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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제35대 상임진 칼럼] 슬기로운 의사생활
[서울시의사회 제35대 상임진 칼럼] 슬기로운 의사생활
  • 의사신문
  • 승인 2021.11.0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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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중 서울시의사회 학술이사(한양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의사의 의료행위는 과연 외운 구구단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단순 명료할까? 환자라는 하나의 질문에는 최소한 연필 한 다스 정도의 문제풀이 과정이 있어서 단 하나의 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란 숨을 쉬는 생명체로서 같은 병명을 가졌어도 인체구조, 살아온 궤적, 앓아온 병들이 서로 달라 항상 새롭고 독자적인 존재이다. 몇 달 전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선수들이 흘렸을 땀과 눈물을 떠올렸다. 

하나의 목표 달성을 위해 끊임없는 자기연마를 해왔을 터이지만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 그렇게 기대를 모았던 선수들이 까닭모를 이유로 어이없는 실수를 한 후 메달을 따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엄청난 야유를 받는 것을 본다. 

의사의 진료행위 역시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의사는 신이 아니고 신이 될 수도 없거니와, 나는 다만 수술하는 순간만이라도 나의 온전한 역량을 쏟을 수 있도록 그 분이 함께 하시길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란 어떤 존재인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대강 유추해볼 수 있다. 타협 가능한 관용(똘레랑스)의 범주 안에 그려진 캐릭터는 그래서 그 사회가 해당 직업군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짐작케 한다. ‘신세계, 2012’에서 조직 내 반대파에 의해 심야에 교통사고를 당한 석동출 회장은 밤샘수술을 받았으나 사망하게 된다. 수술실 앞에 대기하던 건장한 체구의 수많은 정장차림의 남성들 앞에서 사망선고를 하는 집도의사의 멱살을 잡고 조직의 넘버 3는 이렇게 말한다. “비싼 돈 받아 x먹었으면 죽은 사람도 살려내야 할 거 아냐. 여기 책임자 나오라 그래” 섬뜩하지만 기시감이 드는 상황이다. 

히포크라테스와 허준으로 대변되는 가부장적인 의술 행위는 지금은 다양한 법적 계약으로 무장된 상호존중의 상거래 형태로 치환되었다. 의사와 환자의 진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이지만 이와 더불어 직접 눈을 맞추고 공감하는 전인적 접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A.I.는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다. 

‘우아한 세계, 2007’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는 송강호는 진료 내내 얼굴 한번 쳐다보지 않고 모니터만 보면서 뇌까리는 의사의 말들이 황당하다.“강인구 씨죠? 41세고. 술 좋아하시죠? 식사도 제때 못 드시고요…. 당뇨 오셨네요. 혈압도 안 좋고, 일단 2주 정도 약 처방 해드릴게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달라는 환자의 요청에 의사는 밖으로 나가면 간호사가 설명을 할 거라고 하자 당뇨가 감기냐고, 내가 의사진료를 보러왔지 간호사 진료를 보러왔냐고 화를 낸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진료 현장에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는 끊이지 않고 있다. 

40대 초반이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돌싱인 99학번 의대동기 외과계열 교수 5명(각자의 자리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인정받는 엘리트들이다)이 주인공인 대학병원을 다룬 드라마가 있다. 노조나 직군 간의 갈등도 없고, 직장내 폭언, 폭력, 태움 문화도 없으며, 의료사고로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보호자들도 없다. 병원은 또 얼마나 쾌적하고 현대적인지, 병원 경영진은 얼마나 협조적인지, 환자분들은 얼마나 매너가 좋은지. 이런 병원이 혹시 있다면 정말 좋겠다. 비현실적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지만 경청해야 할 부분은 있다. 

의사가 환자, 보호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지난한 진료과정이 원활해진다. 빈틈은 없는지, 놓친 부분은 없는지 끊임없이 뒤돌아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의 엄마에게 무심결에 말을 던진 전공의에게 소아외과 안정원 교수의 “의사가 환자에게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 하나밖에 없어요”라는 한 마디는 완벽해야만 하는 의사의 직업적 윤리를 그야말로 완벽하게 대변하고 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아빠는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다른 환자를 위해 생전 희망대로 장기를 적출할 예정이다. 간적출을 앞둔 이익준 교수는 수술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딱 10분만 있다가 시작해요. 아이가 매년 어린이날마다 돌아가신 아빠 때문에 울면서 보낼 수는 없잖아요” 어렵겠지만 드라마를 따라 하려는 이유이다. 

교수와 환자, 보호자, 원내 직원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놀라운 인내와 성실함으로 근 4년을 버티고 내년 초 전문의 시험을 볼 예정인 신경외과 4년차 전공의가 쓰러졌다. 대동맥박리 진단으로 응급수술을 받고 회복중인데 막상 병상에 누워있는 이 친구에게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강요하지는 못하겠다. ‘슬기롭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잘 판단하고 해결해내는 능력이 있다”이다. 따라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사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만 하여, 어떤 죄목(?)이든 범죄자가 되지 말고, 의사면허번호를 살인면허 007과 혼동하지 말 것이며, 많이 받았으니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암묵적 행위규범(code of conduct)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에 어찌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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