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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환자만 환자인가요?”···생명 위협받는 응급환자들
“코로나 환자만 환자인가요?”···생명 위협받는 응급환자들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01.07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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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망한 응급환자가 다니던 의원 원장 “병원 5군데나 전전하다 심정지”
코로나19 병상 늘리다 타 응급환자 골든타임 놓쳐···“응급실 체류시간 줄여야”

“얼마 전 사망한 환자의 부인이 저희 병원에 찾아와서 운명 소식을 전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코로나 환자 입원 병상을 늘리느라 다른 응급환자들이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작금의 상황에 화가 납니다.”

최근 40대 초반의 응급 환자가 응급실을 무려 5군데나 전전하다 엠뷸런스에서 사망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이 환자가 생전에 평소 다니던 내과 의원 원장 A씨는 본지를 통해 당시 상황과 이 환자의 평소 건강상태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코로나19가 아닌 응급 질환 환자들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밀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심지어 이로 인해 환자가 사망한 경우까지 발생해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A원장에 따르면 최근 앰뷸런스에서 사망한 환자는 43세의 남성으로 평소 천식이 있어 A원장의 의원을 다녔는데 사건이 발생하기 약 5주 전 몸에 이상 기운을 느꼈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119로 연락해 스스로 옷을 챙겨 입고 앰뷸런스에 탑승할 정도로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상황은 앰뷸런스에 탑승한 이후부터 발생했다. 이송 중 병원 5군데에나 연락을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계속해서 다른 병원이 가능한지 알아보던 중 앰뷸런스 내에서 심장마비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결국 이 환자는 심정지가 온 다음에야 겨우 모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심폐소생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겨우 심장만 뛰는 식물인간 상태로 5주 정도 버티다가 결국 운명하고 말았다.

A원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환자의 부인이 얼마 전 저희 병원에 오셔서 지난 1월 1일 남편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동안 돌봐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며 우셨다”면서 “운명하신 환자의 나이가 이제 겨우 43세인데, 제때 응급처치만 이뤄지면 살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사실 국내 병원의 응급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이미 포화상태였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까지 더해지자 현재 응급의료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환자, 백신 부작용 환자는 물론이고 병원에서 코로나 입원 병상을 늘리느라 다른 응급환자들이 진료를 못받아 골든타임을 놓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지금 이 시간에도 응급실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당장 수술이 필요한 암환자의 수술 일정도 밀리고, 만삭의 산모도 48시간 이내 발급한 코로나 음성확인증이 없어 분만실에 들어가지 못해 앰뷸런스 안에서 분만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응급의료역량을 초과한 재난상황에 일선 응급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코로나19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음압병상을 많이 만드는 것이지만 이는 단시간 내에 이룰 수 없는 중장기적 과제이기 때문에 우선은 응급실 체류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6일 본지와 통화에서 “현재는 일일 확진자가 줄어서 극도의 응급실 과밀화 현상이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확진자가 다시 늘면 똑같은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체류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관련 지침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는 코로나19 확진 검사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의 시간을 응급실에서 그대로 대기해야 하는데, 앞으론 응급실과 별도로 이 기간 동안 대기할 수 있는 임시시설을 만들고, 코로나19 양성 진단이 나온 순간부터 이송·입원이 이루어지도록 지침만 개정해도 응급실 과밀화 해소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코로나 의심 환자나 부작용 환자, 고위험군 환자 등이 응급실 방문 전에 다른 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검사는 충분히 받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코로나 진료만을 전담하는 ‘코로나 전담 병원’을 지정·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 현장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면서, 여기서 응급의료 현장에서 꼭 필요한 정책들이 도출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응급의료 재난상황일수록 비응급 환자의 경우 응급실 이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형민 교수는 “응급실은 진짜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에는 비워져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지금과 같은 재난상황에선 불편하더라도 비응급 상황이라면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 주실 것을 국민들에게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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