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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약제비 높다' 정책제시는 `오판'
`우리나라 약제비 높다' 정책제시는 `오판'
  • 정재로 기자
  • 승인 2006.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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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약제비 비중이 OECD국가 보다 높은 이유는 한방약과 의료소모품이 포함됐기 때문으로 이들 수치를 빼면 OECD 평균치에 근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약제비가 높다는 정부의 판단은 오판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최근 약제비 절감정책을 강도 높게 추진하던 정부의 약제비 정책 기조 자체가 전체적으로 흔들리게 됐다.

 그 동안 정부의 약제비 절감 정책 명목은 △우리나라 약제비 비중이 OECD평균치 보다 높다는 것과 △약제비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16일 `의료와 사회포럼'이 주최하고 서울시의사회가 주관한 정책포럼에서는 이와 같은 주장이 오류임이 확인됐다.

#한약/소모품 포함은 잘못

 이날 `한국의 약제비 비율, 얼마나 높은가' 포럼 주제발표에 나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우리나라 약제비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약제비에 한방첩약이 포함되어 있고 약제비에 의료소모품의 규모가 OECD국가들에 비해 보다 철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OECD Health Data에서 `약제비'로서 흔히 인용되는 `약품/의료소모품(Pharmaceuticals and medical non-durables)에 대한 지출'은 2004년 12조2000억원으로 국민의료비 43.9조원의 27.7%. 우리나라 약제비의 특수성, 즉 한방첩약도 포함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다양한 약제비 규모를 추가적으로 산출한 결과, `한방첩약을 제외한 약품/의료소모품에 대한 지출'은 10.3조원으로 국민의료비의 23.4%을 차지했다. `의료소모품을 제외한 약제비'는 11조원으로 국민의료비의 25%였으며 `의료소모품과 한방첩약을 모두 제외한 약제비'는 9조1000억원으로 20.7%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OECD평균 17.7%와 별반 차이가 없다. 특히 OECD 각국의 `1인당 GDP'와 `국민의료비에서 약제비의 점유율' 간의 관계를 보면 폴란드, 헝가리 등 비교적 국민소득이 낮은 수준에 있는 국가일수록 우리나라와 같이 약제비의 점유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순수약제비 OECD 평균치

 한편 약제비의 빠른 증가와 관련해 명지대 경제학과 조동근 교수는 “2001∼2005년간 혈압강하제, 당뇨병치료제 등 만성질환 관련 약제비 증가율은 171%로, 다른 질환진료군의 약제비 증가율 1.82배를 넘고 있다”며 “최근 노령화 급진전에 따른 만성질환자 증가가 주요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OECD 의료선진국일수록 총 보건비 지출이 크기 때문에 약제비 비중이 낮아지게 된다”며 “약제비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를 낮추기 위해 포지티브 리스트가 필요하다는 복지부의 주장은 논리적 근거가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산출후 정책 재설정

 이날 지정토론자로 나선 서울시의사회 김종률 보험이사도 “중요한 건 OECD 약제비 통계에 조제료가 포함된 부분”이라며 “의약분업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조제료는 2004년도 1조8000억원, 2005년 1조9530억원이 지출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조제료와 한약비용, 의료소모품 오류를 보정하면 순수 약제비는 7조3000억원으로 비율은 18.6%로 더 떨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김종률 이사는 “지금이라도 정부는 각종 변수를 배제한 뒤 보다 정확한 약제비의 비율을 다시 산출해야 한다”며 “결과를 확대 해석하지 말고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재로

 약가절감정책 무용론 고개

  정부의 약제비 오판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약가 적정화 정책'에 대한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이번 약가 적정화 정책이 한미 FTA협상과 엮여 약가절감의 실리도 못 챙기고 미국에 신약개발 특허 연장 등 실권만 내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정부는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약제비 적정화 정책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정책의 핵심인 포지티브리스트제도(PLS) 도입의 조건으로 특허권 연장 등의 미국측 요구를 수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약제비 비중이 높지 않다는 이번 연구결과로 약제비 절감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고 있다. 또한 적정화 정책으로 얻는 실익보다는 불이익이 더욱 클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16일 토론회에서 서울시의사회 김종률 보험이사는 “PLS를 2번이나 도입하려다 실패한 독일의 경우 처음 포지티브 도입시에 의약품비 지출이 7%, 전체 급여비 지출에서 1.3%의 재정절감효과가 발생한다고 가정했다”며 “하지만 실제 재정절감효과는 의약품비 지출에서는 약 3.3%, 전체 급여비 지출은 0.59% 미약했다”고 지적했다. 비용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 지난 18일 `건강복지사회를 여는 모임' 주최로 개최된 `5.3 약제비 적정화 대책'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도 서면을 통해 “미국이 한미 FTA 3차 협상에서 제도 도입의 대가로 특허권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가 명분을 지키려다 실리를 잃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제약협회 문경태 상근부회장은 “한미 FTA로 국내제약산업이 위기국면에 처해있는데 관련산업보호는커녕 정부가 제약산업위기를 더욱 부채질하는 형국”이라며 “한미 FTA에서 PLS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국내 제네릭 약가인하, 지적재산권 보호 등 미국측 주장에 끌려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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