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하는 밧세바
목욕하는 밧세바
  • 의사신문
  • 승인 2006.10.3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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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성경이라던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성경의 얘기는 재미있다. 특히 예수 이전 구약의 이야기는 구수한 옛날 이야기의 느낌도 있다. 서양문명의 두 수레바퀴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듯 성경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와 더불어 서양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 뜨리고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소년 영웅 다윗은 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그런데 다윗도 왕이 되기 전의 행적과 왕이 된 후의 행적이 차이가 많아 역시 초심을 지키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행실 이야기를 그린 렘브란트의 `목욕하는 밧세바'(1652년, 루브르 미술관, 파리)가 오늘 감상할 그림이다. 우연히 밧세바의 목욕 장면을 엿보고 미모에 반한 끝에 흑심을 품게 된 다윗왕 - 일설에는 밧세바가 왕을 유혹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 그러나 밧세바는 우리야라는 장수의 아내인 유부녀가 아니던가.

 다윗은 우리야를 전선으로 전출보내는 얕은 꾀를 짜내게 된다. 홀로 남은 밧세바에게 다윗은 `야밤에 왕궁에서 만나자'는 전갈을 띄워 사단이 벌어지게 된다. 지금 밧세바는 왕의 서한을 받고 왕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몸단장을 하는 중이다. 막 목욕을 마친 밧세바의 발치에는 하녀가 발을 씻기고 있는데 밧세바의 손에는 편지가 쥐어져 있다. 바로 만남을 청하는 왕의 편지이며 거역하기 힘든 명령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보다시피 매우 사실적인 누드화이다. 그런데 전혀 관능적이지 않다. 왕이 반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인의 누드를 만났을 때 우리가 은근히 기대하는 `예쁜 여자의 벗은 몸을 보는 속된 즐거움'(여성 독자에게는 죄송한 표현이지만)을 느끼기 힘들다. 그 이유는 바로 밧세바의 내면의 갈등이 어둡게 그림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벗은 몸이 아니라 왕명과 정절 사이의 갈등이 이 그림의 참된 주제인 것이다. 중년을 바라보는 여인의 풍만한 나신의 농염함은 여인의 가라앉은 품위에 눌려 있다. 밧세바는 오늘날 우리가 미인대회에서 흔히 만나는 그런 종류의 미인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충실한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는, 훤하게 잘 생긴 여인이다.

그런데 이 여인의 기품있고 잘생긴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밧세바의 모델은 렘브란트의 사실상 두 번째 아내인 헨드리케라고 전한다. 헨드리케는 렘브란트의 첫 아내였던 사스키아가 죽은 후 가정부로 들어왔다가 렘브란트와 사랑을 하게 된 여인인데 렘브란트는 첫 아내의 유언 때문에 다시 정식 결혼을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이들의 관계는 불륜으로 매도되었고 급기야는 종교재판에까지 회부되어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 당하는 등 마음 고생이 심했던 처지였다. 이 그림에는 헨드리케의 그런 마음 고생이 밧세바의 갈등과 방황이라는 포장을 빌어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렘브란트가 대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왕명과 정절 사이서 갈등하는 밧세바
명암의 대비 뚜렷하고 빛의 처리 독특
유선염 모델 미화않고 정직하게 그려



렘브란트의 그림답게 명암의 대비가 뚜렷하고 빛의 처리가 독특하다. 빛은 밧세바의 벗은 몸에 눈부시게 집중되고 있고 주위의 배경은 너무 어두워 발을 씻기는 하녀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이다. 밧세바의 자세는 고대 조각과도 닮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의학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의학과 관계가 있는 그림은 대개 의료행위를 묘사한 그림, 환자였던 화가가 그린 것이 대부분인 의사의 초상, 질병을 묘사한 그림, 화가의 병이 알게 모르게 그림에 투영되는 경우, 모델이 가지고 있는 병이 그림에 나타난 경우 등인데 이 그림은 바로 모델이 가지고 있는 병을 화가가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모델의 왼쪽 유방에 주목하자. 왼쪽 유방의 바깥쪽 아래 부분은 검게 그늘져 있는데 빛의 방향을 보건대 자연스러운 그늘이 아니다. 잘 보면 움푹 들어가 있다. 왼쪽 유방에 무슨 병이 있는 것인데 더구나 왼 쪽 겨드랑이 부분도 불룩해서 상당히 큰 림프절 비대가 의심된다. 림프절 전이를 동반한 유방암 환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견이고 혹시 만성 유선염이 있고 이에 반응해서 림프절이 커졌을 수도 있겠다. 유방암이라면 상당히 진행된 제 IIIA 병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헨드리케는 비록 렘브란트보다 일찍 세상을 뜨기는 했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뒤 11년을 더 살다가 1663년에 사망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 병은 유방암보다는 유선염이었던 같다. 렘브란트는 마음 속으로 사랑하던 여인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내면의 갈등이든 밖으로 드러난 질병이든 의도적으로 미화하지 않고 정직했던 것이다. 유방얘기를 하는 김에 덤으로 그림 하나 더 보자. 르네상스 시절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성모자 그림'(1490년경, 에르미타쥬 미술관, 상트 페테르부르크)은 원 소장자였던 리타 백작의 이름을 따 리타 마돈나라고도 불린다. 우아하지만 조각과도 같은 느낌이 나는, 그래서 다소 차갑게 느껴지는 마돈나가 가슴을 풀어 헤친 채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그런데 드러난 유방의 위치가 아무래도 어색하다. 실제 유방의 위치보다 훨씬 위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만큼은 흉부를 전공하는 내과 의사인 필자의 말을 믿어도 좋다. 왜 그럴까. 다빈치는 당시 교회법이 금지하던 시체해부까지 하면서 인체의 구조 탐구에 열중하였던 천재인데 그런 천재가 데생에서 실수를 하였단 말인가. 이 의문은?. `유방의 역사'라는 책을 읽으면서 풀렸다. 여성의 유방은 두 가지를 상징한다. 하나는 모성(maternity)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적인 것(sexuality)이다. 신성한 경배의 대상인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주기 위해 드러낸 가슴을 보고 불측한 마음을 먹을지도 모르는 속된 관객을 행해서 “이 그림에서는 거룩한 모성을 느껴야지 이상한 생각하면 안된다”라는 화가의 경고인 것이다. 성모 마리아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차가와 보이는 인상도 그런 경고를 거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성구 <서울의대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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