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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합시다
밥 먹고 합시다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12.2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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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준의 공릉역 2번 출구 (41)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는 대도시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잔잔하지만 쓸쓸한 선율의 기타 전주가 흐른다. 추억을 부르는 노래가 이어지고 이내 주인공의 나직한 내레이션이 나온다. “하루가 저물고 모두 귀가할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는 도쿄 최고의 번화가인 신주쿠 어느 뒷골목에 자리 잡은 허름한 식당의 주인으로 ‘마스터’라 불리는 사람이다. 자정이 다되도록 식사를 못 할 만큼 고달프고 피곤한 인생인 이웃 손님들을 위해 마스터는 오늘도 대표메뉴 ‘돈지루(일본식 돼지고기 된장국)’를 정성껏 준비하고 있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은 늘 그렇게 시작한다.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매회 옛날 핫도그나 오므라이스, 달걀 두부 같이 소박한 음식들이 등장하고 이 음식들에 얽힌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소개되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저마다의 애절하고 절박한 사연을 마스터에게 털어놓지만 그는 묵묵히 음식을 만들어주며 듣기만 할 뿐 적극적인 조언이나 충고는 삼가는데, 그 부분이 또한 드라마의 매력이다. 사람들을 힘들게 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은 대개 음식, 그러니까 ‘밥’을 함께 먹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해결된다. 드라마 제목은 <심야식당>이지만 그 가게의 간판에 붙어있는 일본어 ‘메시야(めしや)’는 우리말로 ‘밥집’이라는 게 인상적이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가 염려스러워 저녁에 시간 날 때면 종종 찾아뵙곤 한다. 그런데 인사드리고 아프신 데 없는지 확인하고 나면 사실 나눌 이야기가 마땅치 않다. 매번 정치인들 흉만 보고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골치 아픈 병원 사정을 시시콜콜 말씀드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할 수 없이 두 사람이 서로 잠자코 TV만 보고 있을 때가 많은데 딱 하나 예외인 시간이 있다. 그건 바로 최불암씨가 전국을 누비며 해설을 해주는 <한국인의 밥상>이란 프로를 볼 때다. 

일전에는 마침 알배기 생선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내용이 방영됐다. 동해에서 잡은 알이 꽉 찬 도루묵과 곰치. 이들을 굽고, 찌고, 끓여서 만드는 각종 요리들. 아쉽게도 우리 바다에서는 명태가 사라졌지만 수입한 것으로나마 정성껏 숙성시켜 만든다는 명란젓. 꼭 시루떡처럼 만들어 쪄먹는 도치알 등등, 먹음직스러운 생선과 생선알 요리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군침 돌게 만들 즈음이면 어머니와 나는 어느새 지난 시절 우리가 경험했던 다양한 밥상의 추억들을 열심히 나누고 있게 된다. 

한국전쟁 직후 피폐했던 시기에 거의 질리도록 매일같이 드셨다며 ‘수제비’를 아주 몸서리쳐지는 음식으로 꼽는 어머니는 내가 그걸 좋아하는 걸 신기해하신다. 어렸을 적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머니가 해주셨던 ‘갱시기’란 이름의 경상도 음식 또한 나는 좋아한다. 밥을 멸치 육수에 말아 여기에 김치를 쑹덩쑹덩 썰어 넣은 다음 콩나물에 떡국 떡도 넣어 죽처럼 끓인 음식인데 신기하게도 그걸 먹고 나면 감기 기운이 뚝 떨어졌던 기억이 난다. ‘갱시기’가 내 영혼의 음식이었다고 너스레를 떨 때마다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이렇게 음식을 둘러싼 모자간의 대화는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온갖 옛이야기들을 소환하는 신통력을 발휘하기에, 불철주야 전통 밥상을 소개하고자 전국을 다니시는 최불암씨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심야식당>과 <한국인의 밥상>이 보여주듯이 밥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고 추억이 있으며 삶의 온갖 애환이 소복이 담겨 있다. 우리 선조들이 인사 삼아 ‘밥을 먹었는지’부터 먼저 물었던 까닭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굶주렸던 시대에 육체적 안위를 걱정해서였겠지만 거기에 더하여 ‘밥’으로 상징되는 인간사의 여러 풍성함을 부디 넉넉히 누리고 살라는 의도도 좀 포함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 역병으로 이런 삭막한 시간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

지긋지긋한 코로나 팬데믹이 바꿔놓은 우리 일상의 풍경 중에 식사문화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여럿이 둘러앉지도 못하지만, 밥을 함께 하는 몇몇도 제대로 대화조차 나눌 수 없게 되었으니 이 시대 직장인의 밥상에는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추억도 만들어 낼 힘이 없음이 참 안타깝다. 행여 바이러스 들어올까 싶어 입과 코를 갑옷처럼 옥죄고 다니는 마스크를 잠시 벗을 수밖에 없는 때가 식사 시간이라 도리어 함께 밥 먹는 게 요즘엔 가장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다. 

백신을 접종하고도 코로나에 걸리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병원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은 구내식당의 좌석을 좀 더 줄이자고 감염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결정했을 때 나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게다가, 앞으로는 매번 식당에 모여서 밥을 먹지 말고 되도록 각자의 근무 장소에 흩어져 식사하라는 취지로 테이크아웃용 샌드위치까지 잔뜩 준비해 놓기로 했지만, 그것 역시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 모든 게 다 밥상을 없애는 일 아닌가. 단순히 ‘먹는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밥상을 말이다.

8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 ‘비룡 그룹’이란 재벌회사가 있었다. “잘 돼야 할 텐데”를 입버릇처럼 내뱉는 김덕배 회장의 좌우에 늘어선 그 회사 임원들은 회의 중에도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아부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회의 분위기가 점점 지리멸렬해질 때 김덕배 회장의 처남인 양 이사가 큰 목소리로 뜬금없이 외쳤던 말. “밥 먹고 합시다!” 

김형곤, 양종철이 등장했던 추억의 코미디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문득 떠오른 것은 이후 오래도록 유행어가 됐던 ‘밥 먹고 합시다’의 강렬한 여운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일차적 식욕 충족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칼로리 보충에 더하여 ‘밥’이 제공하는 휴식과 힐링 그리고 동료간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총망라하는 복합적인 의미였다. ‘밥 먹고 합시다’란 외침에서 그때의 시청자들이 느꼈던 그 카타르시스를 오늘날의 능동적, 수동적 ‘혼밥’ 세대들도 꼭 다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가까운 장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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