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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 마을 전투’, 그리고 미확인 생명체
‘맷돌 마을 전투’, 그리고 미확인 생명체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1.12.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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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47)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성훈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이제 종이신문이나 TV로 뉴스를 접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주된 뉴스 전달 매체이다. 그리고 실시간성이라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SNS 역시 무시 못 할 매체이다.

2015년 이라크 청년 ‘아마드 알 마흐무트’는 이라크 전쟁 뉴스를 전문적으로 전달하는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이라크 정부와 IS 간의 전투는 소강 상태였다. 뉴스가 없어 고민하던 마흐무트는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라는 언론계 속언을 떠올렸다. 그래서 마흐무트는 뉴스를 만들기로 했다.

마흐무트는 ‘이라크 시치와(Shichwa) 마을에서 민병대가 IS를 물리쳤다’라는 가짜 뉴스와 함께 교묘하게 편집된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치와’ 마을은 카르발라 시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이는 현지인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시치와는 버터를 만들기 위해 동물의 젖을 휘젓는, 중동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맷돌 같은 단어라고나 할까.

이러한 마흐무트의 의도를 알아챈 중동 지역의 네티즌들은, 이 ‘맷돌 마을’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업로드하거나, CNN이 ‘맷돌 마을 전투’를 보도하는 합성 사진을 업로드하면서 마흐무트의 농담에 동참했다. 마치 만우절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태는 마흐무트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IS 지지자들과 이라크 정부 지지자들이 이를 사실로 믿고 공유하면서 이 가짜 뉴스가 순식간에 퍼져나간 것이다. 게다가 양측은 마흐무트가 전혀 언급한 적이 없는 내용까지 덧붙였다. 즉 IS 추종자들은 ‘시치와 마을의 승리 이후 인근 카르발라 시에서 승리 기념 축제가 있었다’는 내용을, 이라크 정부 지지자들은 ‘1만 명의 시치와 피난민들이 카르발라 시로 향했다’는 내용을 각기 업로드했다. 심지어 인접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한 네티즌은 ‘사우디 군은 빠르게 이라크 국경으로 진격해 시치와 마을에서 빠져나온 IS군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마흐무트는 이틀 뒤에 자신의 트위터에 ‘진짜 시치와 사진’을 올리면서 이것이 가짜 뉴스였음을 실토했다. 엄청난 비난을 받은 마흐무트는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면서도, 동시에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 사실보다 믿고 싶은 것에만 집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항변했다. 그리고 가짜 뉴스의 파급력과 사회에 미치는 해악에 관한 교과서적 사례를 남기고, 이렇게 ‘맷돌 마을 전투’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 실소를 자아내는 사건으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가짜 뉴스는 더욱 극성을 떨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특히 의료계에서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어떤 시민단체는 ‘청소년 백신접종 및 백신패스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까지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단체가 개최한 기자회견에 의사 A가 참석하여 ‘백신 배양액 속에서 정체불명의 미확인 생명체들이 다량 발견됐다’라고 주장했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A는 ‘특수입체현미경으로 백신 1종 6개 앰플 시료를 관찰한 영상’을 공개하면서, ‘백신 6종 모두 정체불명의 미확인 생명체들이 존재했으며, 1㏄당 300만~400만 마리나 발견됐다’라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당황스럽다. 하지만 당황을 넘어서 황당한 것은,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몇몇 의사들이 의협을 방문하여 나눈 대화 내용을 왜곡하여 가짜 뉴스로 유포한 일이다. 의협을 방문한 의사 B는 자신의 SNS를 통해 ① 무작위로 선택한 백신 샘플들을 국과수를 통해 검증하기로 의협 회장이 약속했고, ② 국과수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입회하여 공동으로 조사하기로 했으며, ③ 의사 A에 대한 의협 중앙윤리위원회 제소는 국과수의 결과 발표 시까지 보류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일단 이들이 출타 중인 의협 회장을 만나지도 못한 것과는 별개로, 의협은 이들의 요구사항 중 어떤 것도 동의하거나 약속한 바가 없고, 의사 A에 대한 중윤위 제소는 담당위원회인 자율정화특별위원회에서 계속 협의 중이며 조건부로 보류한 바 없다. 그래서 위 주장들은 모두 명백한 가짜 뉴스이다. 의협은 위 SNS 내용에 대해 항의했고, 이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을 약속했다.

특정 분야에서는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에 따르지 않고 전문성을 가진 소수의 판단에 따르도록 하는 ‘전문가 제도’를 수립하고 운용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전문적 판단의 합리성 여부를 비전문가들이 부분적인 이해와 파편화된 정보로 판단하는 것이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사회구성원들의 오랜 경험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 제도 역시 한계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에는 전문적 판단 절차에 비전문가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바람직한 사회적 협업이 유의미한 성과에 도달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비전문가들이 일차적으로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문가들이 비전문가들의 사회적 신뢰를 깨뜨리지 않도록 언행을 신중히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미확인 생명체’ 발언을 한 의사 A나, ‘국과수 검증 약속’ 발언을 한 의사 B는 지탄받아야 한다.

개인으로서의 정치적 발언과 전문가로서의 의견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개인적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이용하는 행위는 수많은 동료들을 해치는 행위이다. 최근 뉴질랜드 의사협회는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의견을 게시한 3명의 의사들의 면허신고를 접수 거부하여 그들이 의사로 일할 수 없게까지 했다. 극히 일부 의사의 ‘맷돌 마을 전투’로 인해 코로나 전쟁의 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의사들의 희생이 빛을 바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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