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사회 제35대 상임진 칼럼] 의사는 무엇으로 사는가?(feat. 수술실 CCTV)
[서울시의사회 제35대 상임진 칼럼] 의사는 무엇으로 사는가?(feat. 수술실 CCTV)
  • 의사신문
  • 승인 2021.10.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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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연 서울시의사회 부회장(날개병원 원장)
            이태연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필자가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지 올해로 정확히 20년이 되었다.

20년간의 외과의사 생활 중에서, 지금처럼 우울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2001년 3월, 전문의 자격을 따자마자, 선배가 경영하는 병원에서 정형외과 과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진료를 시작하였다. 정형외과 근무 특성상, 외래와 수술실과 응급실을 오가며, 대학병원 수련 때와 다름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근무하던 병원 주위로 가구(家具) 공단과 건설 현장이 많았던 탓에, 손가락 절단 환자를 비롯한 골절, 창상 등 외상(外傷) 환자가 많아서, 하루 일상의 대부분은 응급실과 수술실을 오가며 살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오후에 퇴근할 때쯤 몰려오는 외상 환자들 덕에, 당직인 날은 수술실에서 밤을 새기 일쑤였다.
밤새 수술실에서 수지(手指) 접합 수술을 비롯한 외상 환자 수술을 하다 보면 그런 환자들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외상 환자들은 수술 후에 완쾌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확연했기에 환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날들을 보냈다. 그 때는 그 환자들이 나에게 수술을 받고 치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내가 그들에게 베푸는 것이라 생각 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오히려 그들이 나에게 참으로 고마운 인연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내 삶의 활력과 의사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주었던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일주일의 반을 수술실에서 지내는 정형외과 의사로서, 나에게 진료를 받고, 수술을 결정하고 수술실에서 만나는 환자분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있어,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없이는 마취 하에서 이른바, 완전 무장 해제된 상태의 자신의 몸을 맡길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몇 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몸소 경험했던 터라, 환자로서의 그 신뢰의 감정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신뢰의 공간에 감시용 CCTV라는 것이 설치된다고 한다. 외과 의사라면 누구나 같은 감정이겠지만, 외과 의사에게 있어 수술실이라는 공간은 우리의 작업공간이자 하루의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며, 그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오로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완성해 나가는 명상(冥想)의 공간과도 같은 곳이다. 오직 나에게 그런 작업을 허락한 환자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신뢰의 공간인 것이다.

이제 이미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통과된 마당에 그저 받아들이고, 2년 유예기간 동안에 유리한 시행령을 만들어 내자는 의료계의 대책도 나와 있지만, 나는 아직도 감시용 CCTV를 머리 위에 달고서 어떻게 수술을 할 것인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이 문제는 외과 의사로서의 ‘자존심’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그 환자로부터 신뢰를 이끌어내고, 환자는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게 됨으로써 수술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비로소 만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공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과 그에 대한 결과는 외과 의사의 자존심을 건, 온전히 외과 의사의 몫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전무후무한 ‘수술실 CCTV’라는 사건이 벌어진 데에는, 여러 의료 외적(外的)인 이유들도 있겠지만, 우리 의사들에 대한 환자들의 불신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에 대해, 먼저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뼈를 깎는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먼저 초심으로 돌아가, 환자와의 신뢰를 다시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년 전, 당직실에서 호출 받고 들어선 수술실에서, 두렵지만 신뢰의 감정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누워있는 환자의 손을 잡고, 나의 모든 최선을 다해 당신을 치유하겠다는 확신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잠들어 가는 환자를 위해, 떨리는 나의 심장박동을 느끼며 집도(執刀)하던 그 순간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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