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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스
바쿠스
  • 의사신문
  • 승인 2006.10.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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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은 무척 어렵고 때로는 천재를 필요로 한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 티치아노 등 거장의 죽음과 함께 르네상스의 전성기가 끝날 때 그 뒤를 이은 화가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이었을 것이다. 거의 동시대를 살다가 한꺼번에 사라진 수많은 천재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넘어서 더 발전된 작품을 선 보일 재주가 누구에게나 주어 진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앞에 놓인 산이 너무도 높아 그들은 마치 너무도 잘난 아버지를 둔 아들과도 같았다. 아버지가 잘나면 아들이 빗나가기 쉽듯이 미술에서도 이 시기에는 약간 괴상한 미술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 이를 우리는 `매너리즘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르네상스기에 확립된 미술의 전통인 `이상적인 인간의 아름다움'이라는 정형을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해서 파르미지아노처럼 인체를 길게 늘려서 왜곡시키거나 브론치노처럼 그림속에 난해한 우의를 넣어 고급 지적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방법을 택했다. 혜성같이 나타난 천재화가 이렇게 미술이 시쳇말로 갈피를 못잡고 `헤매던' 시기에 카라밧지오라는 천재가 혜성과도 같이 나타나 바로크 미술이라는 새로운 사조의 창시자로 기록된다. 바로크라는 말은 포르투갈 말인데 원래는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었다. 완벽한 형태를 갖추지 못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진주를 가리키던 말이 규범에서의 일탈, 그러니까 요즘말로 약간 삐딱한 것을 비웃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 되었다. 그후 어느덧 미술의 한 양식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 시대의 미술이 이렇게 불렸던 것은 이 새로운 사조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오늘 감상할 그림은 바로 이 바로크미술의 원조인 카라밧지오의 `바쿠스' 두 점이다. `바쿠스'는 널리 알려진 대로 `술의 신'이다. 카라밧지오의 바쿠스(1596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는 술의 신답게 머리에는 포도잎으로 된 관을 쓰고 포도주 잔을 들고 있다. 바쿠스의 앞에는 여러 종류의 과일과 포도들이 놓여져 그림의 주인공이 술의 신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카라밧지오의 바쿠스는 르네상스 시대의 바쿠스와는 달리 더 이상 고고한 올림푸스 신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당시의 현실에서 흔히 보는 세속적이고 다소 유약해 보이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것은 카라밧지오가 다른 그림에서 예수의 제자들인 성자의 모습을 당시 시장에서 흔히 보는 남루한 하층계급의 사람의 모습으로 그린 것과 일맥상통하는 리얼리즘의 모습이다. 다시 바쿠스를 자세히 보면 영락없이 나른하고 다소 퇴폐적인 모습의 미소년이다. 버들잎같은 눈썹과 다소 쳐진 눈매, 여성적인 매력에서 감각적인 쾌락의 추구가 느껴지고 어린 소년이 잔을 들어 술을 권하는 모습은 다소 건방져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매우 서정적인 분위기도 풍기고 있다.

나른하고 다소 퇴폐적인 모습의 미소년
술과 여성적 매력에서 쾌락추구 느껴져
건강 허비한 병든 바쿠스는 무언의 경고



퇴폐적 모습의 미소년 담아 그런데 우리에게 잔을 들어 술을 권하는 바쿠스의 손을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손톱에 때가 잔뜩 끼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손톱의 때는 무절제하고 자신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 아름다운 젊은이가 술과 퇴폐로 젊음과 건강을 낭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렇게 젊음과 건강을 낭비한 젊은이는 병든 바쿠스(1593년, 로마의 보르게제 미술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여기 등장하는 바쿠스는 더 이상 신의 모습이 아니고 아름다운 미소년의 모습도 아니다. 지속적인 음주로 숙취에 찌들고 건강을 해쳐 병색이 완연한 한 젊은이가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면서 우리를 대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영혼이 황폐해진 모습이기도 하고 알코올성 간경변환자의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앞의 바쿠스처럼 술과 퇴폐로 젊음과 건강을 허비할 때 이렇게 된다는 무언의 경고인 셈인데 병색이 완연한 얼굴은 얄궂게도 카라밧지오 자신의 얼굴이다. 이 무슨 심사일까? 혹시 방종한 자신의 생활뒤에 느껴지는 허탈과 불안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인상적 자화상 병든 바쿠스 카라밧지오는 르네상스의 엄격한 규범을 완전히 탈피해서 바로크 시대를 열어간 천재이며 리얼리즘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자였다. 성질이 급하고 불같아 폭력적이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카라밧지오의 폭력성은 당시 로마의 경찰기록에 상세히 나와 있는데 여자를 사이에 두고 상대에게 칼부림을 한적도 있는 등 많은 폭력사건에도 연루되었다가 급기야는 테니스 시합중 칼로 살인을 저질러 로마를 탈출하게 된다. 이런 폭력성은 때때로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카라밧지오가 이 그림외에도 참수된 메두사나 골리앗의 머리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어 자기파괴적인 심리상태를 종종 드러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로마에서 도망친 화가 살인자는 지명수배 상태에서 시칠리로 도피했다가 이후 여러 도시를 전전했는데 가는 곳마다 화제작을 남겼다. 5년 가까운 도피 생활 끝에 사면을 기대하고 로마로 돌아 오던 화가는 칼맞은 상처가 덧나 37세의 아까운 나이에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홀연히 나타나 짧은 기간 화가로 활동했지만 그가 미술사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것이었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 다음 세대의 대가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이들을 카라밧지오파로 부르기도 한다. 인상적인 자화상인 병든 바쿠스, 암울한 의료현실에 대한 울분과 진료의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술 이외에는 없는 이 땅의 많은 의사에게 보내는 카라밧지오의 경고가 아닐까? 나처럼 되지 말라는….

한성구 <서울의대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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