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릴의 초상화와 함께 한 자화상
닥터 프릴의 초상화와 함께 한 자화상
  • 의사신문
  • 승인 2006.10.3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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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말기 암처럼 병원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경우라도 환자나 가족들이 기도원, 민간요법, 각종 건강보조식품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는 의사의 마음은 착잡하다.

병원비가 비싸다고 불평하던 사람들도 여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데 이렇게 다급하고 약해진 마음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약삭빠르고 가증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건실한 신앙이야 말 할 나위 없이 바람직 한 것이지만 빗나간 억센 믿음이 현대의학과 상충될 때 의사는 괴롭다.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신앙에 의지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단단한 이론으로 고슴도치 같이 무장한 무신론자는 어떨까? 평소 `신은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신념 하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에게 의지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나약함이라고 비웃으며 이성의 힘을 신봉하던 사람도 막상 죽음 앞에서 신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없지 않다.

죽음과 맞서는 일은 자신의 의지와 이성으로만 무장하고 대하기에는 너무도 외롭고 벅찬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가끔 독특한 문화적 배경으로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사람에게는 - 그 이데올로기가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 이데올로기가 종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피할 수 없이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 이데올로기에 의지하고 위안을 삼은 화가의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다.

1925년 예쁘고 재능 있고 자신만만하고 꿈 많던 18세 멕시코 처녀 프리다 칼로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로 가뜩이나 가늘었던 왼쪽 다리는 대퇴골 골절을 비롯해서 열 군데 가까이 골절상을 입었고 골반은 3군데, 척추도 3군데가 골절된 데다가 오른 쪽 발은 으깨진 채 탈구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옆구리로 뚫고 들어간 버스 난간은 신장을 관통하고 질로 빠져 나와 이 사슴 같던 처녀는 순식간에 마치 창에 꿰인 것처럼 된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80년 전의 의료를 생각하면 살아난 것이 기적인 것이다. 이 때 만신창이가 된 육신의 고통은 이후 평생을 두고 프리다를 괴롭히게 되며 40대에 접어들어서는 보행이 어려워져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다. 훗날 그린 `무너진 기둥(1944년, 돌로레스 올메도 재단, 멕시코 시티)'은 부서진 자신의 육체에 대한 칼로의 느낌이 잘 나타나 있다. 척추는 부서진 그리스 신전의 기둥으로 표현되었고 자부심이 강한 만큼 상처받기 쉬웠던 그녀의 상처들이 못에 의한 상처로 표현되었으며 칼로는 울고 있다. 배경은 황량한 벌판이어서 자신이 외로운 존재임을 나타내고 화가의 하체는 흰 천으로 쌓여 있는데 잘 보면 피가 묻어 있다.





자의식 강했던 칼로의 생에 대한 애착
의사의 도움 바라는 간절함이 느껴져
육체적 고통 이데올로기로 위안 삼아



칼로에게 그래도 치유의 희망이 있을 때는 병원과 의사에 의존하였다. 이 때 그린 것이 `Dr Frill의 초상화와 함께 한 자화상(1951년, 개인소장, 멕시코 시티)'이다. 그림 속의 칼로는 화가의 작업 겉옷을 걸친 채 휠체어를 탄 모습이고 옆에는 점잖고 온화한 인상의 프릴박사의 초상이 있어 이제 막 초상화를 끝낸 모습이다. 그런데 화가의 팔레트를 보면 매우 사실적인 심장 모양이고(관상동맥까지 그려져 있다) 붓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흘러 섬<&08871>한 느낌을 준다.

칼로는 자신이 심장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절박한 마음이었던 것을 이 온화한 의사가 알아주기를 바란 것일까? 자의식 강했던 한 여자의, 생에 대한 절절한 애착이 느껴진다. 운명적 사랑이었던 20세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가 바로 자신의 동생인 크리스티나와 깊은 관계를 맺어 사랑을 배신한데다가 엄마가 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실현 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고 거기다가 만신창이가 된 육체적 고통에 짓눌렸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안간힘과 의사의 도움을 바라는 간절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헨리 포드 병원' `나의 탄생' `몇 개의 작은 상처' 등 일련의 유혈이 낭자하고 엽기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상처투성이 내면이 이 그림에서는 팔레트와 피가 흐르는 붓에 응축되어 나타난다. 몇 년이 지나 칼로의 병세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예감한 칼로는 이제 병원이나 의사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신앙 대신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의지하여 마음의 평안을 구한다. 의사의 초상화를 그린 지 3년뒤, 칼로가 죽기 얼마 전에 완성한 그림인 `마르크시즘이 병을 낫게 하리라(1954년, 칼로 미술관, 멕시코 시티)'는 이 시기 칼로의 심리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척추와 다리의 손상으로 일어 설 수 없었던 칼로를 꼿꼿이 일으켜 세운 거대한 손.

손의 근원은 백발과 흰 수염의 정의로운 표정을 한 마르크스다. 다른 한 손은 사악한 표정의 얼굴에 엉클 샘의 모자를 쓴 악당 미국의 목을 움켜쥐고 있다. 미국의 몸체는 독수리인데 날개는 작고 몸은 뚱뚱한 것이 꼭 검은 칠면조처럼 우스꽝스럽게 그려졌고 어찌보면 폭탄같이 그려졌다. 미국의 상징인 사냥을 하는 용맹하고 날렵하고 아름다운 eagle이 아니라 썩은 고기를 탐하는 vulture로 묘사된 것이다. 옆에는 칼로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목발이 팽개쳐져 있고 칼로의 손에는 성경 대신에 `붉은 책'이 들려 있다.

칼로의 머리 위에는 흰 비둘기가 날고 있는데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성령의 상징이기도 해서 묘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은 거의 종교적인 수준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귀의한 칼로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초현실주의 그림답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칼로는 열렬한 공산주의자로서 칼로 부부는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트로츠키를 멕시코에 망명시키는데 역할을 했으며 칼로는 트로츠키와 한 때 염문을 뿌리기도 했고 스탈린과도 교분이 있었다. `레온 트로츠키에게 헌정한 자화상' `스탈린 초상 앞의 자화상' 등이 엘리트 공산주의자로서 칼로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오랜 미국 생활의 경험을 가진 칼로는 당시 파나마 사태 등 중남미에서의 미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 증대에 반대하는 반미운동에 병구를 이끌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혼과 재결합을 거듭했던 리베라와의 사랑도 전 같지 않았고 병세는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마르크스의 품에서 병이 치유되고 다시 일어서게 되는 공상은 아마도 칼로의 유일한 위안이었을 것이다. 간절한 공상에 되풀이해서 몰입하면 마치 그것이 현실인 것처럼 느끼는 경험은 누구든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간절한 기댐도 헛되이 칼로는 이 그림을 완성한 그 해에 47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칼로에게 있어서 마르크스는 기독교 신자에게 하느님과도 같은 존재, 최후로 의지하고픈 존재였던 것이다. 죽음 앞에서 의존적이 되고 겸손해 지는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이 분명한 가보다.

한성구 <서울의대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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