하고 있다. 의학이 담당하는 인체 내부는 인간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을 우리가 즉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건축학에 비해서 세분화되고 더 앞서서 연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건축은 단지 우리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을 아직 규명하고 인지하는 수단이 발달되지 못한 탓으로, 건축 공간의 조형적인 부분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일부 건축마감재들이 인체에 유해한 것을 발견해나가고 있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건축공간들이 서서히 우리를 죽여가고 있는지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색채 또는 빛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를 못하고 있다.

 설계수업 담론 중 필자는 위와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다. 미술을 좋아해서 건축과를 왔다고 하는 학생들은 지금까지 건축교육이 그래왔듯이 그리고 현재 건축가들이 그러하고 있듯이 작가로서의 훌륭한 작품성을 지닌 건축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꿈을 안고 수업에 임하게 된다.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신체, 행태와 인지적 특성을 파악하기보다 자신의 작가성과 시대성을 표상한다는 미명아래 단순한 화장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세브란스어린이병원에서 새로 리모델링할 병원을 위한 지침을 만들기 위해 연락을 준 후, 혹시라도 어린이병원을 위한 지침이 있을까 해서 국내 자료로부터 해외 자료까지 사방팔방으로 찾아보았지만 어린이병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전혀 찾아지지 않았다.

 의지할만한 근거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우선은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어린이집 공간'에 관한 지침들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 또한 그 수준은 가볍거나 근거가 미약한 내용들에 불과하였다. 결국 연구팀 스스로 어린이가 된 입장에서 원하는 공간을 상상하며 지침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어린이들의 공간 경험치  어린이들이 병원에 도착한 상황 속에서의 마음을 유추해보면, 몸이 아프기 때문에 마음이 극히 불안한 상태일 것이다. 질병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왜 자신이 이렇게 불편한지 그 이유를 모른 채, 전혀 생경한 공간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로 보아왔던 공간은 집 또는 어린이집과 같은 그다지 크지 않는 공간이었는데 갑자기 병원이라는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생소한 곳에 다다르면서, 마주치는 아이들도 모두 자신과 같이 아프거나 겁에 질린 상태이며 걱정스런 표정의 어른들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서 진료실 문 앞에서 다다르면 그 문 안 쪽에서는 아이들의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자신은 그 어딘지도 모르는 문 앞에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와 선생님과 친구와 함께하는 듯한 병원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편안하고 병이 잘 나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개념적 소재로서 집과 어린이집 외에 놀이 공원을 생각해보았다. 역시 생소한 공간이지만 놀이 공원은 모든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장소로서의 이미지가 확실히 인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브란스어린이병원이 엄마가 있는 집과 같은 병원,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어린이집과 같은 병원, 그리고 신나는 놀이공원과 같은 병원이 되고자 하였다.

 무채색의 높은 건물들이 빽빽한 세브란스 단지로 들어선 후에 마주치게 되는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입구의 예쁜이 기린들은 혼란스런 어린이들에게 멀리서부터 반갑게 맞이하며 안도감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이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더 많은 친근한 이미지들이 어린이들의 시선에 더 가까운 바닥면과 벽면 하부에 설치되어 있다. 제한된 층고를 가진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입구 영역을 위층으로 개방이 되도록 하여 공간의 변화를 주었는데, 이 곳에서는 오색의 기구들이 천정에 떠서 아이들의 두려움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들은 유아서적에 많이 등장하여 이미 인지할 수 있는 이미지들로 자연과 사람, 도시에서 따온 요소들로 층마다 다른 테마를 가지고 색채와 연계되어 계획되어 있다. 혹시라도 어린이들이 혼자 이동하게 될 때, 자신이 속한 층을 색채와 그림으로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외의 주요 디자인 가이드라인들은 다음과 같다. ① 공공장소 이미지가 강한 가구들을 사용하기보다 집 거실에서 접하는 소파와 같은 가구들을 사용하였다. ② 아동과 어른의 신체와 지각을 고려한 2분법적인 디자인으로 어린이들의 신체 치수에 적절한 계획과 설치를 하였다.

예를 들어,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낮은 카운터와 어른 눈높이 맞는 카운터를 같이 설치하여 키가 작은 아동이 높은 벽과 같은 카운터에 감추어져 소외되지 않도록 하였다.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이미지들이 하부에 위치하는 것에 반해, 어른들을 위한 안내 표지판들이 여러 이미지들과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벽면 상부는 편안하고 단순한 색채를 사용하여 안정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③ 모든 소재와 설치물들은 안전, 청결과 유지관리를 고려하여 계획되었다. ④ 모든 설치물들은 부드러운 인상을 주기위한 것뿐만 아니라, 실제 어린이들이 부딪히더라도 다치지 않도록 모서리가 부드럽게 굴려진 형태로 계획되었다.

 초기 색채 디자인은 박영순 교수님께서, 시각디자인은 이현주 교수님께서 감수해주셨으며 이후 안내 표지판들은 세브란스 HI 디자인팀에서 세브란스 새병원 본관과 연계되면서도 어린이들을 위한 차별화된 계획으로 참신하게 실행하였다.



 잊지 못할 경험들  제한된 예산과 제한된 일정 속에서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관련된 모든 분들의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처음부터 완공 이후까지 한결같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특별하였던 점은 설계가 진행되기 이전에 어린이병원 의료진 전체가 참여하여 자체적으로 설계를 진행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는 작업이 선행되었다는 점이다.

설계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선행 연구를 통해서 설계의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었던 기회는 아주 특별한 행운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 연구과정 이전에 어린이병원 박사님들께서는 해외 각국의 모범이 될만한 어린이병원들을 이미 답사를 마치신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또한 우리 나라에서는 접할 수 없는 귀한 자료들을 참고할 수 있었던 기회도 특별하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모든 의사결정과정이 모든 집단에게 발표되고 평가되었던 것 또한 인상 깊었는데, 회의와 마감재 선정의 바쁜 일정에 단 한분 빠지지 않으시고 허겁지겁 참석하였던 점은 단체 건축주상을 받고도 남을 노력이었다.

 마지막 남은 샤워커튼 선정에까지 전원 참석하시는 그 열정은 다른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 샤워커튼을 고르는 중에도 원장님을 위시한 여러 의사선생님들, 간호부장님, 시설과 담당직원 전원, 홍보팀, 대우건설팀, 인테리어팀, 자재회사 직원들까지 수십 명의 심각한 시선이 필자의 손에 집중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조심스럽고 또 우습기까지도 하면서 “언제 이런 호강을 또 다시 할 것인가?”하는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마지막 보고를 하기위해 들어간 강당에 인턴과 레지던트, 간호사분들이 빽빽하게 앉아있던 광경에 깜짝 놀랐던 경험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성심의 과정에 한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기회 또한 평생토록 감사히 기억하게 될 것이며,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의견과 노력을 수렴하여 완성된 세브란스어린이병원은 그 민주주의적인 근본정신으로부터 가장 어린이병원다운 어린이병원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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