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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6주년 특집] 정부 상대할 땐 전략적 힘 모아야···국민신뢰 얻기 집중
[창립 106주년 특집] 정부 상대할 땐 전략적 힘 모아야···국민신뢰 얻기 집중
  •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 승인 2021.12.06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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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대선-의료백년대계를 위한 의료계의 상생 제안
2020년 여름 젊은의사 단체행동, 아직 걸음 멈춰선 안돼
왜곡된 의료제도 개선 위해 모든 의사 한 목소리로 대응해야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주제를 보고 매우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의료계의 상생을 위해 전공의·교수·개원의·봉직의 등으로 직역들이 구분되어 있고, 직역마다 첨예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십 개의 과가 나누어져 있고 과마다 환자 진료를 볼 때에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 의료현장에서는 더더욱 각과의 의견을 합치시키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의 개혁을 함께 의논하지 않는 실정이 다소 안타깝다. 수련병원에서 전공의의 업무가 전임의, 교수에게 전가되고 그것도 모자라 의사의 업무를 부끄럽게도 타 직역에 떠맡기면서 한푼 두푼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들을 보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러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고개를 저을 때도 있다.

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부터 시작된 수많은 의료현장을 왜곡시키는 악조건의 조항에 항거해 보았지만, 결국 우리는 지쳐 쓰러지기만 했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악법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선배 의사들이 흰 가운을 벗어 던지고 진료 현장을 뛰쳐나왔었다. 2000년도 의약분업 때가 그러했고 2014년 원격의료 파업 때가 그러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뼈아픈 순간이라고 생각한 2020년 여름의 파업이 그러하다. 언론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파렴치한’이라고 비난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함께 뭉쳐 이 사태를 해나가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특히나 지난 2020년 여름 뜨거웠던 의료계의, 아니 젊은 의사들의 단체행동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혹자는 의료계가 제일 처음 주장했던 ‘공공 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확충’을 이 파업을 통해 막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게 남은 상처는 너무나 크기 그지없다. 이렇게 해서 막았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대생들(지금의 인턴 선생님)은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잡기 위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불구덩이인 줄 알면서도 국시 거부라는 카드를 꺼내어 거리로 뛰어들었다. 전공의들은 하나같이 일 년에 며칠 되지 않는 소중한 연차를 쓰고 단체행동에 참여하였다. 모든 것이 부족한 우리들이었지만, 젊은 미래를 담보하여 그저 젊은 미래라도 걸겠다는 각오로, 어렵고 힘든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잘못된 의료제도로 수없이 희생당해야 했던 그리운 환자들을 향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했다.

젊은 의사는 파업의 대오에 함께 하지 못한 선배 의사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의대생은 젊은 의사들과 선배 의사들에게 배신당한다. 전공의는 파업을 강행하자는 의견과 파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서로 양분되어 대립한다. 

파업이 종료되고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여당으로부터 의료계를 향한 거침없는 막말이 쏟아졌고 약속이나 한 듯 국회에서는 몰상식한 법안들이 발의됐으며 언론은 수년간 묵혀왔던 의료계 내부의 부끄러운 일들을 펼쳐내기에 급급했다. 국정감사에서도 지난 합의 사항은 모조리 무시된 채 각 지역구의 득표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 일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의대 증원과 공공의료를 논한다.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대가는 꽤 컸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질병 앞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지만, 싸움의 끝은 보이질 않는다. 무용지물의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수도권으로 환자들은 편중되고 있는 사태를 마주하면서도 의료인력의 수급을 논의하고 있으니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옛 선인들의 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다. 상식을 논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비상식적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구심점, 원동력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이다. 의대생들은 전공의를 신뢰하지 않고, 전공의는 선배 의사들을 신뢰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서로의 오해 속에 감정의 골은 깊어져갔고 전공의 사회를 이끌어가면서 느끼는 바로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걸음을 멈추어선 안 된다. 후배와 선배 모두가 힘을 모아 상호 이해하고 존중하며 새로운 파이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우리끼리 치열한 토론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정부를 상대할 때만큼은 전략적으로 함께 힘을 모아 대응할 수 있는 의료계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권익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보단,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한 일에도 우리가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론의 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과오를 또 한 번 저질러선 안 되겠다.

우리는 상식을 주장해야 한다. 왜곡된 의료체계를 개선 시키기 위한 목소리를 낮추어선 안된다. 언제까지고 그저 무릎 꿇고 있을 수만은 없다. 분열을 막고 불신을 제거하고 서로 연대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 젊은 의사들이 다시 뭉쳐야 하고 의협, 선배 의사들과 공조해야 한다. 

때론 싸우고 때론 협상하는 치열한 자세로 정부의 협력도 끌어내야 한다. 그것의 선두에 내가 앞장서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전국의 일만사천 전공의뿐만 아니라 의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수많은 선배 의사들에게도 함께 해주기를 감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왜곡된 체계를 한목소리로 개선 시켜달라 요구하는 세상이 되길 바라고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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