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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즐긴다는 것
차를 즐긴다는 것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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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출발

자동차의 효용에 대해서 필자에게는 나름대로의 견해가 있다. 차종을 불문하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차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사실이 실제적 효용의 95% 정도는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고물차라도 한 대 있으면 없는 것과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 이상은 상징의 게임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이 생각을 곧이 듣는다면 낡아서 버려야(아직 한 번도 큰 고장이 난 적이 없는) 할 필자의 프린스와 그 옆에 있는 지인의 BMW 7 시리즈는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실제로 서울 거리를 달려보면 실제의 효용가치는 그만큼도 차이가 나지 않을지 모른다. 짐을 싣고 가보고 싶은 곳을 가고 그냥 달리는 일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이른바 “먹고 자고 싸는”이라는 간단한 말로 물리적인 일상생활을 요약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 위의 층도 존재한다. 문화라는 것이 사소한 상징에 집착(집중)하는 일이라면 자동차의 문화도 마찬가지다. 사실 필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한때 사람들의 입소문과 메이커의 발표를 거의 곧이 듣고 차를 엄청나게 좋아했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차에 빠지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잡지사와 일간지의 기자, 자동차 마니아, 정비사, 딜러, 속도광, 수집광, 사이트의 운영자)의 이야기에서 파악한, 종합하면 알려진 많은 부분은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진실은 몇 개의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실제로 스패너를 들고 차를 고치기도 하며 부품을 직접 유럽에서 수입하는 일에서 배웠다. 문화라는 것이 환상을 깨거나 환상에 더 깊이 빠지는 두가지의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자동차의 문화에서 차를 열심히 타고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다면 자동차의 문화는 탄생하지 않는다. 명품이나 유명한 브랜드의 물건들이 전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들을 알아주고 열심히 쓰는 사람들의 활동은 중요하다.

그래서 처음에 독자들에게 “편견을 깨라”라던가 “환상을 버려라”와 같은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였으나 원고지의 키보드에 손을 대는 순간 차라리 “환상에 충실하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물이나 문화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 이런 것이 없으면 누가 몇천만원이나 몇억을 쓰면서 5%나 1%가 더 좋은 차를 사겠는가. 그러나 필이 꽂히는 현상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변한다. 몇 대를 사거나 일년에 몇 종류의 차를 사기도 하고 차종을 수 십년을 타기도 한다. 유럽이나 미국에는 흔히 있는 일이고 우리 주위에서도 드물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활의 역사는 비교적 짧고 DIY가 거의 없는 이상한 문화(개러지가 없는 문화)를 갖고 있다. 차종도 적고 수입차에 대한 노출기간도 짧아 상대적으로 다양성이 적다.

그래서 이 칼럼을 의뢰 받았을 때 제목을 평전으로 한 것은 시리즈의 역사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고의 기록이나 메이커들이 싫어할 만한 이야기, 말도 안되는 시리즈의 출발, 메이커의 비합리성이나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반응같은 이야기들을 적어 보겠다. 알파로메오나 란치아같은 다른 마이너 브랜드의 이야기를 적을 지도 모른다. 너무 잡다하게 보이겠지만 필자의 글쓰기 목적은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실 주변에는 이미 다양한 마니아들이 있다. 의사들 중에도 마니아들은 상당히 많으며 다양하다(필자 역시 한때는 차에 미쳐있던 적이 있으며 지금도 무척 좋아한다). 조금 이상해 보이는 다양한 일들은 사실상 문화적인 다양성의 표출이다. 우리 나라의 등록된 차가 천만 대를 예전에 넘었으니 어떤 다양성이 나와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즐기기 위한 기본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도 포함된다. 차에 대한 어필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한 어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차종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답은 예상보다 복잡하고 많은 것들이 얽혀있다.

〈안윤호 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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