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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뱉기에 대한 대법원의 평가
침뱉기에 대한 대법원의 평가
  • 의사신문
  • 승인 2021.11.0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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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의 법률 이야기(141)
전성훈 변호사
전성훈 변호사

‘고바우 영감’, ‘장도리’, ‘고인돌’을 안다면, 당신은 40대 이상일 것이다. 종이신문이 주된 매체이던 시절, 서민의 애환과 정치 풍자를 담은 이런 신문 만화들은 오랫동안 많은 인기를 누렸다. 참고로 신문 만화의 대표격인 ‘고바우 영감’은, 김성환 화백이 18세였던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간 연재되었고, 이는 세계 최장 기간 연재 4컷 시사만화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김성환 화백은 문화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받기도 했다.
  
이렇게 신문 만화가 워낙 두터운 사랑을 받았기에, 외국의 신문 만화를 번역하여 연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중 ‘사랑이란...(Love is...)’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외국 만화가 있었다. 뉴질랜드 여성작가가 그린 이 한 컷 만화는, 사랑에 대한 작가 나름의 간명한 정의를 코믹하게 그려냈기에, 이 역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만화 중 이런 것이 있었다. ‘사랑이란... 칫솔을 같이 쓰는 것.’
  
타인의 침이 묻은 물건을 입에 넣는다는 점에서, 위생에 민감한 사람이나 모태솔로는 ‘아무리 서로 좋아해도, 그건 좀 그런데.’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전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조금만 살펴보면, 여전히 많은 부부와 연인들이 한 그릇의 음식을 수저를 섞어가며 아무렇지 않게 나눠 먹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칫솔을 같이 쓰는 것보다 진한 키스를 하는 것이 위생상 더 문제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멋쩍은 웃음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남녀 사이를 제외하고는, 타인과 침이 섞이는 것은 누구나 꺼리는 행위이다. 그리고 침을 뱉는 행위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타인을 모멸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침을 뱉는 행위가 감정적 문제를 넘어서서 형사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판례가 최근 ‘대법원’에서 나왔다. 심지어 ‘변호사’를 전과자로 만들면서 말이다.
  
변호사 A와 아내 B는 47세 동갑내기 부부였다. A와 B는 집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B는 계속 전화 통화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화가 난 A는 B에게 ‘야 미친X아, 밥 처먹으면서 전화 통화하냐?’라고 했다. 욕을 먹은 B가 화를 내면서 A와 B는 다투게 되었다. 다투다가 A는 B 앞에 놓여 있는 반찬과 찌개 등에 침을 뱉었다. B가 ‘더럽게 침을 뱉냐!’라고 화를 내자, A는 ‘왜, 더럽냐?’라고 하면서 ‘퉤, 퉤, 퉤’하고 계속 침을 뱉었다. 화가 난 것을 넘어서 뚜껑이 열린 B는, 변호사의 아내답게, 남편을 고소했다.
  형법은 ‘타인의 재물을 손괴, 은닉,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는 A의 행위를 ‘기타 방법으로 재물의 효용을 해친 행위’로 보아 재물손괴죄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A는 ‘① 아내 앞에 놓인 반찬과 찌개 등은 아내 소유가 아니다. 또한 ② 같이 찌개를 떠먹는 부부 사이에서 음식에 침이 들어갔다고 하여 음식을 못 먹는 것은 아니므로, 음식의 효용을 해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다.
  
제1심 법원은 ‘① 아내가 준비하여 아내가 먹고 있던 음식은 아내 소유의 재물로 보아야 한다. 또한 ② 음식에 타인의 침이 섞인 것을 의식한 이상 그 음식의 효용은 손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이유로 A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A는 항소했고, 항소심 법원은 ‘① 부부가 함께 먹던 음식은 부부의 공동 소유 재물로 보아야 하지만, 공동 소유 재물을 손괴해도 손괴죄는 성립할 수 있으므로 결론은 같다’고 판단하면서 항소를 기각했다. A는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라고 하면서 상고를 기각하고 A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한 판결을 확정했다.
  
부부가 같이 밥을 먹는데 계속 전화 통화를 하면서 밥을 먹는 것은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같이 먹는 반찬과 찌개 등에 침을 뱉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혼을 결심하지 않은 다음에야 남편을 고소하는 것 역시 이해가 가지 않기로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부부 사이의 ‘침’을 둘러싼,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사건은, 변호사 남편을 전과자로 만들면서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 사건에서 적용된 법리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침뱉기’와 관련하여 기존의 판례들에 따르면 ① 타인의 얼굴이나 몸에 침을 뱉으면 ‘폭행죄’가 성립할 수 있고, ② 공공연하게(즉 제3자가 있는데) 타인에게 침을 뱉으면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으며, ③ 이 사건처럼 음식에 침을 뱉거나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처럼 직장동료 소유의 텀블러에 체액을 넣으면 ‘손괴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면 아내로부터 고소당해 전과자가 된 변호사 A의 변호사자격에는 영향이 있을까? 변호사법 상 변호사가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으면 5년, 집행유예를 받으면 2년, 선고유예를 받으면 그 유예기간 동안 변호사결격이 되어 등록이 취소된다. A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니, 일단 변호사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직무의 내외를 막론하고 변호사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 변호사징계위원회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변호사법 상 징계절차를 개시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수임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 등이고, 수임 사건과 무관한 경우에는 변협회장, 지검장, 공수처장이다. 즉 현실적으로는 변협회장이 징계개시를 청구하지 않는 한 A가 징계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반면 A와 B의 서로에 대한 태도를 볼 때, 그들이 곧 이혼법정에 출석할 가능성은 낮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식탁에서 찌개를 함께 떠먹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부부와 연인들이여. 너무 침이 많이 묻은 수저를 찌개에 넣을 때에는 상대방의 눈치를 살짝 살펴야 할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심기가 불편하다면, 자칫 고소를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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