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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코로나, 그리고 선택
타이레놀, 코로나, 그리고 선택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1.12.21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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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46)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유한) 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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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그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이다. 사르트르는 출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의 연속인 인간의 인생을, 이처럼 호기심을 끌어내는 한 줄의 말로 요약했다.

벌써 2년째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여러 나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고, 그 대응의 핵심에는 ‘백신’이 있다. 여러 제약회사들이 앞 다투어 시장에 내놓은 백신 중 세칭 얀센 백신이 있다. 이는 존슨앤드존슨이라는 기업의 백신전문계열사인 얀센이 만든 것이다. 이 백신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백신 중에서 돌파감염이 많다는 입소문이 있어 ‘물백신’으로 저평가되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존슨앤드존슨이라는 기업을 다소 낮춰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존슨앤드존슨은 탁월한 선택을 해 왔던 기업이다.

1982년 미국 시카고 교외의 한 마을에서 12세 소녀가 감기약을 먹고 갑자기 숨졌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되짚어 조사해 보니, 며칠 새 시카고 일대에서 7명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는데, 이들 모두가 숨지기 직전 감기약으로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했고, 그 캡슐에는 치명적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피해자들이 복용했던 타이레놀은 각기 다른 공장에서 생산됐고, 공장 생산 과정에서 독극물이 투입됐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슨 CEO인 제임스 버크는 기업 역사상 유례없이 신속하고, 단호하고, 솔직하게 대처했다.

존슨앤드존슨은 12세 소녀가 숨진 바로 다음날 타이레놀 광고를 전면중단했고, 언론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렸으며, 범인 검거에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리고 타이레놀 캡슐 제조를 중단하고, 전국의 병원과 약국에 연락하여 ‘타이레놀을 처방하거나 판매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존슨앤드존슨의 요청으로, 경찰은 관할구역을 돌면서 경찰차 방송으로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하지 말라’고 시민들에게 알렸다. 경찰과 FDA 등 관계 당국과의 긴밀한 협력 덕분에, 독극물이 주입된 타이레놀 병이 몇 개 더 발견됐지만, 사상자는 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극물이 주입된 타이레놀이 더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사건 발생 한 달 뒤에 이미 전국에 팔려나간 캡슐형 타이레놀 3100만 병을 모두 회수하는 리콜 조치를 단행했다. 리콜 대상 물량의 시가는 1억 달러가 넘었다. 보건당국조차 소비자들의 불안을 우려하여 이를 ‘과잉 조치’라고 치부했으나, 제임스 버크는 ‘소비자의 안전에 비하면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리콜 조치를 밀어붙였다.

업계에서는 이로 인해 비처방 감기약 부동의 1위였던 타이레놀이 퇴출당하는 것은 물론, 1886년 설립하여 100년에 이르는 존슨앤드존슨이라는 기업도 쇠락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로 표현되었던 존슨앤드존슨의 진정성을 신뢰했다. 타이레놀은 사건 발생 2개월만에 이물질 투입이 불가능한 삼중포장용기에 담긴 알약형 제품으로 시장에 복귀했고, 40%에 이르는 시장점유율을 회복했다. 그리고 타이레놀은 이 사건 이후 40년간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2012년 작고한 제임스 버크 CEO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사실 존슨앤드존슨의 이러한 선택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존슨앤드존슨은 ‘윤리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ESG’ 같은 개념이 생기기 훨씬 전인 1943년부터 주주뿐만 아니라 고객, 직원,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4개의 문단으로 천명한 ‘우리의 신조(our credo)’라는 헌장을 공식 채택하고 이를 구체적인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선택을 했던 기업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는 지난 2년간 정부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해 왔다. 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선택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의료계는 위중증환자 대응체계가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경고하면서 목청 높여 거리두기로의 복귀를 제안했다. 반면 550만 명의 자영업자들은 그간 감내해 왔던 고통을 상기시키면서 더욱 목청 높여 거리두기로의 복귀를 반대했다.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전형적인 ‘딜레마’ 상황에 해당한다. 그래서 ‘위드 코로나’를 선택한 정부의 결정 자체가 옳은지 아닌지는 현재로서는 명확히 판단할 수 없다.

위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충분한 병상 확보가 ‘위드 코로나’의 전제조건임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언론보도를 보면 재택치료 중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책 선택 자체를 평가하기 이전에, 정부는 정책의 전제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선택에서 이미 실패한 것이다. 필요병상수를 잘못 예측했건, 예측한 필요병상수를 확보하지 못했건 말이다.

‘위드 코로나’의 실패 원인으로 극히 일부에서는 정부의 행정명령에 대한 민간의료기관의 협력 부족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종급 의료기관들은 오래 전부터 병상 부족을 겪어 왔다. 이들에게 코로나 중환자 병상 수를 1.5%에서 4%로 늘리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고 해서, 기존 환자들이 기적처럼 나아서 병원을 걸어 나갈 수는 없다. 따라서 병상 짜내기를 이행하지 못했다고 의료기관들이 비난받기 이전에, 병상 짜내기를 탁상에서 논의한 정부가 먼저 비난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환자 병상을 코로나 환자에게 우선 배정하면 다른 중환자들의 치료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의료기관들은 부득이 ‘살릴 환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정부의 선택 실패는 의료기관들에게 더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어떤 기업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을 때 신속하고, 단호하고, 솔직한 대처를 선택함으로써, 그리고 모든 기업들이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혈안되어 있을 때 고객, 직원,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선도적으로 선택함으로써 경영학계에서 ‘올바른 선택’의 교과서적 사례가 되었다.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계속하여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한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 선택의 고충을 토로하기 이전에, 정책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병상의 효율적 운영, 의료인력의 확충과 적절한 처우, 인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손실보상기준의 개선에 관해 의료계가 지적하는 사항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의료진들과 자영업자들의 희생으로 어렵게 번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이번 거리두기 기간 동안 의료계와 충실히 협의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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