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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프장에서
(1) 골프장에서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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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상쾌함속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골프장에 간다. 3주만의 라운딩이라 가슴이 설레인다. 평소에 연습장에서 하던데로, 렛슨 받은 데로 하자. 그러면 80대로 무난히 진입할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 인사를 한다.

친구들 아침 식사 할 동안 나는 밥을 안 먹는다. 화장실 갔다가 커피 한잔 한 뒤 먼저 몸을 푼다. 친구들과 내기할 돈을 정한 뒤, 순서를 정한다.

내가 첫 번째다. 까짓 것 '노 푸라보노' !!! 배운 데로 어드레스를 한다. 볼 뒤에서 목표점을 정하고, 그립을 취 한 뒤, 타겟과 평행하게 서고, 심호흡 두 번으로 몸의 긴장을 풀고, 손목 힘을 빼기 위해 웨글을 하다가 공을 살짝 건드렸다! 쪽팔리지만 비굴하게 웃으면서 공을 줏어 다시 티에 올린다.

친구 놈들 서로 황당해 하면서 얼굴만 쳐다본다. 다시 배운 대로 어드레스를 취한다. 힙을 끌어 올리면서 무릎은 약간만 굽히고, Vastus muscle 에 약간 힘을 싣고, 다리로 태산같이 버티고 선다.

어깨와 팔에 힘을 빼고 왼손과 어깨를 먼저 테이크 어웨이하면서 어깨를 최대한 돌리되 팔은 너무 올리지 않는다. 요즘 트렌드인 3/4 스윙, 즉 바디 턴이다.

코킹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다. 백 스윙의 처음은 느리게 그 뒤는 빠르게 채를 올린다. 탑에서 약간 멈추라는데 이게 잘 안된다. 오른 어깨에 힘 빼고, 왼손을 줄 당기듯, 종 치듯 가볍게 밑으로 내리면서 다운 스윙을 한다.

다운의 시작은 부드럽게 하면서, 임-팩 때 오른 손으로 채를 던진다 생각하고 볼을 향해 때린다. "쳤다". 쳤는데.... 볼이 안 보인다. 뒤에서 '굿 샷'소리가 안 난다. 대신 캐디언니의 걱정스런 소리...'저런' 시야에 없다는 것은, 개뿔도 안되게 쳤다는 것인데 이제 나도 이만큼은 안다. 볼은 오른쪽 덤불로, 땅볼로 들어가는 토마호크다.

한 30 야드쯤 갔다. 다들 아무 말 없다. 친구들이 친다. 건들 건들 설렁설렁 치는데, 다 230--250 야드 정도 똑바로 보낸다. 나쁜 놈들이다. 고통 동반의 정신이 전혀 없다. 세컨드 샷을 준비를 한다. 덤불 속의 공 꺼내 놓고 욕심 없이 다짐한다.

오늘은 '쓰리 온"작전이다. 6번 아이언 들고 심호흡 한 뒤 몸에 힘 '쫙' 빼고 치는데 힘이 안 빠진다. 볼도 칠 때 못 본 것 같다. 치명적인 ‘헤드 업’이다. 근데 나는 늘 헤드 업을 하는 것 같다. 또 땅으로 기는 토마-호크다. 50 야드 쯤 갔다. 아! 오늘은 불행하게도 셀 수 없을 정도의 토마-호크를 때린 뒤, 드디어 그린 옆에서 어프로치를 한다. 연습장에서 배운 데로 왼 발에 체중을 싣고, 손목에 힘 빼고 가볍게 1/2 스윙으로 공의 밑을 가격해야만 하는데... 쳤다. '딱' 소리와 함께 공이 낮게 깔리면서 그린을 건너서 100야드 이상 저 멀리 날라 가 버린다. 이럴 때 가끔 장타가 난다.

나도 장타의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어프로치로 100 야드이상 때리면, 미 PGA프로와 비슷한 거리 아닌가? 근데 차이는 나는 내 의지랑 무관하게 때린다는 것이고 타이거 우즈나 필 미켈슨등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때린다는 차이다.

역시 골프는 멘탈 껨이다. 심상 훈련을 더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친구들은 지겨운 듯 마지막 퍼팅을 남기고서 나를 기다린다. 울고 싶지만 웃으면서 '첫 라운든데 뭐!'라고 애써 여유로운 척 하면 친구들의 펏을 본다. 저들도 알고 있으리라. 내 마음이 골프채를 뽀개 버리고 싶을 정도로 뭉그러지고 있다는 것을. 산으로, 수풀 속으로, 비탈에서, 모래밭에서, 계곡에서 중심 잡기 힘든 상황에서 거의 모든 샷을 했다. 이렇게 며칠만 하면‘트러블 샷’의 대가가 될 것 같다.

그러나 내 소원은 ‘트러블 샷’의 대가가 아니라. 그저 공이 거리가 안나도 좋으니, 얌전히 패어 웨이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산악 훈련을 방불케하는 전반 홀이 끝났다. 놈들은 지네들끼리 쓰리 오버니 파이브 오버니 한다. 스코어에 관심 없는 척하면서 친구들 없을 때 뱁새 눈으로 스코어를 본다. 장사장님이라고 쓴 옆에 70이란 숫자가 보인다. 난 농구장에 온 줄로 착각 할 뻔 했다.

전반 70타---대단한 숫자이다. 뭐가 문제일까? 수도 없이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바꾸어 쳐 봤지만, 후반 역시 잘 맞으면 토마-호크요! 산으로 모래밭으로...아! 또 있다! 물이다.

그냥 손으로 던져도 넣기 힘들텐데, 물만 있으면 꼭 그 쪽으로 공이 빠진다. 묘한 일이다. 골프공과 물의 관계를 한 번 연구 해봐야겠다. 근데 할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왜냐면 나만 물로 넣지 다른 사람들은 물을 싫어하는지 공이 물을 피해가든지 혹은 물을 넘기지 않는가?

힘겨웁게 라운딩이 끝나고 락커로 돌아가는데, 친구 놈들 옷은 멀쩡한데 유독 나만 신발이며 옷이 흙에다 풀에다 모래에다 그야말로 엉망이다. 마치 산악 훈련하고 온 것 같다. 속으론 'ㅆ'자욕이 나오지만 참아야 한다. 놈들이 얘기한다. "야! 너 많이 늘었더라."

개소리다. 많이 늘은 놈이 전반 70 치냐? 나를 놀리는 것이다. 서럽지만 참아야 한다. 영광의 그날을 위해서. 드라이버를 제대로 때리고 투 온시킨뒤 여유롭게 펏을 할 그 날을 위해 참아야 한다. 9년 참았는데 평생 못 참을 것 없지 않는가? 돌아 오는 차안에서 마누라한테 이제 출발한다고 전화를 하니, 와이프가 하는 말

" 또 꼴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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