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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통의료가 사이비의료에 점령당하고 있다<상>
<시론> 정통의료가 사이비의료에 점령당하고 있다<상>
  • 승인 2006.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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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통의료가 사이비의료에 점령당하고 있다<상>

 

박인숙<서울아산병원 교수>

 

 

 나라 안팎이 온통 큰 걱정거리로 가득 찬 시점에 나마저 우울한 글을 써야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만은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의료계가 모두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이 글을 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보약왕국'


 지금의 의료계를 `술 취한 운전기사가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는 형국' `풍랑이 내몰아치는 바다에 내팽개쳐진 선장 없는 배'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는 자동차'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사실 작금의 의료계는 정말 어려운 안건들이 많다. 우선 당면한 굵직한 현안들만 보아도 한미 FTA 협상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의료계 문제, 식약청 문제, 상대가치점수 전면개정의 문제, 한의학전문대학원 신설과 한의사들에 의한 의료기기 사용문제를 포함한 의료 이원화 문제, 수많은 건강보조식품과 기구들의 난립, 과대광고 등이 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이런 문제들의 해결에 사활을 걸고 앞장서서 나서야할 의료계 수장의 부도덕과 무책임, 리더십 부재가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한다. 이 많은 문제들 중 이 글에서는 최근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고 있는 사이비 의료에 대하여 생각해보기로 한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국민이 `보약'을 먹는 세계적 `보약 왕국'이다. 의료보험료를 0.1%만 올려도 시민단체를 위시해서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서 반대하지만 한약이나 `보약', 건강보조식품 등의 사이비 의료에 드는 몇 십 만 원, 몇 백 만 원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신생아건 노인이건, 병이 있건 없건 상관없다. 그 이름도 다양하다. `임신되기 전에 먹는 보약, 임신 된 후에 먹는 보약, 고3 수능준비생이 먹는 고3탕, 이를 대비하여 고2때 미리 먹으라는 준비탕, 성적 올려주는 총명탕, 키 크는 보약, 수술 후 기력 회복하는 보약' 등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보약'을 우리 국민들이 먹고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강남 지역주민들에게 공짜로 배달되는 지역신문을 살펴보면 총 80면 중 절반이 의료관련 광고이며 그것도 대부분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믿기 어려운 과대광고다. 한 산부인과 한의원 광고를 그대로 옮겨보겠다. 여성 불임의 원인이라고 열거한 항목 중에는 `몸이 찬 것, 남자처럼 생긴 여성, 복부 비만, 감정 기복이 심한 여성, 키가 큰 여성, 몸이 혼탁한 여성, 땀을 많이 흘리는 여성'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외에도 `자녀들의 성적을 올려준다, 자궁을 맑게 해 득남하도록 해준다, 키를 크게 해준다' 등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나는 광고가 버젓이 대문짝만하게 지면을 채우고 있다. 비단 한의사 뿐 만 아니라 일부 양의사(?)들, 의료기(?) 제조업자들, 일반인, 기업가들도 이러한 사이비 과대광고에 편승하고 있고 방송과 언론도 이에 질세라 사이비 의료의 전파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최근 텔레비전에서는 `치매 예방약'을 한의학계에서 개발하였다는 `반가운 뉴스'도 있었다. 실로 세계 제약업계를 뒤집을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으나 대부분의 의료관련 `획기적인' 언론보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를 정말로 믿는 의사는 없다. 이와 같은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의료와 상식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 이런 과대광고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으나 국민의료를 책임 질 의료계와 정부는 뒷짐만 지고 나몰라하고 있다. 실로 의료인과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의료인/정부 직무유기로 사이비 난립


 이제 우리는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이에 따른 해결책을 모색해야한다.
 첫째, 지금과 같이 사이비 의료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국민들의 의료인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것도 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보건의료란 국민(소비자), 의료인(공급자), 정부(관리자), 이 세 축이 상호간의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협동하면서 함께 이끌어가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의사들이 의료소비자(국민) 입장에서 생각하기 보다는 눈앞의 작은 이익에 급급하여 매사 의사와 병원의 입장만 주장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잃게 된 것이 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아주 극소수 의사들의 비윤리적인 행위, 그리고 이를 마치 모든 의사들의 잘못인양 떠벌리는 언론과 정부의 태도도 이런 의사 불신 분위기 조장에 크게 한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다음에 이어짐〉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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