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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찰받는 임산부
진찰받는 임산부
  • 의사신문
  • 승인 2006.10.3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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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전투' 풍경 재미있게 풍자

말많은 사람은 어디에서든 골치 아프다. 우선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기 쉽고 “말이 앞선다”라는 평을 받게 되므로 대통령처럼 사회적으로 막중한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으면 어휘를 잘 가려서 써야 한다. 더구나 그 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광설이고 남의 말 끊기와 묻는 말에 대답할 생각은 않고 자신의 얘기만 일방적으로 늘어 놓기가 반복될 때 듣는 사람은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죽하면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까지 만들어 졌겠는가. 말많은 사람이 골치 아프기는 진료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말많은 환자치고 자신의 증상을 조리있게 설명하는 환자는 드물다. 문진을 할 때 의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환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의사소통이 효과적으로 되지 않을 때 의사는 환자의 말을 자르고 자신이 질문을 해나가는, 이른 바 조직화된 인터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진료실에 들어오신 할머니. “어떻게 오셨습니까” 한껏 예의바르게 여쭤본다.

“아프니까 왔지” 속으로 `으악' 하지만 휘청대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공손하게 여쭤본다. “어떻게 편찮으신데요?” “응, 내가…원래는 아주 튼튼한 사람이었거든…(시집와서 고생한 얘기). 먹고 살만 하니까 영감이 속을 썩이더니만…(한참을 영감님이 속썩인 얘기, 의사는 속만 태웠지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담배를 배웠는데…” 한참 뒤의 결론은 속이 썩어서 숨이 차시단다. “할머니, 언제부터 숨이 차셨는데요?” “오래 됐지!” “오래가 언젠데요? 한 1년 되었나요?” “그러니까 그게…보자…우리 막내 시집갈 때부터 구만. 그 때가 가을이었는데…아, 글쎄 요년이 어울리지도 않는 짝한테 시집가겠다고 날 뛰는데, 게다가 그 해는 흉년이 들어 혼수 해대기가 여간 벅차지 않았어…” 이렇게 되면 의사가 숨이 막힌다.

이럴 때 다시 “그게 언제인데요?” 해봐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고 차라리 “막내네 손주는 올 해 몇 살인가요?” 하고 묻는 것이 낫다. 얼마나 숨이 찬 지는 또 어떻게 알아보아야 하나. 기침은 하는지, 가래는 있는지, 가래의 빛깔은 어떤지, 쌕쌕거리지는 않는지, 어떨 때 숨이 더 찬지 알아보아야 할 것은 많은데. 앞이 캄캄해지면서 진료실 밖에서 오랜 기다림에 지친 다른 환자들의 성난 얼굴이 떠오른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이럴 때는 “아 - 해보세요”하면 그만인 치과 선생님이 부러워진다.

우리에 비해서 진료 시간을 충분히 쓴다는 미국의 내과 의사도 70%가 환자가 말을 시작하고 세 문장이 채 끝나기 전에 말을 자르고 자신이 질문을 시작한다니 환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의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기는 다른 가 보다. 오늘 감상할 그림인 얀 스텐의 `진찰받는 임산부'(17세기 중엽, 국립미술관, 프라하)는 이런 진찰실의 `말의 전투' 풍경을 아주 재미있게 풍자한 그림이다. 진찰실을 무대로 한 자그마한 그림을 보면 등장 인물은 3명이다. 의사 앞에는 철퍼덕 주저앉은 부인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속사포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불룩 나온 배와 잔뜩 벌리고 앉은 다리를 보면 임신 후기의 임신부가 분명하다.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한 쪽 팔꿈치를 의사의 책상에 걸친 채 손으로는 고개를 바치고 다른 손은 가슴에 댄 것이 금방 끝날 태세가 분명 아니다. 환자의 얼굴을 보면 의사의 반응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에 도취된 듯한 표정이다.

속사포처럼 이야기 쏟아 내는 임산부
환자와 눈맞추지 않은채 차트를 쓰는
의사의 진지한 모습에 웃음 절로나와



참을성 많은 의사는 싫은 내색도 없이 묵묵히 이 장광설을 들으며 아래만 쳐다보고 차트인지 처방전인지를 쓰고 있다. 평소 병원에서의 진료에 불만이 많은 화자가 이 그림을 본다면 “그러면 그렇지, 의사들이 환자 말 안 들어 주고 불친절 한 것은 그 역사가 오래도 되었구나” 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의료제도는 의사가 환자 한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찰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환자입장에서는 진찰 시간이 짧은 것이 큰 불만이지만 의사 역시도 짧은 시간에 문제를 파악하고 숨은 병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머리를 빨리 회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외래를 보고 나면 마치 전쟁을 치른 듯 녹초 파김치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 자신의 외래를 보게 되는 후배의사에게 선배들이 해주는 말이 있다. 말많은 환자와는 눈을 맞추지 말라는 것인데 자칫 눈을 맞추었다가는 인터뷰의 주도권을 빼앗겨 진료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난다는 뜻이다. 지금 이 의사는 이 격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환자와 눈을 맞추지 않은 채 묵묵히 차트를 쓰고 있는 의사의 진지한 표정은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의사의 표정이 아주 진지하고 열심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는 `나름대로는' 진료에 집중하고 있다. 비록 환자와 시선은 맞추지 않았지만 귀는 열어 놓고 있는 것이며 환자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흘러가는 환자의 장광설 중에 중요하다 싶은 얘기가 있을 때 이 의사는 고개를 번쩍 들 것이 틀림없다. 평소 종합병원에서 `3분 진료'에 질린 분들은 이 점을 이해하시기 바란다. 짧은 시간에 판단을 얻기 위해서 의사는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환자의 하녀가 소변이 든 검사 용기를 들고 있는데 주인 마님의 장광설이 자신이 듣기에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다소 민망한 표정에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의사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인 Steen은 장르화를 개척한 화가로 우리나라의 김홍도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관을 경영하였던 여관 주인이었는데 숙박업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심리와 행동의 특성을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 촌철살인 격의 뛰어난 해학과 풍자가 느껴지는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유난히 의사와 환자가 자주 등장하는데 요즘 용어로 심신장애(psychosomatic disorder)에 해당하는 상사병에 빠진 귀여운 여인, 혼전 임신으로 수심에 찬 여인, 장돌뱅이 돌팔이의 이뽑기 등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의사뿐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구경꾼들의 심리까지도 잘 묘사하였다. 먼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되기 전에는 의사가 스스로 수가를 정해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덜 받고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받고 하는 식으로 융통성을 발휘할 소지가 있었다. 이 시절 개업하셨던 어느 선배님은 말많은 환자를 만나면 그 말을 끝까지 다 들어 주되 일정 시간마다 처방전에 동그라미를 쳐서 수가를 달리 하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그라미가 없으면 기본 진찰료, 동그라미 하나면 얼마, 세 개면 얼마 하는 식으로…. 말많은 환자의 속에 쌓인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 주어 환자의 속이 후련하도록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진료의 일부이니 그렇게 하고, 그러나 그 대신 진료 시간이 오래 걸려 당신의 시간을 쓴 것에 대해서는 그 대가를 정당하게 청구한다는 정신인데 현재의 모순투성이 수가체계에 매어 있는 후배들에게는 꿈같이 아득한 이야기로 들린다.

한성구 <서울의대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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