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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성능
디자인과 성능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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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 끌려 선택하는 경우 많아

엔지니어들이 고성능의 엔진을 설계했다고 치자. 고강성의 바디에 적절한 무게 중심과 최고의 핸들링을 갖고 안전성도 높은 차가 나왔다고 치자. 시승하는 드라이버와 업계의 관계자들은 극찬을 할 것은 분명하다. 이 차는 분명히 판매 이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대 또는 미리 바라는 것, 우리가 기대하는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anticipation이라는 용어는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사람들이 무엇인가 굉장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마케팅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차는 많이 팔리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 회사의 페이스리프트(엔진이나 샤시는 별로 변한 것이 없이 외관만 바뀐)된 차의 디자인이 더 좋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무지(회사가 간절히 원하는)는 기꺼이 몇 천 만원을 신차종도 아닌 구형차종에 퍼부어 주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페이스리프트는 점유율 경쟁에서 열세에 몰리던 회사를 구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특별히 예쁜 파란색이라든가 은빛의 펄 색상에 더 홀리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페인트 산업은 자동차 업계에 자문을 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상의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유행보다 색상은 더 오래간다. 다분히 심리적인 차의 색상 선택은 디자인과 함께 너무나 중요한 변수가 되어 버렸다. 빨간색 차가 더 잘 달린다든지 파란색 차가 더 안전하다는 자연의 법칙은 없다. 은색차가 더 고급스럽다는 법칙도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느낀다. 그렇다면 메이커가 그러한 믿음에 빠져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잘 팔리는 차가 메이커에게는 제일 착한 차라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이 중요한 진리는 아주 잘 통한다.

예쁜 여자가 착한 여자인가라는 우문에 대해 “예쁜 것이 착한 것이다”라는 사람들의 통설은 경박하지만 아주 중요한 진실의 측면을 담고 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끔씩 위대한 디자인이나 잘 팔리는 디자인은 나온다. 기능과 아름다움이 함께 어우러지는 위대한 디자인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디자인은 그저 플라스틱과 철판의 위치를 계속 바꾸는 것으로 끝난다. 지구의 자원이 부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가끔씩 머리를 싸매다 보니 파격적인 디자인이 나온다. 그러나 과거에 많은 디자인은 이탈리아에서 나온 목업(mock up)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메이커들은 유행에 뒤쳐졌다거나 촌스럽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주지아로나 피닌파리나 베르토네 같은 디자이너에게 차의 디자인을 의뢰했다.

80년대의 차들이 주름 잡힌 철판을 갖고 있었다던가, 90년대의 차들이 눌러놓은 삶은 계란 모양을 하고 있었다거나 하는 디자인 주제는 결국 이들의 변덕과 심미안을 반영한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정작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다른 디자인이 있었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채 세계적인 차들의 유행은 그리고 많은 돈의 흐름은 새로운 변덕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람들이 산 것은 엔지니어링도 있지만 차라는 것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이미지, 그리고 메이커의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어떤 조급함과 기대를 산 것이기도 하다. 디자이너의 변덕에 휘말린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여담이지만 필자는 예전에 크리스뱅글이(새로 나온 BMW의 7과 5라인의 주 디자이너) 디자인한 피아트쿠페〈사진〉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190마력 정도의 성능에 파격적인 모양을 한 쿠페는 디자인을 위해 사이드미러의 사이즈까지 줄여 놓은 감성을 보유했다고 하는 차다. 본격적인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엔진도 란치아(Lancia)에서 이미 테스트가 끝난 차량이다. 와인딩에 들어가니 엄청나게 무거운 앞부분 때문에 불안감은 계속되었다. 성능은 좋지만(이 차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무게중심이 불안하여 직선도로가 아니면 과격주행이 불안한 차. 당연히 필자는 타지 않는다. 그러나 주위의 마니아들은 그 디자인에 홀려서 차를 사곤 한다. 물론 이 차는 마니아 성향의 차이기 때문에 절대 일반인들은 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격주행을 좋아하는 마니아들도 디자인에 홀려서 꽤 많이 팔렸다.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차를 만들어 파는 것은 물건이 남아도는 시대에는 심리학이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묘한 측면이 있다.

〈안윤호 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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