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59 (금)
꿈의 무대
꿈의 무대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2.01.04 09:5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영준의 공릉역 2번 출구 (43)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프게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폭 두목으로 나오는 김영철이 툭 내뱉는 대사,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로 유명한 영화 <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다. 총탄을 수없이 맞고 참혹하게 죽어가는 주인공 이병헌의 눈에 첼로를 연주하는 연인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가 첼로 버전으로 쓸쓸히 흐르는 가운데 우리 고전 ‘구운몽’의 반전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가 이병헌의 목소리로 낭송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꿈’을 말하는 우리의 태도는 그렇게 늘 이중적이다. 걸핏하면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닦달하는 ‘인생의 선배’들은 정작 자신이 못 이룬(어쩌면 제대로 가져본 적도 없는) 꿈에 대해서는 ‘원래 이루기 힘든 것을 꿈이라 하지 않느냐’는 말로 눙치고 넘어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꿈을 가지라’는 조언과 ‘꿈 깨’란 충고를 동시에 던지는 모순이 별로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면 어느덧 자신이 대책 없는 ‘꼰대’의 반열에 들어선 게 아닐까 돌아봐야 할 것이다.

뉴욕에 있는 카네기 홀은 음악 전공자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곳이다. 1891년 개관 축하공연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음악가는 표트르 차이콥스키였다. 이어 스트라빈스키, 라흐마니노프, 말러 같은 클래식 연주자들을 비롯하여 롤링스톤스나 비틀스 같은 팝스타들도 그곳을 거쳐 갔다. 공통점은 모두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이었다는 것. 주미 한국인 기획사나 한국 문화원이 돈을 많이 들여 통째 대관해서 초청하는 우리나라 일부 가수들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카네기 홀 자체의 기획공연에 초청받은 한국인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유일하다. 이런 경우 ‘꿈의 무대’란 표현은 어쩌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정말 서기 어려운, 그래서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무대란 의미일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즐겨 보시는 KBS <아침마당>에서도 매주 수요일 <도전, 꿈의 무대>란 코너가 펼쳐진다. 가끔 이름이 알려진 가수도 나오지만 대개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정성껏 노래를 부르고 시청자 전화투표를 통해 승자를 가린다. 방송국 스튜디오가 그리 대단한 공연장이라 볼 수는 없으니 여기서 ‘꿈의 무대’라고 할 때의 ‘꿈’은 ‘꿈같은 공연장’이 아니라 출연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소박하지만 소중한 자신만의 꿈’을 일컫는 것이리라. 따라서 일반인들에게 카네기 홀은 ‘꿈’이란 단어가 ‘꿈 깨’라고 말할 때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 ‘꿈의 무대’겠지만, KBS <도전, 꿈의 무대>에서의 ‘꿈’은 ‘꿈을 가지라’고 말할 때처럼, 제법 실현 가능한 종류의 ‘꿈’이 아닐까.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 우리 병원 로비에서는 매월 한두 차례 점심시간에 여러 가지 공연이 펼쳐지곤 했다. 병원 포크기타 동아리에서 발표회를 하기도 했고, 인근 교회에서 작은 오케스트라가 위문공연을 하러 오기도 했다.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단이 와서 공연할 때는 음량 조절이 안 되어 귀가 아플 지경이라고 일부 환자들이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조금 산만한 분위기에서나마 보통은 그럭저럭 공연이 진행되었고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았다. 연주자들의 실력과 관계없이 주로 트로트 곡들이 연주될 때 훨씬 뜨거운 호응이 있었던 걸 보면 마음이 바쁜 청중으로부터 짧은 시간 내에 공감을 끌어내는 데에는 유행가가 최고였던 것 같다.

임인년 신년의 결심 리스트에 ‘하모니카 제대로 배워보기’를 넣자마자 나는 인터넷으로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하나 주문했다. 가장 일반적인 트레몰로 하모니카는 반음계를 낼 수 없는 단점이 있기에 슬라이드 버튼을 붙여 자유롭게 반음을 구사할 수 있게 만든 타입이 크로매틱 하모니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겨울 방학식 날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졌던 나는 깁스를 한 채 그해 방학을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때 어머니가 선물해 주신 하모니카는 갑갑함을 달래 준 유일한 벗이었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리며 요즘 새로 구입한 하모니카를 저녁마다 맹렬하게 불고 있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와 쇼팽의 ‘이별의 곡’을 한참 연습하다가 문득 우리 병원 로비의 풍경이 떠올라 유행가, 그것도 최신 트로트 곡 악보를 몇 개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다음 혹시 기회가 된다면 우리 로비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한번 해볼까 하는 ‘꿈’이 생긴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57번 스트리트와 7번 애비뉴가 만나는 곳에 카네기 홀이 있다. 누구든지 그 근처를 서성거리면 카네기 홀이 어디 있는지 묻는 관광객들을 곧잘 만난다고 한다. ”카네기 홀이 어디에(where) 있습니까?”라거나 “어느 길로(which way) 가야 합니까?”라고 묻는 이들에게는 뉴요커들이 길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만, 같은 질문을 “카네기 홀에 어떻게(how) 갑니까?”라고 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이렇게 대답한단다. “연습(practice)해야 합니다.” 이걸 강조해서 세 번씩 말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연습, 연습, 연습(practice, practice, practice)”. 썰렁하지만 뉴욕에서는 아주 유명한 농담인가 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없고 세계적인 명성 또한 없지만, 내게 도전하고 싶은 ‘꿈의 무대’가 하나 생긴 게 괜히 흐뭇하다. 카네기 홀조차 연습을 열심히 하면 갈 수 있다는데 원자력병원 로비쯤이야. 안 그래도 우리 병원 로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피아노에 먼지만 쌓여 가는 게 안쓰럽던 참에, 코로나가 끝나는 날 내가 하모니카를 들고 나가면 직원들이 기타며 바이올린이며 저마다 자기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들을 들고 로비에 모여 기쁨의 음악회를 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다가 슬피 우는 소심한 제자가 적어도 우리 병원엔 없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홍석원 2022-01-04 13:07:04
기타연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저도 가겠습니다.
글을 읽으며 도전과 격려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