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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붕괴 이미 시작···10년 후 외과의 1천명 감소”
“필수의료 붕괴 이미 시작···10년 후 외과의 1천명 감소”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11.04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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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학회 “더 이상 후배들에게 사명감 강요 힘들어”···“필수의료의 90% 이상 외과”
‘과’ 아닌 ‘질환’ 중심 강화해야···“美는 외과 수입 10배 높아도 안 하는데 우린 더 적어”

“필수의료의 붕괴는 이미 시작됐다.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은 그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약 10년 후에는 우리나라에 수술할 수 있는 외과의사가 최소 1000명 이상 감소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보다 더 큰 참사가 예고되고 있다”

그동안 의료계가 수차례 필수의료 붕괴 위기에 대해 경고해 왔지만 좀처럼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으로 인해 이제야 정부 차원의 필수의료 강화 대책이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미 필수의료 붕괴는 시작됐다. 더 이상 대책을 미루면 최근의 ‘이태원 참사’보다 더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외과학회(회장 이문수, 이사장 이우용)는 3일부터 5일까지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리는 ‘새로운 세상에서의 외과의사’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를 맞아 3일 오후 3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한민국 필수의료의 위기를 전했다.

필수 초응급 수술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이에 대한 수가 가산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심야나 공휴일에 시행되는 응급수술은 들인 노력에 비해 수가가 너무 낮아 오히려 할수록 손해가 발생해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매우 꺼리는 상황이다. 외과의 경우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교수들까지 응급실 당직에 투입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들에게 더 이상 사명감을 강요하기엔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우용 이사장(삼성서울병원암병원 원장)은 “필수의료의 붕괴는 이미 시작됐고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은 그 시작을 알린 것일 뿐이다. 더 이상 안이하게 대처하면 앞으로 대한민국 필수의료의 미래는 없다”며 “외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필수의료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재의 필수의료 강화 대책 논의는 최소 3~4년 이상의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는 과거보다는 개선됐지만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이 말해 주듯 응급상황에서 외과나 신경외과 등의 중증 고난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는 너무나 부족한 현실이다. 즉, 응급실까지 환자를 이송하는 것까지는 많이 개선됐지만, 막상 이송되어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적절한 처치를 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홍석경 분과전문의 관리이사(울산의대 교수)는 “현재 정부는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필수 진료과 관계자 등이 참여한 협의체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중증응급환자들을 최종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수술실 등 시설과 인력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얼마나 투자할 수 있는지, 또 투자처도 명확하지 않아서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갈수록 외과의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져 외과가 전공의들에게 대표적인 ‘기피과’로 인식되고 있는 마당에 선배 외과의들도 더 이상 후배들에게 사명감만을 강조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다. 외과의 수가를 '찔끔' 인상하는 조치는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미 시작된 대한민국의 외과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문수 회장(순천향의대 교수)은 “우리 땐 외과의 경쟁률이 치열했지만 지금은 외과를 선택하면 ‘미련한 사람’처럼 취급된다. 더 이상 후배들에게 외과의로서 사명감이나 자부심 등을 강조하기도 민망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정승용 학술이사(서울시 보라매병원장)는 “아무리 대책을 세워도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이미 늦었다. 더 이상 유인책이 없다”며 “수가 인상만으론 앞으로 10년 후 우리나라에 수술할 의사들의 대량 공백 사태가 생기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는 또 “미국의 경우 외과의사의 수입이 내과의사보다 약 10배 정도 많은데도 외과가 너무 힘들어서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외과의사의 수입이 오히려 더 적거나 비슷하니 누가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우용 이사장은 “제가 전공의 시절에는 전체 전공의 2000명 중 200명이 외과를 선택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지만 이후 해마다 전공의 지원율이 감소해 지금은 3500명 중 130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앞으로 인구 고령화로 외과의사는 더 필요할 것임에도 이대로 가면 10년 후면 외과의가 최소 1000명 이상 감소할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기다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각종 규제가 더 심해지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누가 외과의사를 할 것인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인해 정부 차원의 필수의료 강화대책이 논의되기 시작한 후 현재 거의 모든 진료과가 ‘필수의료’라고 강조하며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모든 진료과가 자칫 잘못하면 생명을 잃거나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외과는 의사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필수의료’ 진료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사망한 아산병원 간호사가 받아야 했던 신경외과의 ‘뇌동맥류 결찰술’도 조금만 치료시기를 놓쳐도 사망할 수 있는 고난도 중증수술임은 분명하지만 막상 응급실로 내원하는 케이스는 많지 않다.

정승용 이사는 “서울대병원에서 3달 동안 이뤄진 야간응급수술 빈도를 조사했는데 외과의 비중이 약 90~95% 수준으로 나왔다. 반면, 뇌동맥류 수술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홍석경 이사 역시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자료를 요청해 조사한 결과, 전국의 권역·지역응급의료데이터베이스에서도 외과 수술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현재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는 필수의료 강화 대책은 ‘과’가 아닌 ‘질환’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우용 이사장은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가 필수의료이지만 사실 외과에도 위험도가 떨어지는 질환이 있다. 신경외과도 10%를 차지하는 뇌질환이 생명과 직결돼 중요한 영역이고, 흉부외과도 대다수 전문의들이 하는 정맥류가 아닌 심장질환이 중요한 것”이라며 “이 때문에 필수의료 강화 논의는 ‘응급성’과 ‘복잡성’ 등을 고려해 ‘과’가 아닌 ‘질환’ 개념으로 묶어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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