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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신문 사설(社說)] 수술실 CCTV 설치, 의료진과 환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의사신문 사설(社說)] 수술실 CCTV 설치, 의료진과 환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 의사신문
  • 승인 2021.09.0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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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신문 사설(社說)]


        수술실 CCTV 설치, 의료진과 환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2021년 8월 31일,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수술실 안에 외부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CCTV를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환자나 보호자 요청이 있으면 수술 과정을 녹음 없이 촬영해야 한다.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동의를 받는 경우 녹음도 가능하다. 수사 또는 재판 관련 공공기관 요청이나 환자와 의료인 쌍방의 동의가 있으면 열람도 할 수 있다. 의료기관장은 CCTV로 촬영한 영상 정보가 분실, 도난되지 않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촬영 영상 정보는 30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 촬영 정보를 유출하거나 훼손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도록 하는 처벌 규정도 마련했다.
 
본 법안은 태어나자마자 위헌 소지에 시달리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의료진과 환자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환자나 보호자의 요청만으로 모든 수술과정이 촬영된다면 의료진의 직업 수행의 자유는 지키기 힘들다. 해외 각국의 경우 직업수행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수술실뿐 아니라 모든 작업장에서 노동조합의 동의나 협의 없이 CCTV를 설치할 수 없게 되어있다.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하에 촬영하는 것이므로 기본권 침해 소지가 없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국가권력이 강제적으로 작업장 내 CCTV의 설치, 운용을 통하여 개인의 이미지를 촬영하고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행위의 본질은 국가권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행위이다. 의료진 또한 국민으로서 기본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강제 설치된 CCTV에 의한 자신의 개인정보의 수집을 두려워하여 그러한 장소에의 접근을 포기하는 경우, 바로 기본권 침해의 문제가 발생한다.

세계의사회(WMA)가 이러한 수술실 CCTV 설치의 부당함을 이미 조목조목 밝혔다.  WMA는 수술실 CCTV 의무화가 '환자-의사'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의료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의료 행위의 위축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수술실 내의 비윤리적인 행위 근절은 직업전문성(프로페셔널리즘)의 제고와 동료 평가 등의 이미 증명된 자정(自淨) 방안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권이 의사들의 전문성과 자율규제를 극도로 억제하는 쪽으로 모든 규제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의료 발전의 역사와 경험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CCTV 의무설치가 자유사회에서 볼 수 없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규탄했다.

전체주의적 전자감시체계가 과연 수술실 CCTV로 끝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수술실에서 시작된 CCTV 의무화가 곧 병원 전체, 나아가 대한민국의 전 작업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비위생적인 작업실태, 타인의 비난을 자아내는 근무 태도 등 자극적인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모든 곳에 ‘공공’의 이름을 걸고 CCTV가 설치될 수 있다. CCTV를 통한 개인 정보포집으로부터 제기되는 문제는 개인의 기본권 제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공동체를 전자 감시사회로 만드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번 법안의 개선을 위해 사회 각계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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