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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침공’의 교훈
‘한국의 침공’의 교훈
  • 전성훈
  • 승인 2021.10.19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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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39)
전성훈 변호사
전성훈 변호사

잘 생긴 남자를 비유하는 표현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조각’, ‘존잘’ 정도일까. 하지만 못 생긴 남자를 비유하는 표현은 굉장히 다양한데, 그 중 ‘오징어’가 있다. ‘장동건과 함께 사진 찍었더니 오징어 됐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왜 오징어일까? 어떤 성형외과 전문의는 ‘평면적인 얼굴은 못 생겨 보이는데, 이를 납작한 오징어에 비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어떤 생물학자는 ‘오징어는 무척-추한 동물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오징어는 부정적 비유에 쓰이지만, 여기에 ‘게임’이 붙으면 얘기가 다르다. 최근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시리즈물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진출한 94개국 모두에서 1위를 차지했고, 전체 계정의 절반 이상인 1억 3,000만 개의 계정이 시청했다. 편당 겨우 20여억 원, 총 253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지만 1조 원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였다.
  
중국에 수천 개의 ‘달고나’ 노점이 생기고 이를 사먹기 위해 긴 줄을 서거나, 할로윈 코스튬으로 촌스러운 ‘츄리닝’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등 ‘오징어 게임’은 흥행을 넘어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그 이유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공감’,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지적’ 등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60년대 영국 밴드 비틀즈의 미국에서의 선풍적인 인기를 ‘영국의 침공(The British Invasion)’이라고 불렀던 것에 빗대어,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연이은 한국 대중문화작품의 흥행을 ‘한국의 침공(The Korean Invasion)’이라고까지 비유하고 있다.
  
이승만과 김구는 상이한 정치적 행보 때문에 자주 비교대상이 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김구의 완승이다. 문화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이승만과 달리, 김구는 우리나라가 ‘문화국가’가 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백범일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유함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무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가슴 한복판에 총을 맞아 의사도 포기했지만 타고난 생명력으로 되살아난 무골(武骨)이, 수십 년간 무장투쟁을 이끌어온 독립운동가가 ‘높은 문화의 힘을 한없이 가지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이 약간 어색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힘겨운 생존 속에서도 틈만 나면 노래하고 춤추고 놀이를 즐기던 우리의 ‘흥’을, 그리고 수천 년간 이어온 우리의 높은 문화적 자긍심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해방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그는 우리가 향후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어떤 외국 전문가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한 나라의 문화적 성장은 단순히 소수의 영감을 가진 창작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 그리고 문화산업을 확대하기 위한 정부의 장기간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과거 세계 최빈국에서, 우리는 이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흥’과 문화적 자긍심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목표 하에 정부는 꾸준히 문화산업을 육성·지원해 왔다. 영국 BBC 역시 ‘K컨텐츠는 하루아침에 운 좋게 만들어진 것들이 아니라 90년대부터 수십 년간 쌓여온 한국 대중문화의 저력이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 문화산업 정책의 기조를 요약하면 이와 같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른바 IMF 사태의 한복판이었음에도 1999년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을 제정하여 문화산업 육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 ‘세계문화산업 강국을 목표로 한 3대 정책목표, 12개 세부목표’를 설정하여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지원했다. 그러던 중 권력 핵심부의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는 해프닝이 발생했지만, 정부의 ‘지원과 불간섭’이라는 기조는 전반적으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20년간 지속된 정부 정책이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이라는 성공적 결과의 모태가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외산소’로 대표되는 필수의료과들이 오래 전부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수의료과 전공의 지원율 감소, 필수의료과 의료기관의 경영난, 분야를 불문한 심각한 인력난 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에 협회는 ‘필수의료 살리기 TF’를 구성하여 일단 응급·심뇌혈관·중환자·고위험산모 등 진료과 중심의 필수의료에 관한 정책 개선에 나서고 있다.
  
정부 역시 협회의 적극적 요청에 따라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 필수의료과 협의체 구성·운영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협회를 방문한 여당 대표 역시 ‘필수의료를 살릴 대책을 마련하겠으며, 이를 위해 의협을 파트너로 하여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특히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의 필수의료과 협의체 구성은, 수술실 CCTV 의무화법의 부작용을 고려한 수습조치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부와 여당의 이러한 전향적 태도는 당연히 반갑다. 하지만 구체적 정책 마련에 있어서는 첫째 필수의료과들의 공공적 성격, 즉 비용적 효율성은 후순위 고려대상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하고, 둘째 격오지 등의 필수의료 유지를 위해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지원과 불간섭’ 원칙이 반드시 지켜질 필요가 있다. 재정 지원을 이유로 필수의료과들의 경영, 인력 모집이나 배치, 지역 배분 등에 정부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 전문성이 높은 분야일수록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외과가 교육의 질 저하 우려를 무릅쓰고 전공의 수련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음에도 여전히 모집정원에 미달인 것은, 필수의료 위기의 원인이 단순하지 않음을 방증한다. 설령 필수의료 지원 정책이 상당기간 ‘돈 먹는 하마’처럼 보일지라도, 정부는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려고 하지 않아야 하고, 나아가 의료계의 전문적 판단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의료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필수의료가, 그 특성상 ‘오징어 게임’ 같은 대박이 날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징어’가 되어버리는 것은 막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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