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The Doctor)
의사 (The Doctor)
  • 의사신문
  • 승인 2006.10.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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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아이 돌봐준 헌신적 의사 화폭에

런던의 Tate Gallery는 National Gallery와 더불어 미술의 일대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 National Gallery가 주로 영국이 수집 또는 약탈해온 미술품을 진열한 곳이라면 Tate Gallery는 영국이 창조한 미술을 보여 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은 템즈강변의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Tate 경이 자신이 수집한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한 것이 모태가 되어 `Tate Gallery'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떠올려 Tate 경은 Fildes라는 젊은 화가에게 그림을 주문하게 된다. 보통 그림을 주문할 때는 성경, 신화 또는 역사의 내용중에서 “무슨 무슨 내용의 그림을 그려 달라”는 주문자의 요구 사항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Tate 경은 이 젊은 화가에게 “이제까지 당신이 살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그려달라” 라는 다소 이색적인 주문을 하게 된다. 이 색다른 주문을 받은 Fildes는 한동안 고심하다가 여러 해전 크리스마스 전날 폐렴으로 잃었던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게 된다. Fildes는 그 당시 자신의 아이를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었던 의사를 떠올리게 되면서 그림에 몰입하게 된다.

이 작품이 바로 오늘 감상할 `의사(The Doctor)'라는 그림이다. 그림의 무대는 깊은 밤 침묵이 흐르는 적막한 병실이다. 제대로 된 병실이 아니라 오두막의 실내인 것으로 보아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다. 중앙에 의자를 두 개 붙여 놓고 아픈 아이를 뉘었다. 의자에 뉘어진 금발의 예쁜 사내 아이는 몸집으로 보아 두세살 정도의 아장아장 걸을 나이인 데 고열과 가쁜 숨을 몰아 쉬느라 지친 끝에 혼수상태인 것 같다. 이 아이를 왕진 온 의사가 곁에서 근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한 손은 턱을 괴고 한 손은 무릎을 짚고 있는 의사의 두 손은 이 가여운 환자에게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창 밖이 뿌옇게 밝아 오고 있지만 아직도 실내의 조명은 의사의 옆 테이블에 놓인 램프의 흔들리는 불빛이 전부이며 이 조명이 의사와 어린 환자를 말없이 비추고 있어 그림의 분위기는 가라 앉아 있다. 의자 뒤에는 한 점의 조명도 받지 못한 채 아이의 아빠인 화가 자신이 어둠속에 마치 유령처럼 서 있다. 아빠의 옆에서 아이의 엄마는 절망에 쌓여 두손을 모으고 무너져 내렸다. 아빠의 한 손이 엄마의 어깨에 얹혀 있어 아픔을 함께 하려는 부부의 모습이 표현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으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생사의 기로를 헤매일 때 부모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아빠의 퀭한 눈과 넋이 나간 표정, 엄마의 절망의 몸짓이 너무나도 절절하고 안타깝다. 숨막히는 침묵속에서 쌕쌕거리는 아이의 가쁜 숨소리만 들리는 듯 하다. 이렇게 무력한 의사와 안타까운 부모는 밤을 꼬박 새우고는 함께 아이를 떠나 보낸다.

깊은 밤 침묵이 흐르는 적막한 병실
꺼져가는 생명위해 밤을 함께 밝힌
고전적 의사·환자의 향수 느끼게해



고전적 의사와 환자 모습 그림이 그려졌던 19세기 말에는 산소요법도 항생제도 수액요법도 도입되기 전이었으니 지금의 의학과 비교한다면 폐렴에 걸린 어린 생명에게 이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으랴. 의사는 그저 지켜볼 뿐…. 그런데도 화가는 아픈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왕진을 와주고 걱정하면서 같이 밤을 지새워 준 의사의 모습을 자신이 살면서 가장 감동스러웠고 고귀했던 모습으로 되살리고 있다.

무엇이 화가를 그토록 감동시켰을까? 환자에 대한 의사의 사랑, 의사에 대한 환자·가족의 믿음과 존경…. 우리가 향수를 갖게되는 고전적인 의사·환자의 모습이다. 이 그림을 본 당시의 어떤 의사가 “도서관의 수많은 의학 서적이 하지 못한 일을 이 그림이 해냈구나. 이 그림 덕택에 대중이 의사에게 신뢰와 사랑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평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요샛말로 하면 의사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인데 오늘날의 의사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지 않은가. 의사 이미지에 큰 도움 도회적인 소재와 빠른 붓터치에서 당시의 유럽을 흔들던 인상주의의 영향이 다소 엿보이지만 빛의 처리에서는 바로크적인 면이 짙어 그림의 기법은 당시의 시대조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그림이다.

그림을 그린 Luke Fildes는 1843년 영국의 리버풀에서 태어 났으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Fildes의 할머니는 빈민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활동적인 여장부였다. 젊은 시절의 Fildes는 이런 할머니의 영향으로 집없고 배고픈 사회의 하층계급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그림외에도 부랑자수용소의 수용대기자 같은 빈민 환자를 주제로 한 그림도 그린 적이 있어 사회문제에 나름대로 관심을 가졌던 화가였지만 나중에는 부유한 상류층의 초상화를 주로 그리는, 요샛말로 `잘 나가는' 초상화가로 변신하게 된다. 위 그림을 주문했던 Tate 경은 그림 값으로 당시 거금이었던 3000 파운드를 지불하였는데 Fildes는 “초상화를 그렸더라면 더 받았을 것”이라고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다는 씁쓸한 얘기도 전해 진다. 화가는 훗날 미술적 재능과 공헌을 인정받아 기사(sir) 작위를 수여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은 주로 영국과 호주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젊은 화가를 감동시켰던 헌신적인 이 의사의 이름은 Dr. Gustavus Murray라고 전하고 있으며 평범한 동네 의사의 따뜻하고도 감동적인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의 대중에게 크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런던에 가시는 분은 Tate Gallery에 들러 이 `영웅적인' 의사를 꼭 한 번 찾아 보시길….

한성구 <서울의대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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