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독감백신을 ‘무료’ 아닌 ‘유료’용으로만 쓰라고?
똑같은 독감백신을 ‘무료’ 아닌 ‘유료’용으로만 쓰라고?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1.09.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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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도매상 ‘환급거부’에 대개협,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검토 중···업체명단도 공유
정부는 “시장 개입 어렵다”···의료계 “NIP는 정부가 책임져야, 내년부턴 직접 공급하라”
모 제약도매상이 개원의들에게 발송한 독감백신의 NIP 환급과 반품이 불가하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사진 左)와 홈페이지 공지 내용(사진 右)
모 제약도매상이 개원의들에게 발송한 독감백신의 NIP 환급과 반품이 불가하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사진 左)와 홈페이지 공지 내용(사진 右)

독감백신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시행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도 백신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개원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다.

작년과 같은 물량부족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올해엔 공급 물량을 늘렸는데도 품귀현상이 계속되는 것은 무엇보다 제약사와 도매상이 똑같은 백신을 공급하면서도 국가예방접종에 따른 무료접종용보다 단가가 높은 유료접종용으로만 물량을 공급하려 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백신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고 그나마도 반품이 안 되는 조건을 내거는 등 제약사와 도매상들의 병·의원들에 대한 ‘갑질’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개원의협의회는 백신 제조사와 백신을 공급하는 도매상들의 현황을 회원들에게 공유하기로 했다. 또 한편으론, 제약사와 도매상의 행태에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 여부를 살펴보고 문제가 있을 시 법적 고발 조치까지 검토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총 2800만 명분의 올해 독감백신의 국가출하승인을 오는 10월 말까지 모두 완료하기로 하고 우선 87만 8000명분을 지난달 초에 승인했다. 접종 일정도 정해져 오는 9월 14일부터 어린이와 임신부를 시작으로, 10월 12일에는 1차 접종 대상 어린이와 만 75세 이상 노인, 10월 18일부터 만 70∼74세 노인, 10월 21일부터 만 65∼69세 노인 순으로 무료접종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독감 백신을 제조.공급하는 일부 제약회사들과 도매상들이 물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민간 병·의원들에게 지나친 ‘갑질’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개원가에 따르면 독감백신 제조사나 도매상들이 가격을 담합해 비싼 가격을 부르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고 그나마도 반품이 되지 않는 조건을 내걸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제약사들은 병·의원이 자사의 다른 의약품을 얼마나 처방하느냐에 따라 독감백신 물량을 더 할당하는 ‘끼워팔기’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NIP(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 물량까지 제약사나 도매상의 영업실적 올리기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 현재 많은 도매상들은 백신을 공급하면서도 NIP 환급대상은 취급하지 않는다면서 환급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무료접종 대상 중 65세 이상 노인 대상 백신은 보건소가 직접 병·의원에 직접 공급하고 있고, 영·유아와 임신부 대상 백신은 병·의원들이 직접 선구매해 접종한 후 추후 질병관리청과 제약사로부터 환급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도매상들이 NIP 환급을 거부한다는 것은 병·의원들에게 똑같은 백신을 단가가 낮은 무료접종 대신 더 단가가 높은 유료접종용으로만 쓰라고 강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는 결국 ‘국민’이 당하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와 맞물려 독감이 함께 유행하는 ‘트윈데믹’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국가예방접종을 제대로 받지 못할 위기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보건당국은 독감예방접종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상황이 이런데도 마땅한 해결 대책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영·유아와 임신부 무료접종용 백신은 노인용 백신처럼 백신 공급을 정부에서 책임지고 전량으로 하는 게 아니라 병·의원들이 개별적으로 구입하면서 단계적으로 공급을 확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정부가 함부로 시장에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개원의협의회는 대책 마련에 나서 우선 독감백신 제조사와 공급 도매상 명단을 회원들에게 공유하기로 했다. 또 제약사와 도매상들의 행태에 문제가 있을 시 법적 고발 조치까지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장현재 대개협 총무부회장은 “식약처에서 출하승인이 분명히 됐는데도 적절한 수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질병관리청으로부터 모든 독감백신 제조사와 취급 도매상 명단을 넘겨받았고 조만간 이를 회원들에게 공유할 예정”이라면서 “유료접종용 백신이야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공급된다고 해도 NIP용 백신만큼은 수급이 불안정하지 않도록 정부에서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장 부회장은 또 “무료접종용 백신은 취급하지 않는다면서 백신 가격을 높게 부르고 그나마 반품불가 조건까지 내거는 제약사와 도매상들의 행태에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여부를 검토 중이며 만약 문제가 있을 경우 법적 고발 조치를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면서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독감백신 수급 불안정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데 앞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차라리 내년부터는 영·유아와 임신부 무료접종용 백신도 노인용 백신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직접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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