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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별을 보다
그곳에서 별을 보다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12.13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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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준의 공릉역 2번 출구(40)
홍 영 준원자력병원장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이 세상에 디지털 문명이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에서 접하는 신문물에 탄성을 질렀다. 학생들은 두꺼운 영어사전 대신 예쁘고 편리한 전자사전에 환호했고 음악 애호가들은 카세트테이프나 LP판보다 월등히 뛰어난 음질과 휴대성을 지닌 MP3 음원에 열광했다. 학회 때마다 교수님들이 발표할 청색 슬라이드 사전 제작에 온 신경이 곤두섰던 이 땅의 조교와 레지던트들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초치기 수정이 가능한 파워포인트의 등장이 ‘복음’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우리 일상 속 거대한 디지털의 파도가 밀려간 곳은 책을 만드는 출판 시장. 나는 종이로 된 책이 어쩌면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아마존에서 ‘킨들’이란 이름이 붙은 최초의 ‘e북 리더기’를 세상에 내놓은 게 2007년이다. 첫 버전은 물론,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몇 차례 킨들을 구입했던 나는 지금은 그 편이성으로 인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에도 다수의 전자책들을 내려 받아놓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하릴없이 쪼그라들 줄로만 알았던 종이책 시장이 킨들 탄생 10년째인 2017년에 전년보다 7% 이상 커졌고 전자책은 17% 이상 감소했다는 보도가 영국과 미국에서 나온 것이다. e북 리더기의 판매량 역시 2011년을 정점으로 서서히 내리막을 걷는다고 한다. 

기본 형태에 큰 차이가 없이 수천 년을 면면히 이어 온 종이책의 생명력이 기어이 첨단 전자책의 공격을 뿌리치고 있는 형국이라 그 비결이 뭔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만지고, 냄새 맡고, 책장을 접거나 예쁜 북마크를 끼워 넣고, 정성껏 포장해서 선물도 하고, 그렇게 감각과 감정이 개입된 추억들이 종이책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게 큰 이유 아닐까. 차가운 전자책으론 어림도 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아쉬운 점은 종이책이 모처럼 잡은, 디지털에 대한 아날로그의 승기를 사보(私報)라 불리는 소책자들은 이어가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원자력병원에 입사했던 20세기 말, 우리 기관에도 사보라는 게 있었다. 작은 신문 형태로 흑백 사진과 함께 임직원들 동정을 엮어 띄엄띄엄 한 번씩 발간하는 것이었다. 사보라 하기엔 좀 빈약해서 내가 편집인을 맡아보겠다고 자청했다. 당장 신문 스타일에서 소책자 형태로 겉모양부터 바꾸었는데 예산이 별로 없으니 표지를 어떻게 장식할지가 막막했다. 할 수 없이 표지 사진으로 쓰기 위해 이비인후과 동기와 카메라를 들고 병원 곳곳을 직접 촬영하고 다녔다. 그러다 아예 병원 전경을 찍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도 없는 앞동산에 억지로 올라가 셔터를 누르다 그 친구가 미끄러져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사보 팀원들은 하나둘 보강이 되었고 표지엔 직원들의 어린 자녀들 사진을 올려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직원 가족들을 외부 스튜디오에 불러 전문기사가 멋진 가족사진도 찍어주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사진은 따로 사보 표지에 올리니까 여러모로 반응이 좋았다. 마침내 당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우리 집 아들딸 쌍둥이들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왔다. 스튜디오에서 소품을 들고 장난치며 즐거워하던 가족들, 함박웃음이 피어난 가족사진, 그리고 사랑스러운 포즈로 우리 사보의 얼굴을 장식한 대견스러운 두 녀석들. 내게 사보 제작의 경험은 그렇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제 종이로 된 사보는 없어졌고 그 자리를 소위 ‘웹진’이라 불리는 인터넷 홍보물이 차지했다. 웹진을 통해 디지털의 화려함과 편리함이야 실컷 누리고 있지만 예전처럼 종이 사보에서 배어나던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없어 좀 서운하다. 물론 종이 사보의 실종을 아쉬워하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니까 많이 사그라졌었는데,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옛 사보 몇 권을 발견한 순간, 마치 소다를 투척한 달고나처럼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이 와락 일었다. 그 사보 한 권에서 어린 날의 우리 집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이 표지 모델이었던 옛날 우리 사보에는 <별처럼>이란 제목이 붙어있었다. 서울대학교병원의 오래된 사보명인 <함춘시계탑>이나 과거 어머니들이 열독하시던 아모레 화장품의 사보 <향장>처럼 우리도 뭔가 특징적인 이름을 지어보자고 아이디어를 모은 끝에 탄생했던 제목이었다. 본래 ‘대한민국 방사선의학의 별이 되겠습니다’라는 의미를 담은 네이밍이었으니, 여기서 말하는 ‘별’은 근래에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었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별의 순간’과 비슷한 뜻이다. ‘최고의 순간’, ‘절정의 순간’을 우리가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자 결의라고 할까.

장성한 자녀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뜻밖에도 먼지 쌓인 옛 사보 <별처럼>에서 접했을 때 나는 그 명칭의 유래를 잘 알면서도 <별처럼>의 ‘별’이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뤼브롱 산에서 양들을 치다가 우연한 기회에 주인집 아가씨 스테파네트와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나누던 양치기의 별이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양치기의 어깨에 부드러운 머릿결을 기대며 잠이 든 스테파네트.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별>의 잊지 못할 마지막 장면에 양치기의 이런 독백이 나온다.

“가끔 나는 저 숱한 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 프로방스 지방의 어느 산속에서 그랬던 것 같이, ‘별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어느 날 불쑥 나의 소중한 가족으로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어느 날 내 친구가 되었고 나의 직장 동료가 되었다. 숱한 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별들이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벗이 되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그렇게 나는 우리 옛 사보 <별처럼>에서 별 같았던 아이들을 발견했고, 그 시야가 조금 넓어지면서 밤하늘에 ‘별처럼’ 반짝거리는 우리 회사 동료들과 직원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는 원자력병원으로 향하는 공릉역 2번 출구에서부터 사랑스럽게 빛나는 별을 보게 되니 이 또한 0과 1로 딱딱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레 주르르 연결되는 아날로그 감성의 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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