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2:50 (목)
거세게 반대했던 '원격의료', 의료계가 선제적으로 나서 '대안' 마련
거세게 반대했던 '원격의료', 의료계가 선제적으로 나서 '대안' 마련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1.12.01 0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 30일 제3차 세미나 개최
원격의료 도입은 '시대적 흐름'...현실론 무게 실려
'재택치료 협의체' 합리적 수가 결정, 의약품 비대면 같이 시행

의료계에서 거세게 반대해왔던 ‘원격의료’가 코로나 사태 이후 한시적으로 시행되면서 의료계에서도 ‘무조건 반대’가 아닌 선제적으로 대안을 마련해 나가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특별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가 지난 30일 ‘원격의료 관련 법규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로 개최한 제3차 세미나에서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제 원격의료 도입을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의료계 내부 의견을 잘 취합한 뒤 적정한 수가를 마련하는 등 향후 논의 과정에 이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론'에 무게를 실었다.

◆ 복지부 ‘법’ 무시한 채 ‘시행’…“의사에 이익되는 제도 만들어야”

연구회는 이날 세미나에서 원격의료 도입과 관련해 현행 의료법 관련 조항은 물론, 수가 관련 정책이나 환자 본인 확인, 의약품 비대면 구매, 진료장면 녹화, 시설 기준 법제화, 개인정보 보호 등 다양한 주제로 논의의 장을 펼쳤다.

김성근 연구회장(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는 우선 “지난해만 하더라도 의사 단체에서 원격의료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됐는데, 원격의료에 대해 연구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시대 변화에 따라 의료계도 발맞춰 움직여야 한다”며 “연구회는 원격의료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토론하자는 의미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현행 의료법 관련조항’을 주제로 발표한 김 회장은 “현행 의료법상 원격의료는 ‘의사 대 의사’ 간의 원격의료만 허용하고 있고, 대법원 판례 역시 ‘전화 진료’도 허용하고 있지 않다”며 “보건복지부가 대법원 판례를 무시한 채 코로나19로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대법원은 의료법이 의료인에 대해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영위하도록 한 것에 대해 '의료의 질 저하와 적정 진료를 받을 환자의 권리 침해 등으로 인해 의료질서가 문란하게 되고 국민의 보건위생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게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보건의료정책상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의 의료기술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의료인이 전화 등을 통해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할 경우, 환자에 근접해 환자의 상태를 관찰해가며 행하는 일반적인 의료행위와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환자에 대한 정보 부족은 물론 의료기관에 설치된 시설·장비의 활용 제약 등으로 말미암아 부적정한 의료행위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국민의 보건위생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의사와 의사 간에도 실제로 하고 있지 않는 원격의료를 의사와 환자 간으로 확대하려 한다”며 “환자 대상을 장애인, 만성질환관리제(만관제)등으로 범위를 정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코로나로 비대면 진료 후 가장 걱정된 부분이 ‘환자’와 진료를 한 것인지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며 “시대가 변하면서 원격의료가 거스를 수 없는 사안이 된 만큼 의료계가 선제적으로 대응해 의사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포괄수가제 ‘형식’ 수가 다양한 ‘단계’로 만들어야

최상철 정신전문연구원은 수가 정책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의료의 시작과 끝은 수가가 결정할 만큼 원격진료도 수가 여부가 중요하다"며 "국민건강보험법상 원격진료는 아직 명시적인 수가, 즉 진료비 지급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된 저수가가 현재까지 이어져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전화상담 또는 원격진료의 수가가 어떻게 결정될지 중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수가 정책의 문제점으로 '진찰'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최 연구원은 “진찰은 의료의 꽃으로 시작이자 마지막이라 볼 수 있는데, 이 모든 의학적 과정이 '진찰료'라는 한 단어로 포괄수가제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며 "진찰료에 대한 내용이 단계별이든, 심층적이든 다양한 '단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과 심층진찰 수가 시범사업을 예로 들며 “진찰료가 높이 책정됐던 몇 가지 사례가 있는데, 원격진료도 이런 기준으로 책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2021년 코로나 재택치료 협의체도 구성됐다. 여기서 합리적인 수가가 결정되면 향후 원격진료에 대한 보험 기준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진찰료에 처방료를 더해 신설하거나 인정비급여 전화상담을 추가하거나, 신의료기술로 등록하는 것을 제안할 수 있다”며 “낮은 수가의 원격의료 시스템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수가 정책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놨다. 

이와 함께 원격진료를 받는 ‘환자 본인 확인’에 대해 그는 “원격진료에서 본인확인 절차가 그대로 대면진료에 연결된다면 향후 모든 환자가 인증 후에 진료를 보게 되는 과정이 생길 수 있다”며 “향후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수급자 본인 확인을 해야 하는데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며, 환자와 의료인이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원격진료와 의약품 비대면은 ‘같이’, 성분명 처방 위험 홍보 필요 

법 개정을 통해 원격진료를 허용한다면 의약품의 비대면 구매 역시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경희 외과전문연구원은 ‘의약품 비대면 구매’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약사법 위반이나 최근 코로나 사태 이후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의약품 비대면 수령이 한시적으로 허용됐는데,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다”며 “일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와 처방약 택배 배달 광고가 이상하게 퍼져있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광고하고 있는 만큼, 불법적인 처방과 잘못된 약 배달에 대해 사례를 수집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연구원은 의약품 비대면 구매가 ‘성분명 처방’ 허용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그는 “성분명처방은 의약분업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라며 “약사회가 유럽, 일본 등 국가에서 성분명 처방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일본은 대체조제가 금지돼 있고 유럽의 경우에도 성분명 처방은 권고일 뿐, 주로 상품명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분명 처방 허용의 위험이 의사들의 밥그릇 챙기기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의약품 비대면 구매가 편의성이 아닌 안전성이라는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또한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진료가 시행되면 진료장면이 녹화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 시설·장비 국가 지원 필요… 개인정보는 자율규제 형태로

김철 내과전문연구원은 시설 기준의 법제화에 대한 발표를 통해 “원격의료를 하려는 의료기관에 대한 시설과 장비에 관한 규정은 두고 있으나 원격의료를 원하는 환자에게 어떤 의료기기나 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며 “도서·벽지 거주자나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의 의료기기 작동 시 도움을 주는 보조인에 대한 자격 규정을 예정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격의료를 시행하기 위해선 원격진료실 관련 규정을 폐지하고 시설과 장비에 대한 규정도 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화된 기술적 기준과 표준을 마련해야 하며, 시설과 장비에 대한 인증제도가 함께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료인으로서는 의료기기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은 기기를 사용하면 충분하고, 별도의 원격진료 시설 기준을 의료법이나 그 하위 규정으로 둘 필요는 없다”며 “시설과 장비를 갖추는 예산은 국가와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서도 그는 "원격진료에서도 비밀번호를 설정하거나 호스트가 입장을 허용해야 입장이 가능토록 하는 방안을 도입해 개인정보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행동상의 안전장치들로 법제화를 하면 부작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의사협회 등의 단체에서 자율 수칙으로 준수하거나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인정하는 자율규제의 형태로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 원격진료는 ‘의원급’이 아닌 ‘모든 의사’ 가능토록 해야 

한편 원격의료 제도를 도입할 때 원격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의원급'으로 제한할 게 아니라 모든 의사가 가능하도록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세라 상임연구원은 '원격의료 관련 법률개정을 위한 노력'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국회에 발의된 원격의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의 경우 (원격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의원급으로 한정했는데, 모든 의사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며 "원격의료 대상도 재진과 만성질환자로 한정돼 있는데, 여기에 정신질환자와 경증 초진환자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격의료 제도 도입 시 책임소재에 대해서는 “환자가 의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장비의 결함이 있는 경우, 환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 등에 대해서는 의사의 책임을 명시적으로 감경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 상임연구원은 “미국이나 중국에서 원격의료가 시행될 수 있던 이유는 ‘수가’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수가 관련 정책이 형편없다”며 “우리나라도 몇 가지 부분을 개선하면 원격의료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인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원격의료에 필요한 시설이나 예산을 일부 또는 전액 지원해야 하며, 법령 규제 완화 및 플랫폼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며 "특히, 대면진료보다 진료비 총액과 본인부담금을 인상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발표 직후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이 상임연구원을 상대로 “'원격의료를 모든 의사에게 풀어야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고 질의했다. 현재 많은 의사들이 원격의료가 도입되더라도 ‘의원급’에서만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일 뿐만 아니라, 의원급에서 시작하더라도 병원급까지 확대될 것을 걱정하며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 상임연구원은 “비급여 진료비 공개가 병원급에서 시작해 의원급으로 내려온 것처럼, 원격의료 역시 의원급에서 시작하더라도 여론에 의해 언젠가는 대학병원까지 확대될 것이 자명하다”며 “의사 한 명당 환자수를 제한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원격의료 플랫폼을 한 업체에서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규석 상임연구원은 총평을 통해 이 상임연구원의 발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으로 연구회에서 의견을 통일한 것이 아닌 만큼, 회원들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서로 연구하고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