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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법과 근로기준법의 교훈
공장법과 근로기준법의 교훈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1.10.0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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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37)

‘아동 노동(child labour)’이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없어지지 않았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이른바 선진국들에서는 대부분 없어졌지만, 중·후진국들에서는 아직도 만연하다. 2016년 기준으로 무려 1억 5,200만 명의 아동이 노동에 종사하고 있고, 이 중 절반 가량은 생명과 건강에 위협을 받는 노동 환경에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선진국들이 아동 노동 문제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동 노동은 이른바 선진국들이 더 많은 이윤을 짜내기 위해 ‘창안’해낸 것이고, 이것이 그들의 식민지였던 중·후진국들에 ‘전수’된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초기에 자본은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현재에도 그렇듯이 자본은 언제나 창의적이다. 그래서 아무런 규제가 없던 자본은, 수천 년간 보조적 노동력이었던 아동들을, 어른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비용에 착안하여 새로운 노동주체로 노동시장에 끌어들였다. 이렇게 본격화된 아동 노동은 얼마지 않아 유럽 각국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을 보자. 18세기 영국에서는 수많은 아동들이 구빈원(고아원)들에 의해, 가난에 허덕이던 그 부모들에 의해 공장 등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구빈원 출신 아이들이 더 선호되었는데, 영양 상태가 안 좋았기에 체구가 작아 더 쓸모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동의 노동시간은 어른과 똑같이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이었으며, 휴일은 당연히 없었다. 체구가 작으므로 어른이 하기 어려운 업무, 즉 비좁은 갱도에서 석탄을 캐거나, 굴뚝을 청소하거나, 방직기계에 들어가 기름칠을 하는 것 같은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탄광의 고용 허용 연령은 4세, 모직공장은 6세, 면직공장은 8세였다. 아동 노동은 업종을 불문하고 만연했다. 1830년대 영국 전체 노동자들 중 아동 노동자 비율은 업종별로 22~46%였는데, 이것도 30년간 많이 개선된 결과였다.
  
19세기 들어 아동 노동을 막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계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노동자들의 표가 필요했던 정치권은 ‘공장법’ 제정을 시초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입법을 계속했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에야 비로소 아동 노동이 법적으로 완전히 금지되었고, 1일 8시간 노동제가 정착되었다. 그리고 ‘공장법’은 확대되어 ‘노동법’을 낳았다. 이렇게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100년 이상이 걸렸다.
  
우리는 ‘노동법’의 주요 내용을 받아들여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했다. 오랜 투쟁의 소중한 결과물을 받아들인 우리의 근로기준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노동 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과거의 찬사와는 달리, 현재의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 변화를 외면하고 있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플랫폼 기반 노동자가 급속히 확대되고, 노동시간과 노동장소의 경계가 해체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근로기준법이 교과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블루 칼라’ 즉 제조업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0%도 되지 않는다. 기존 노동조합들은 자신들의 이익 방어에 급급하고,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존 상급노동단체들은 고용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하는 51%의 노동자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둘째 30년 전의 시각에 기초하고 있다. 노동 문제의 중심은 이제 ‘인권’에서 ‘시장’으로 넘어갔음에도 말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보면, 30년간 제도가 운영되어 현재는 최저임금이 노동자 중위임금의 55%에 이르렀고, 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또한 얼마 전 여러 대기업의 신입사원들이 이익 분배에 관해 회사측에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사건들에서도 보듯이, 이제 대다수 노동자들의 관심은 부당한 침해 방지보다 부당한 보수 개선으로 넘어갔다.
  
명백한 문제점을 지적하여 오랜 시간 싸워 얻은 소중한 결과물인 입법조차, 상식적 법 적용을 위한 조율과 변화를 거부한다면 얼마지 않아 현실에 맞지 않는 것으로 퇴락한다. 때문에 불행히도 21세기의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19세기의 ‘공장법’에 머물러 있다.
  
최근 정부는 의료기관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의료계는 ‘이미 환자안전법에 환자 등 병원 이용자에 대한 안전확보조치를 규정하고 있어 충분히 규율할 수 있고,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적용하면 과도한 이중규제가 될 것이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공중이용시설에서 의료기관을 제외해 달라는 의견을 제출했지만,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산업재해 발생률과 사망률에서 우리나라가 OECD 최상위권이라는 부끄러운 현실까지 가지 않더라도, 산업재해 근절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의료기관과 산업현장에 똑같이 법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비상식적인 법 적용이다. 무엇보다 입법으로 줄이고자 하는 ‘중대재해’가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사례가 얼마나 있었는가? 게다가 거친 개념의 ‘산업재해’보다 훨씬 섬세하게 ‘환자안전’을 규율하고 있는 기존 법이 있다. 법적용에 예외를 두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지만, 의료기관은 기존 법으로 엄격한 규율을 받고 있으므로 예외를 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의료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예외를 둘 충분한 이유가 있다.
  
200년 전 영국의 ‘공장법’과, 70년 전의 우리의 ‘근로기준법’과, 현재의 우리의 ‘근로기준법’에 대한 시대적 평가는 모두 다르다. 어떤 것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다. 의료기관을 산업현장과 똑같이 보는 것이 과연 시대적 요구인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비상식적이고 획일적인 법 적용은, 의료기관의 부담을 가중시켜 결과적으로 국민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규제는 한 번 도입되면 변경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을 정부가 다시 한번 숙고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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