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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제35대 상임진 칼럼] 보다 통합된 의사사회를 바라며 
[서울시의사회 제35대 상임진 칼럼] 보다 통합된 의사사회를 바라며 
  • 의사신문
  • 승인 2021.11.1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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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애 서울시의사회 학술이사(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올해 초 모교의 전 학장님으로부터 서울시의사회 학술이사로 추천하려고 하니, 적극적으로 생각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의대 졸업 이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 수련의를 하고, 충남대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내분비내과 전임의 과정을 밟은 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던 나는 나름 여러 병원의 다양한 시스템을 경험한 상황이었다. 

빅5 병원과 그 외의 종합병원, 종합병원과 개인의원, 그리고 서울과 지방 병원의 사정이 또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특히 지방 로컬 병원들의 어려운 사정들을 이해할 개인적 연고가 있어 한국 의료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나름 유난했던 나는 고민 끝에 서울시의사회 학술이사로 일하기로 하였다. 

국내 유수 대학병원의 따뜻한 보호 아래 교수직으로 있던 나로서는, 개업하신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신 서울시의사회 일을 통해 개업의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한국 의료시스템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움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사실 대학병원 안에 있다 보면 보직자가 아닌 이상 일개 교수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가장 신선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법한 젊은 교수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주어지는 많은 양의 진료와 학생/전공의 교육, 그리고 엄격해진 승진 시스템에서 나름 재계약을 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일만의 불안감을 가지고 논문과 발표에 치여 사는 것이 대다수의 젊은 교수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요즘 집안일은 오죽 많은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결코 육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의대 교수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당장의 교수로서 삶의 퀄러티를 좌지우지 하게 되는 전공의 관련 이슈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겠지만 그 외의 의료 환경에 대해서는 눈을 닫고 지내는 것이 사실상의 현실이다. 하지만 작년 전공의들의 주도로 진행된 의사 파업 사태 때, 몇몇 대학병원들 주도로 시의적절하고 재빠르게 발표되는 교수들의 지지 성명서와 함께 전공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병동환자 EKG를 직접 찍으면서, 대학 교수들도 의료계가 처한 암담한 상황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내가 속한 연배는 의약분업 사태를 겪으면서 교육과 수련을 포기하면서까지 투쟁했던 경험이 있었던 세대인지라 아마 전공의들의 주장에 보다 이심전심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닌지 모른다. 

다만 아쉬운 것은, 대다수의 의사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 의사들은 항상 직역의 차이(교수, 전공의, 봉직의, 개업의), 병원 규모의 차이(종합병원, 개인의원), 서울과 지방의 차이에 의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혹은 지도력의 부재로 단결된 목소리로 주장을 현명하게 관철시키는 전략이 부족하여, 결국에는 승리보다는 패배에 가까운 결과로 고배를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 바라보는 메이저 과의 몰락은 매우 심각하다. 나 자신도 지금의 척박한 환경에서라면 내가 내과 전공의를 20년 전처럼 선뜻 선택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워라벨을 내려놓고 상대적으로 적은 보수와 함께 의료분쟁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그 누가 의학의 꽃은 내과라는 학문적 관심과 내과 의사로서의 자긍심만으로 내과 전공을 선택하라고 후배들에게 권할 수 있겠는가. 

언론에서 메이저 과의 몰락에 대한 우려를 아무리 언급한들, 국민들에게는 부럽지만 깎아 내리고 싶은 가진자/기득권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한국 의사이기에, 의사들의 하소연은 국민들 그리고 정치가들 귓등에도 안 들린다. 의사들이 투철한 자정 작업을 거쳐 국민들의 신임을 얻기 전까지는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외국에 비해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탁월하다는 것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의사들의 노력과 희생에 의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상당수 국민이 이해하면서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의사에게 기득권층이니 더 내어놓으라고 한다. 그러니 ’저수가‘라는 이 모든 의료시스템 왜곡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전혀 해결이 되지 못하고 있고, 내외산소는 이미 몰락하였고, 앞으로의 수술할 의사 및 당직을 설 의사를 걱정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대의 정원이 차고 나서야 서울대 공대가 채워지는 현재의 대학 입시 지원 패턴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의사는 여전히 기득권층임을 우리 의사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의사도 힘들지만, 의사 외의 다른 직종은 더 힘든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개원한 동기들을 보면 정말 힘들게 살아간다. 대학병원 교수들이 힘들다고 하지만, 그들처럼 저녁 늦게까지 진료하고, 토요일 심지어 일요일까지 의무적으로 진료하지는 않는다. 많은 빚을 지고 언제 망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업가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지는 않는다. 너무나도 쉽게 이직하는 의료 보조 인력을 구하기 위해 작은 가게의 사장님 심정으로 구인/구직 사이트를 헤매고 다니지도 않는다. 

물론 대학 교수들은 논문을 쓰느라 밤을 새고 주말을 지새운다. 한 두 명의 연구원을 고용하여 연구실을 운영하다 보니 역시 내일이라도 연구원이 갑자기 그만두면 어떻게 하나, 다음 해에는 연구비가 끊기면 어떻게 하나 가슴 졸이기는 매 한 가지인 것 같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좋은 복지제도 아래 실업수당 받으면서 여행 다닌 후 다시 취직할거라며 1년만 채우면 떠나는 의료 보조 인력이나 연구원을 접하는 경우가 개원의나 교수나 매 한가지인 것 같기는 하다. 다만 교수는 개인 재산을 축내면서까지 연구실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니, 심적 부담이 개업의에 비길 바는 아닐 수도 있겠다. 

대학병원과 개업가의 현실이 크게 다르고 관심사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같은 방향이라는 것을 서울시의사회 일을 하면서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특히 아쉬운 것은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 단일화된 의견과 지속 가능한 정치적 전략을 제대로 도출하지 못하기에, 국민을 위해 의료 환경을 개선하고자 아무리 목소리를 내어도 번번이 여론몰이만 당하고 끝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의료 환경이 CPR이 꼭 필요한 이 시기에도, 자본주의 의료시스템의 극단인 미국과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의 극단인 영국 의료시스템 각각의 단점만 가져오는 방향으로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이 상황에도, 의사들은 일사 분란한 CPR을 결코 시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주어진 현실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겠지만 서울시의사회에서 일하는 나의 경험이 의사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통합하여 한국 의료 환경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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