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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와 이탈리아 논문
햄버거와 이탈리아 논문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1.11.09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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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142)
전성훈 변호사

사람들은 햄버거를 좋아한다. 고기와 빵과 다른 식재료가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는 이 음식은, 비록 건강에 좋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햄버거는 청바지와 함께 미국 문화의 상징이기에, 흔히들 미국이 만든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햄버거는 수천 년 전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으로부터 유래한 음식으로, ‘전투식량’이었다. 유목민족 전사들은 원정 시에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말고기를 많이 먹었는데, 말고기는 지방 함량이 적어 기본적으로 퍽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고기 덩어리를 말안장 밑에 넣어두었다. 그러면 말을 달릴 때 사람의 체중을 실은 안장이 일종의 절구 역할을 하여, 고기는 자연스럽게 짓이겨져서 부드러워졌다.

동유럽인들은 천 년 가까이 자신들을 침략해 온 수백 개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을 구분할 수 없었기에, 그들을 통칭 타르타르족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몽골의 대침략 이후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은 25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이 때 위와 같이 으깬 고기를 먹는 요리법이 유럽에 전파되었고, 이를 ‘타르타르 스테이크’라고 불렀다.

독일 함부르크의 상인들은 이 타르타르 스테이크를 구워서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 초 미국에 온 독일 이민자들이 이를 미국에서 팔기 시작하면서 ‘함부르크 스테이크(Hamburg steak)’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20세기 초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에서 샌드위치를 팔던 요리사가 너무 바쁜 나머지 샌드위치에 일반 스테이크가 아닌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넣었는데, 이것이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햄버거(Hamburger)의 탄생이다.

햄버거는 고기임에도 부드럽기 때문에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하지만 고기가 덜 익혀진 경우 이른바 햄버거병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용혈성 요독 증후군(hemolytic uremic syndrome, HUS)은 대장균 등의 감염을 원인으로 하므로 햄버거로 인해서만 발병되는 것이 아니지만, 2000년경 미국에서 위 증상이 집단발생했는데 햄버거 패티가 원인으로 밝혀진 사건이 있은 후로 흔히들 햄버거병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HUS 중에는 비정형 용혈성 요독 증후군(aHUS)이 있는데, 이는 보통 설사 증상이 없고 약물이나 다른 질환에 의하여 주로 발병하며 예후가 훨씬 좋지 않은 특징을 가진다. 희귀질환으로서 치료가 어렵고, 게다가 이 증상의 치료에 사용되는 전문의약품은 1년 투약분이 5억 원을 넘어 과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 중 하나로 말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aHUS는 예후가 좋지 않고 치료가 어렵지만, 의사들이 치료방법을 연구한 결과 현재에는 환자 혈액 내의 문제되는 혈장을 성분채집기를 이용해 분리하고 제거한 뒤 제거한 혈장의 양만큼 신선동결혈장이나 알부민을 보충하는 시술인 ‘혈장교환술’이 표준치료법으로 자리잡았다.

보건복지부는 aHUS 관련 혈장교환술에 관한 급여기준을 2020년에야 고시했다. 그래서 위 고시 이전에는 이것이 급여대상인지 기준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 고시 이전에 의료기관이 시행했던 aHUS 관련 혈장교환술을 심평원이 불인정한 처분에 대해, 최근 법원은 이를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S대학병원은 2015년 9월부터 11월까지 혈전성 미세혈관병증(TMA)으로 입원한 환자 A에게 총 30회에 걸쳐 혈장교환술을 시행하고 급여비용에 대한 심사를 심평원에 청구했다.

그런데 심평원은 ① S대학병원 의료진이 약 3주간 15회에 걸쳐 혈장교환술을 실시했음에도 환자는 호전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② 위 기간 동안 ADAMTS-13 활성도 검사 결과가 18%로 확인돼 혈전성 혈소판감소성 자반증(TTP)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퇴원 시까지 계속해서 혈장교환술(나머지 15회)을 실시해 요양급여 인정기준을 어겼다면서, 요양급여비용 약 1986만 원을 감액조정처분했다. 그러면서 심평원은 ‘해외 연구 결과 등에 따르면 위 검사 결과 수치가 10% 미만일 때에는 혈장교환술을 지속할 수 있지만, 수치가 10% 초과일 때에는 혈장교환술 이외의 다른 치료법을 고려하라고 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S대학병원은 ‘환자에 대해 적절히 진단하고, 위 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 aHUS에 맞는 표준치료법인 혈장교환술을 실시했던 것이며, 실제로도 지속적인 혈장교환술을 통해 환자의 상태가 호전됐으므로, 요양급여 인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의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S대학병원은 2017년 심평원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4년간의 심리 끝에 심평원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그 주된 이유는 ① 관련 학회는 당시 임상의학 수준과 제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병원 의료진의 판단 및 치료과정이 적절하다고 보았으며, ② 심평원 내부기준의 내용은 2010년 이탈리아 신장내과 의사들이 기고한 논문에서 발췌한 것인데 이는 저자들이 정의한 것에 불과하며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고, ③ 보건복지부 고시에도 없는 내용을 심평원 내부기준을 적용해 요양급여비용을 감액조정처분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심평의학의 위험성과 부당성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돈이 많이 드니 치료 그만하라’는 말은, 개인이 하면 매정한 것이지만 국가가 하면 헌법에 반하는 것이다. 희귀난치성 질환을 가진 환자일수록 의사는 적극적인 치료방법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데, 학문적 근거가 미약한 심평의학을 들어 이러한 의사의 시도를 제한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국가가 이에 관한 기준조차 고시하지 않았다면 치료방법 선택에 있어서 의사의 재량권은 더 폭넓게 존중되어야 한다. 아울러 ‘2010년 이탈리아 논문’을 요양급여 불인정의 한 근거로 삼은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S대학병원은 2,000만 원도 안 되는 요양급여를 받기 위해 (아마 이것보다 더 많은) 변호사비용을 지출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대한 국가의 간섭은, 근거가 명확할 경우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법원의 상식적인 판단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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