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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들의 아웅
보험회사들의 아웅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1.11.23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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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44)
전 성 훈변 호 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변 호 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보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발생 가능한 위험에 대해 공동대응하고 발생한 손실의 보전을 꾀하는 제도를 보험이라 이름한다면, 이러한 제도는 고대사회에서부터 존재했다.

최초의 보험으로는 4세기경 로마 말기에 싹튼 콜레기아(collegia, 현대 영어 college의 어원)를 들 수 있다. 콜레기아는 신앙.오락.상호부조를 위한 직역조합(職域組合)으로, 조합원의 사망 시 장례지원금 및 유족의 생활비를 지급했다.

콜레기아는 중세에 들어 규모가 커지고 배타성이 강화되면서 7세기경부터 길드(guild)로 진화했다. 많은 길드들이 경쟁적으로 발달하면서, 조합원이 사망한 경우뿐만 아니라 화재, 질병, 도난 등의 피해를 입었을 때에도 보상해 주는 것으로 점차 보호범위가 확대되었다.

천 년 동안 느리게 발전하던 보험은 세 가지 계기를 통해 근대적 의미의 보험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첫 번째 계기는 ‘대화재’이다. 1666년 9월 2일 새벽 2시경 런던 시내의 빵 공장에서 난 불은 무책임한 소방담당자 때문에 조기에 진화되지 못했다. 불은 삽시간에 번져 5일간 런던 시내 가옥의 80%를 태워버렸다. 이로 인해 당시 런던 인구 8만 명 중 7만여 명이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되었다. 그 이듬해인 1667년 치과의사인 니콜라스 바본이 최초의 화재보험회사를 설립했는데, 대화재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런던 시민들은 앞 다투어 보험에 가입했다. 이렇게 화재보험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계기는 ‘커피하우스’이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에서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로 항로가 개척되어 원거리 해상무역이 급증했다. 하지만 당시의 원거리 무역은, 폭풍우와 해적 같은 불가측 요소들로 인해, 엄청난 이익과 파산 위기 사이의 동전 던지기 같았다. 그래서 무역상들이나 선주들은 런던의 ‘로이드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자주 정보를 교환했고, 선원들 역시 같은 곳에서 바다 날씨, 만조 시간, 암초 위치, 해적 출몰 지역, 나라별 특산품, 선박의 출항.입항 시간 등 각종 무역거래에 관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커피하우스 주인 에드워드 로이드는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이러한 정보들을 종이쪽지에 적어 벽에 붙여 놓았다. 손님들의 반응이 좋자, 로이드는 1696년부터 ‘로이즈 리스트(Lloyd‘s List)’라는 정기 정보지를 발간해 정보를 제공했고, 이는 곧 무역상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이 되었다. 이렇게 로이즈 커피하우스는 무역업과 선박업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포털 사이트’가 되었고, 이후 재력과 신뢰를 갖춘 79명의 언더라이터들이 로이즈 협회(Society of Lloyd’s)를 결성했으며, 현재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런던 로이즈(Lloyd‘s of London)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세 번째 계기는 ‘수학’이다. 17세기 들어 파스칼의 확률론, 베르누이의 대수법칙 등 수학 이론이 급격히 발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18세기에 들어 근대적 형태의 ‘생명표’가 영국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핼리(‘핼리 혜성’의 그 핼리이다)에 의해 처음으로 작성되었다. 이 생명표에 근거하여 가입자의 나이에 따라 보험료를 달리하는 보험을 창안한 에퀴터블 생명보험회사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설립되었고, 이것이 근대적 생명보험의 시초가 되었다.

이와 같이 보험은 사회적 필요에 의해 그 영역을 넓혀 왔고, 근대적 의미의 보험이 완성된 이후 수백 년간 운영되고 있다. ‘위험의 공평타당한 분배’라는 보험의 기본이념에서 알 수 있듯이, 보험 자체는 이타적인 제도이다. 하지만 보험 제도의 구성원인 보험회사와 가입자는 이기적으로 행위하기 쉽고, 상품 설계와 판매 등을 통해 주도적으로 보험을 운영하는 보험회사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시장이 커지고 자본의 발언권이 세지면서, 제도의 기본이념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입자들의 수백 년간의 경험은, ‘보험회사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속언을 만들어 냈다.

최근 국회에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위 법안은 실손보험 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요양기관에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서류의 전송을 요청하면, 요양기관은 이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하되, 해당 업무를 심평원을 비롯한 전문중계기관에 위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보험회사들은 금융위원회를 앞세워 ‘이 법안은 보험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반드시 입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의협 등 보건의약 5단체는 공동성명을 내어 ‘위 법안은 보험가입자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깔고 있지만, 여러 위험성과 폐해가 심각하므로 절대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건의약 5단체는 반대의 구체적 이유로 ① 민간보험회사들은 개인의료정보를 축적해 보험금 지급거절, 갱신시 보험료 인상 자료로 사용할 것이 분명하고, ② 위 법안은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며, ③ 전송 의무 관련 비용에 대한 해결책도 규정되지 않았고, ④ 보건당국의 실손의료보험 상품 내용 및 보험료에 대한 규제가 더 실효성 있는 해결방안이라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첫째, 민간보험회사들이 비급여 관련 정보를 수집한다면 이를 이용하여 요양기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둘째, 심평원은 비급여 관련 정보에 대한 요구권이나 관리권이 없음에도, 위 법안대로라면 심평원에 대한 요양기관들의 비급여 관련 정보의 제출을 강제하는 것이 된다. 셋째,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민간보험회사의 업무를 돕기 위해 업무를 위탁받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무엇보다 ‘비급여를 건드려 요양기관들이 힘들어지면 환자들이 다른 형태로 간접적인 많은 부작용들을 받게 된다. 그러면 전체 의료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의 지적은 깊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보험회사가 실손의료보험 분야에서 상품 설계 실패로 손해를 보게 되자, 이를 벌충하기 위해 지방 소재 소규모 요양기관들을 상대로 일부러 청구액을 쪼개어 소송을 걸고 있는 행태를 보면, ‘보험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입법을 추진한다는 보험회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보험소비자들의 편의를 그토록 중시한다면, 보험회사 내에 청구업무 지원부서를 신설하여 무료로 보험계약자들을 도와주면 되지 않는가? 보험회사들의 ‘눈 가리고 아웅’은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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